오늘(30일)부터 개정 정신보건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가운데, 정부와 의료계는 여전히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며 팽팽한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연일 개정법의 필요성에 대해 홍보하며 여론 환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법안 시행 전부터 꾸준히 문제점을 지적해 온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며, 시급히 법안을 재개정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학회는 특히 사법입원 또는 준사법입원 제도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복지부 “정신질환자 인권보호 위해 필수”
20년 만에 전면 개정된 개정 정신보건법은 강제입원 헌법 불합치 결정에서 유보했던 입원 및 치료 필요성에 대한 독립적인 제3자의 판단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복지부는 법안 시행 이전부터 강제입원 정신질환자 절반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등의 우려 섞인 언론보도가 쏟아지자 적극 진화작업에 나섰다.

지난 29일에는 우리나라 정신건강 현황과 관련한 인포그래픽을 배포하며 선진국보다 많이 뒤쳐 정신건강 관련 현황을 지적하고, 개정 정신보건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먼저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이 낮고, 정신의료기관 방문도 늦다.

실제로 2015년 기준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을 살펴보면, 미국 39.2%, 뉴질랜드 38.9%, 호주 34.7%에 비해 한국은 15.0%에 불과했다.

정신건강 문제 발생 후 최초 정신보건서비스 이용까지 걸리는 시간도 영국 30주, 미국 52주에 비해 한국은 84주로 길었다.

복지부는 또, 지난해 기준 정신질환 입원환자 10명 중 약 6명(강제입원율 61.6%)은 강제입원으로, 프랑스 12.5%, 독일 17%, 이탈리아 12%, 네덜란드 13.2%, 영국 13.5%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 입원 시 평균 입원일수도 월등히 길다는 지적이다. 2014년 기준 국가별 정신질환 평균 입원일수를 살펴보면, 프랑스 35.7일, 독일 26.9일, 이탈리아 13.4일에 비해 한국은 평균 197일에 달했다.

아울러 복지부는 국내 정신병상 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OECD 평균의 약 1.5배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정신병상 수는 인구 1,000명당 0.91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전체 OECD 평균 0.59명의 약 1.5배에 달했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22일에도 ‘개정 정신보건법이 정신질환자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강제입원 절차를 대폭 강화했으나 인력 부족으로 혼란이 예상된다’는 보도에 대해 보도설명자료를 배포한 바 있다.

복지부는 “정부는 입원 진단 업무량을 미리 예상해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의료인력과 제반 사항을 준비했다.”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2016년 12월 기준 현재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중인 환자 7만여 명 중 강제입원 환자는 약 60%인 4만 2,000명이다. 입원 정신질환자의 평균 입ㆍ퇴원 횟수 약 1.7회와 3~6개월 간격의 입원연장 심사에도 입원진단이 필요한 점을 고려해 예상하는 연간 입원진단 발생 건수는 약 13만 4,000건이다.”라고 예상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전문의 인력은 풀타임으로 약 42명이며, 풀타임으로 환산 시 총 80명의 전문의 인력을 확보(공공부문 36명, 민간지정병원 44명)해 대응준비를 완료했다.”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또, 건당 약 7~8만원의 진단 수가를 신설하고, 입ㆍ퇴원관리 전산시스템을 개발해 업무를 간소화 하는 등 현장의 업무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 기반을 마련했으며, 2인의 진단은 형식적 서면조사가 아닌 대면진단으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지난 19일에도 보도해명자료를 통해 ‘정신질환자 1만 9,000명 퇴원, 안전 문제없나?’에 대해 “2016년 말을 기준으로 정신의료기관 입원 환자는 총 6만 9,232명이며, 이 중 강제입원 환자는 61.6%인 4만 2,684명으로, 1만 9,000명이 퇴원한다는 주장은 현재 강제입원 중인 환자의 거의 절반이 퇴원한다는 것으로 추정의 근거가 전혀 없다.”라고 반박했다.

복지부는 또, “개정 법률에서도 자타해 위험을 판단하는 것은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의 영역으로 입원에 있어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에는 변화가 없어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라고 해명했다.

