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정신보건법이 오는 5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인권보장 강화라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그 방법이 치료적 관점과 인권보호 측면에서 모두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의사와 환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법이라며 재개정을 주장했지만, 정부는 개정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다시 개정한 사례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학회가 주장하는 개정 정신보건법의 문제점과 재개정 방향에 대해 살펴봤다.

▽1995년 제정 정신보건법, 지난해 헌재 판결로 전면 개정
정신질환자의 입원, 퇴원에 관한 법률인 ‘정신보건법’은 1995년 제정될 당시 보호의무자 1인의 동의와 정신과 의사 1인의 입원결정에 의해 입원이 가능하다고 했으나, 입원요건의 강화를 위해 2010년 보호의무자 1인에서 2인 동의로 개정됐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9월 29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인의 진단이 있으면 보호입원이 가능하도록 한 정신보건법 제24조 제1항, 제2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하고, 이 조항들은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있을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계속적용헌법불합치)는 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대상 규정이 보호입원을 통한 치료의 필요성 등에 관해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제3자에 판단 받을 수 있는 절차를 두지 않은 채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판단만으로 정신질환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보호입원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제도의 악용이나 남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바로 단순위헌결정을 해 대상규정의 효력을 즉시 상실시킨다면 보호입원의 법률적 근거가 사라져 보호입원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보호입원이 불가능한 법적 공백 상태가 발생하게 될 것을 우려해 심판대상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고, 입법자가 심판대상조항의 위헌성을 제거해 합헌적인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할 때까지 심판대상조항이 계속 적용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후 정신보건법은 19대 국회에서 전면 개정돼 오는 5월 30일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20년 만에 전면 개정된 개정 정신보건법은 강제입원 헌법 불합치 결정에서 유보했던 입원 및 치료 필요성에 대한 독립적인 제3자의 판단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제43조에서 입원 2주 이내에 계속 입원이 필요하다는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국ㆍ공립 정신의료기관 또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하는 정신의료기관에 소속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1명 이상 포함)의 일치된 소견이 있는 경우에만 해당 환자를 3개월까지 입원시킬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개정법은 강제치료 요건을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로 제한해 치료가 필요할 경우에도 치료적 개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서로 다른 의료기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 진단은 공공 책임성을 민간에 전가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지적을 보완한 개정 ‘정신보건법’ 시행령ㆍ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3월 3일부터 4월 11일까지 40일 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자신의 건강ㆍ안전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에 대한 정의를 ‘자살ㆍ자해 시도나 임박하거나 잠재적인 자살ㆍ자해 위험, 증상 악화로 인한 건강이나 물질적 피해 위험, 타인에 대한 신체적 가해나 그 위협, 재산에 피해를 입히고 심리적 위협을 주는 경우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또, 문제가 된 강제입원 시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 소속 전문의 2명의 진단(1인은 국ㆍ공립병원 또는 지정의료기관 소속)과 관련, 해당 지역의 국ㆍ공립병원 또는 지정의료기관과 그 소속 전문의가 부족해 부득이하게 2주 내 진단을 받지 못한 경우 1회에 한해 기간을 다시 연장할 수 있도록 예외를 규정했다.

▽개정 정신보건법, 무엇이 문제인가?
야심차게 전면 개정된 정신보건법은 법 개정의 원래 취지인 환자의 인권보장을 구현하지도 못하면서,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강권까지 침해하는 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헌재는 현행 비자의입원 조항이 헌법 제12조(신체의 자유)에 위배된다며 전원 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으며,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제3자’에 의한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둘 것을 제시했다.

아울러 현행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가 다수의 사례를 서류상으로만 심사해 그 실질적인 기능을 하지 못 하고 있음을 명시적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개정 정신보건법은 이러한 헌재의 판결 취지를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이다.

지난 2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개정 정신보건법의 문제점과 재개정을 위한 토론회’
지난 2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개정 정신보건법의 문제점과 재개정을 위한 토론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조사원에 의한 일부 대면조사를 제외하면 여전히 서류상으로만 심사하도록 하고 있다.”라며, “이처럼 부실화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역할과 책임을 오로지 2차 진단 의사에게 지우고 있으며, 2차 진단을 실시할 전담 인력 또한 확보하지 못해 민간의료기관 소속 전문의들을 대거 동원할 계획을 추진함으로써 민간 정신의료기관의 진료공백을 우려하게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개정 정신보건법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 대한 각종 서류구비 의무와 벌칙 조항들만 무수히 나열돼 있을 뿐, 의사들의 의료행위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 또한 미흡하다고 우려했다.