차전경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번 개정 정신보건법 시행으로 정신장애인의 복지가 좋아지느냐는 질문에 단언컨대 ‘예’라고 할 수 있다.”라며, “지금까지는 정신장애인 복지의 근거조차 없었다. 앞으로 법적 근거가 생기면 이를 토대로 예산을 따고 관련 사업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신경정신의학회 “취지는 동의하지만 개정법 미흡”
의료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인권보장 강화라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그 방법이 치료적 관점과 인권보호 측면에서 모두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의사들은 개정법이 강제치료 요건을 제한해 치료가 필요할 경우에도 치료적 개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서로 다른 의료기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 진단은 공공 책임성을 민간에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선진국처럼 사법입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사장 정한용)는 지난 25일 성명을 통해 “의료현장 전문가로서 개정법의 근본 취지인 환자 인권보장의 강화와 필요성에 대해 강력히 찬성하지만, 개정건법의 급격한 입법 절차로 인해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고 수용할 지역사회 시스템은 실제로 정비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학회는 “개정법은 준비되지 않은 행정 퇴원을 조장하므로 인권보장의 본래 취지를 달성할 수 없으며, 지역사회에서 방치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악화될 수 있다.”라고 우려하며, “‘인권보호’와 ‘사회로의 복귀와 재활(탈수용화)’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추기 위해서는 환자가 지역 사회에서 방치되지 않도록 한국 실정에 맞는 사법입원 또는 준사법입원 제도로 재개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법 개정 및 시행에 앞서 정신질환자들의 지역사회 재활 및 치료 시설에 대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탈수용화는 법 개정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에 대한 인프라가 마련돼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학회는 “하지만 법 개정에 따른 지역의 정신보건센터나 주거시설에 대한 투자는 전혀 늘지 않았고, 경기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지역사회기관의 수용정원은 1.4%에 불과한 실정이다.”라며, “정신건강증진센터의 등록관리율은 18.4%에 불과하지만 이미 센터 전문요원은 한 명당 100명에 가까운 중증장애를 돌보고 있다. 미국에서 100명의 환자에게 1명의 전문의와 10~15명의 정신보건전문요원이 지역사회서비스를 하는데 비교할 상황이 못 된다.”라고 꼬집었다.

학회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당국의 대책 역시 ‘눈 가리고 아웅’식이다.”라며, “민간지정기관에 참여하라며 한명이 60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는 민간병원 전문의들에게 행정력을 이용하여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 왔다. 또, 시행을 1주 앞둔 시점에서 입ㆍ퇴원 시스템에 대한 전국교육은 세종시에서만 이틀 진행하며, 그것도 불과 1주전에 공지하는 등 졸속의 연장에 서있다.”라고 비판했다.

학회는 “심지어 지역사회 민간기관의 담함을 조장하며 서로 간에 매칭을 하라는 공문을 발송하기까지 했다.”면서, “정부가 국ㆍ공립의사를 제도운영의 주체로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이 알아서 2차 진단병원을 지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한다면 결국 국민과 의료인 사이에 불신만 키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학회는 인권보호와 탈수용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한국형 사법입원제도의 도입을 거듭 촉구하며, 서울지방변호사회와 함께 사법입원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공청회를 30일 개최할 예정이다.

또, 당사자인 환자 및 보호자와 함께 서명운동을 시작해 조속한 전면 재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2월 16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김창윤 울산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법안을 재개정해 사법입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법적 판단을 거치지 않은 강제입원은 적법절차 위반으로 위헌 소지가 있으므로 입원 전 사법부 판단에 의한 입원제도를 도입하면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 치료 거부 환자에 대한 개입이 용이해지고, 입원 기준이나 해석을 둘러싼 인권침해 논란도 줄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어 강제입원을 위한 보호자 요건도 까다롭게 할 이유도 없어지고, 강제입원 절차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도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입원 적합성 심사도 법원이나 준사법적 기능을 가진 외부 입원적합성 심사로 강화하고, 강제입원 요건의 ‘and’를 ‘or’로 변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민단체 “돌봄인프라ㆍ사회적 편견 해소돼야”
시민단체는 돌봄인프라와 함께 사회적 편견 해소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이하 건세)는 지난 29일 논평을 통해 “개정법은 그 동안 관련 인권단체에서 문제제기를 해 논란이 되어 왔던 강제입원조항과 복지지원내용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강제입원요건강화 및 지역사회복지인프라 구축등의 개정의 여지가 남아 있다.”라고 우려했다.

건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신건강복지법은 강제입원조항이 강화됐다는 데에는 그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인권침해의 의지가 있는 조항이 여전히 포함돼 있다면서, 제44조 ‘경찰에 의한 입원신청’ 조항을 지목했다.

이 조항은 지난해 5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강신명 전경찰청장이 치안업무의 강화로 일선 경찰공무원들이 자ㆍ타인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서 법률에 근거하여 인신을 구속해 입원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조항을 두고 당사자 그룹이나 노숙인 인권단체에서는 그 전문의료인이 아닌 경찰관이 치안업무의 성격으로 입원신청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에 대해 가장 우려한 문제조항으로 꼽기도 했다.

건세는 또, “우리나라는 아직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낙인이 강하게 존재한다.”라며, “인권보호라는 이름으로 강제입원요건을 강화하기는 했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강제입원환자들이 퇴원하게 되면 아직 이들에게 치료와 케어를 제공할 수 있는 지역사회복지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 돌봄의 몫은 고스란히 가족에게 전가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건세는 “이들 가족들과 가족이 없는 환자들은 질병보다 더욱 가혹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어린 시선과 마주해야 한다.”면서 “지역에서 이들 환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프라와 이들의 인권과 가족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결과를 결코 낙관적으로 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질병을 이유로 환자를 차별하고 또 잠재적인 범죄자로 낙인 찍어 인신을 구속하는 것은 반드시 엄격하게 경계해야 하며, 이는 인권존중이라는 명목으로 국가가 사회적 약자인 정신질환자에 대한 돌봄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방임해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라며, “정부는 환자에 대한 인권보호를 위해 엄격한 법률적 보호장치와 함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인프라도 함께 구축돼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인권임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