복지부는 입원의 통지가 국립병원장의 공문으로 결정되므로 2차 진단의사는 법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학회는 “지난해 경기 북부의 여러 병원의 전문의에 대한 검찰수사와 함께 최근 한 병원에서 발생한 자의입원환자에 대한 서식미비에 대해 복지부는 당시 병원장과 주치의를 고발하는 상황에 비춰볼 때 2차진단에 참여하는 전문의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라고 꼬집었다.

지난 13일 열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제기가 중점적으로 이뤄졌다.

유지혜 한서중앙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개정법에서 제3자가 입원의 필요성을 결정하게 한 것은 환자 인권보호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계속 입원의 필요성을 결정하는 제3자가 누구냐는 문제가 있다.”라며, “개정법에서는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정신과 의사라고 한다. 독립된 제3자라면 환자나 정신과 의사가 아닌 다른 직역의 결정권자여야 하는데, 다시 정신과 의사가 결정권자가 된다면 이것은 제3자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개정법이 시행된 후에도 정신과 의사는 환자 인권을 유린하는 주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 전문의는 “개정법 시행을 앞두고 복지부는 각 지역을 방문해 현장 실무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해 환자 인권을 위한 법이니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법률적 오류를 지적해도 충분한 자문을 거쳐 만들어진 법이니 걱정 말라며 안심 시켰다.”면서, “간담회를 개최한 며칠 후에는 반드시 지역 보건소를 통해 공문을 내려 현황 파악을 했다. 계속 입원을 결정할 제3자로 지원할 민간 정신병원을 찾는 내용이었다.”라고 전했다.

유 전문의에 따르면, 거리적으로 가까운 병원들을 짝지어 주고, 개정법이 시행되면 정신과 의사가 서로의 병원을 방문해 계속 입원 결정을 해주라는 공문을 보낸 지역도 있었다.

그는 “개정법을 시행해야 할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이런 행보를 보이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라고 반문하며, “복지부는 지역 실무자를 만나는 간담회에서 예산 배분이 어떠한지, 제3자 역할을 하는 정신과 의사에게 입원 결정 업무에 대해 어떤 보상을 해줄 것인지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유 전문의는 “만약 제3자의 역할을 사법기관이나 복지부가 하는 것으로 법률적으로 명시했다면 전세계적으로도 훌륭한 환자 인권 수호법이 됐겠지만, 복지부는 이 업무를 지역 내 가까운 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정신과 해주기를 종용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개정법의 강제입원 요건이 자ㆍ타해 위험으로 제한돼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치료적 개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발병 초기에 치료 받으면 증상 호전이 가능한데도 악화돼 자ㆍ타해 위험성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치료적 개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현병(뇌질환)은 치료 시작이 늦으면 뇌 손상이 진행되고, 치료 반응과 예후가 불량해진다.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선진국 모두가 강제입원 요건을 자ㆍ타해 위험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2인 진단과 입원적합성 심사는 분리하고, 입원적합성 심사를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2인 진단은 있어도 2주 시점에 외부 병원 의사 소견을 구하는 사례는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입원 필요성에 대한 평가는 의사가 하되, 입원 결정은 사법적 판단으로 하는 것이 옳고 세계적 추세다.”라며, “정신보건법의 강제입원 조항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았듯이, 곧 시행될 개정 정신보건법 역시 강제입원이 여전히 사법적 판단을 거치지 않는다는 점과 형식적인 입원적합성 심사로 인해 적법 절차 위반이라는 점에서 위헌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신질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하면서 인권 보호 기능이 미흡해 환자, 보호자, 의사 모두 만족하기 어려운 법이라면 시행 방안을 달리하거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전공의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회장 기동훈)는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정부가 인권보호 차원에서 제시한 서로 다른 기관의 2인 의사 진단 체제는 ‘구속받지 않을 권리’라는 인권보호의 핵심을 빗나간다.”라고 지적했다.

환자 인권보호의 핵심은 입원 시 얼마나 많은 수의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느냐가 아니라, 인권을 침해하는 진료행위가 이뤄지고 있을 때 이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지할 수 있는 안전망이 잘 가동되느냐라는 것이다.

대전협은 “이러한 안전망의 역할은 정부가 강요하는 동료 의사들끼리의 감시가 아닌, 이미 많은 선진국에서 그러하듯 적절한 권위와 전문성을 가진 준사법적 기구에서 맡아야 한다.”라며, “선진국의 경우 의사의 전문적인 의학적 판단에 더해 사법기관이 환자의 환경을 고려해 입원 적절성을 평가하는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정부는 이러한 부담을 피하고자 이미 부족한 진료시간으로 쫓기는 의료진에게 서로의 감시자 역할을 떠넘김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의 정신건강을 책임지는 많은 수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의 진료공백을 야기해 그들의 환자들이 받는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는 2차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대전협은 비판했다.

또한 개정 정신 보건법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시행 내용으로 정신질환자들의 ‘마땅히 치료받을 권리’를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대전협은 “충분히 치료되지 않은 환자를 수용할 능력이 없는 사회로 내보내고, 그로 인한 문제를 환자와 지역사회가 고스란히 떠안게 한다.”라며, “현재 지역정신보건센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과도한 업무로 파업이 이어지는 등 이미 포화상태로 정실질환자들을 보살펴 줄 지역사회 지지체계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준비되지 않은 사회가 충분히 치료되지 않은 환자를 맞이할 때 일어날 혼란과 이로 인해 정신질환자들에게 찍힐 사회적 낙인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대전협은 정신질환자의 인권 및 안전 보호, 그리고 장기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현장에서 직접 환자를 대할 정신과 의사들을 비롯한 정신보건서비스 제공자들과의 충분한 협의와 의견 수렴을 통해서 법안 및 시행령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환자 인권보호의 책임을 의료현장에서 고군분투 하는 의료 인력에게 전가하지 말고, 정신질환자들의 법적 권리를 수호 할 수 있는 전담 자원을 마련하라.”면서, “무리한 퇴원 강행에 앞서, 정신질환자 탈원화를 위해 퇴원 후 환자들이 양질의 정신보건 서비스를 통해 치료를 지속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인프라를 집중 강화하라.”고 주장했다.

▽의료계 개정법 재개정 주장하지만 당장은 어려워
이처럼 의료계는 재개정을 주장해 왔지만, 현실적으로 개정법 시행 전 재개정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복지부가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됐으므로 행정기관이 이 법을 수정할 권한이 없을 뿐더러, 이미 개정된 법률을 시행도 하기 전에 또 개정한 사례는 없었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또한 복지부는 의료계가 지나친 우려를 하고 있다면서, 개정법 시행 후 문제점이 드러나면 개정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신경정신의학회의는 복지부를 향해 개정법 시행 후 최단기간에 2차 진단 의사를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 소속시키는 최소한의 법안 재개정을, 중장기적으로는 사법입원ㆍ준사법입원을 골간으로 하는 법안의 전면재개정을 공동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개정법 시행 이후 개정안이 발의된다고 해도 대선 정국 등으로 그 시점은 언제가 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개정안을 준비중인걸로 알려진 바른정당 박인숙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18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신보건법 개정안은 아직 검토 중이다.”라며, “발의하더라도 시점은 대선 이후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또, 2차 진단 의사가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 실질적으로 소속돼 활동하도록 시행령ㆍ시행규칙에 명시하고, 2차 진단 전담 전문의를 최단기간 내 확보할 청사진과 이행계획을 밝힐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진료 공백을 유발하는 2차 진단 실시지역의 무리한 확대 계획을 중지하고, 민간병원의 2차 진단 참여를 위한 부당한 압력을 중단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입원판정’을 위한 지정진단의료기관 신청을 ‘행정입원’을 위한 지정정신의료기관 신청에 연계하는 조치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12일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와 공동으로 ‘각 정당 대선 후보에 보내는 질의서’를 통해서도 정신보건법 재개정 관련 문제를 질의했다.

이들은 질의서를 통해 “정신보건법이 개정됐으나 입원적합성위원회가 서류심사에 그치며, 2인 전문의 진단을 담당할 국공립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환자 인권보호와 치료 모두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라며, “탈수용화를 위한 지역사회의 인프라는 여전히 취약해 정신보건법의 전면개정을 통해 인권을 보장하고 지역사회 인프라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정신과 의사들이 정신질환자를 계속 입원시키기 위해 개정법을 무력화하려 하고, 정신질환자의 위험성을 과대 포장해 편견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일부 시각은 오해라는 지적이다.

이명수 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용인정신병원)는 “정신질환자를 계속 입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입원 치료가 아니더라도 적절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준비가 거의 부재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및 인권보장 강화를 추구하는 개정법의 정신에는 100% 동의하고, 환자의 자유권 제한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 부족을 지적한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정도 겸허히 수용한다.”라며, “그러나 이 같은 내용을 보완하고 강화하기 위한 정책 실천 의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즉 인프라와 제도, 인력 보강을 위한 재정확보 전략 및 시스템의 세부적 작동기전에 대한 시뮬레이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기간 내에 정신의학적 치료 제공체계의 형태 변화만을 추진하는 것이 우려된다.”라고 꼬집었다.

백종우 교수
백종우 교수

그는 “환자 인권과 양립하는 가족 및 국민의 안전에 대한 권리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환자 자신의 건강권과 생존권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는 국가가 중증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에 대한 책임성을 온전히 가져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백종우 신경정신의학회 정신건강복지법TFT 위원(경희대병원)도 “아직도 오해를 사는 부분이 정신과 의사들이 과거와 같은 입원을 원하느냐는 건데, 이미 정기총회에서 장기적 사법입원과 행정기관을 통한 입원으로 가야 한다는데 동의했고, 이미 헌재에서 결정된 사항이라 돌아갈 수도 없다. 전혀 그런 의도는 없다.”라고 말했다.

백 위원은 “그런 오해 때문에 일부 당사자단체들이 부정적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관련 법률 전문가, 사회단체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이 건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이므로 합심해서 해결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해외사례 살펴보니…
해외의 강제입원 기준은 어떨까.

미국의 경우 1975년 대법원 판례를 계기로 ‘치료 필요성’에서 ‘자ㆍ타해 위험’ 기준으로 바뀌었으며, 현재는 위스콘신, 아리조나, 뉴저지 주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에서 자ㆍ타해 위험 기준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자ㆍ타해 위험에 대한 해석은 주마다 다르고 해석에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자ㆍ타해 위험은 일반적으로 신체적(physical, bodily) 위험으로 좁게 해석되는 경향이다.

자ㆍ타해 위험으로 강제입원을 제한하자 입원이 필요한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해 대부분의 주에서 중증 장애(grave disability) 기준을 추가해 문제를 보완하고 있다.

정신질환으로 인해 의식주 등 기본적 욕구 해결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의미하나, 중증범위 해석을 두고는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판사가 상식(치료 필요성) 및 직관에 따라 또는 중증 장애를 넓게 해석해 적용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치료 필요성 모델과 다름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스콘신 주의 경우 치료 필요성과 중증 장애를, 아이오와 주는 가족이나 타인에 대한 심각한 정서적 피해를 위험성 기준으로 삼고 있다.

영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자ㆍ타해 위험으로 제한하지 않고 강제 입원 기준으로 ‘치료 필요성’ 모델을 계속 유지해 개정 전 국내 정신보건법과 거의 동일하다.

호주도 영국과 비슷하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의 경우 특이하게 조증으로 인한 재정적 문제ㆍ평판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자ㆍ타해 위험에 포함시킨다는 정신건강심판원(Mental Health Review Tribunal)의 해석도 있어 자ㆍ타해 기준 해석이 나라마다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우리나라 행정 입원에 해당하는 국가 입원의 경우는 자ㆍ타해 위험으로 제한되나, 보호자 입원과 같은 제3자 입원의 경우는 치료 필요성(동의능력 상실+치료 필요성) 개념이다.

일본도 프랑스와 비슷하다. 행정입원은 자ㆍ타해 위험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보호 입원은 치료 필요성 개념을 유지하고 있다.

탈원화 모범국가인 이탈리아 역시 ‘치료 필요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강제입원의 ‘위험 기준’이 오히려 환자를 낙인 찍는다는 시각도 있다. 스페인 역시 치료필요성 기준을 채택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는 위험 기준을 따르다가 지난 2000년 살해 사건 발생 이후 정신적 증상 악화 기준을 추가, 결국 치료 필요성 기준과 비슷해졌으며, 브리티시 컬럼비아를 포함한 5개 주도 치료 필요성 및 정신적 증상 악화 기준을 인정하고 있다.

덴마크, 그리스, 아일랜드, 뉴질랜드, 홍콩도 자ㆍ타해 위험으로 제한하지 않고 치료 필요성 기준을 따르고 있다.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대만은 자ㆍ타해 위험 기준을 삼고 있다.

EU 27개국 중 13개의 유럽 국가가 자ㆍ타해 위험과 치료 필요성 기준 두 가지를 제시하는데, 대부분이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를 명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정신보건법 제정 원칙(1996)과 UN MI 정신질환자 보호 원칙(1991)에서도 강제입원 요건은 자ㆍ타해 위험으로 제한돼 있지 않고, ‘치료 필요성’ 기준에 따른 입원을 인정하고 있다. WHO의 경우 ‘치료 필요성’ and/or ‘자ㆍ타해 위험’, UN MI 원칙은 ‘o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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