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개정 정신보건법 시행을 앞두고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의 50%가 퇴원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법안 재개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보건당국은 강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박인숙 의원(바른정당)은 지난 16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개정 정신보건법의 문제점과 재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 1995년 제정돼 네 차례에 걸쳐 전면 및 부분개정을 거친 현행 정신보건법은 지난해 4월 19대 국회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자유권을 강화하고 재활 및 회복으로의 연계 조항이 강조되며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개정 정신보건법)’로 전부 개정돼 5월 30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개정 정신보건법이 정신질환자의 비자의입원 등에 대해 다양한 국민의 정신보건 서비스 욕구 및 의료계의 전문적 견해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과 국ㆍ공립의료기관의 정신건강전문의 수급문제 등 개정 법안 시행을 위한 준비에 있어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아직 사회적으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법만 통과시키는 것이라는 의료계의 입장과 시대적 흐름에 맞추고 강제입원의 폐해를 막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상황이다.

이날 발제에 나선 이명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는 “개정 정신보건법이 과연 환자의 인권 보장을 강화하고 있는지에 대해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으며, 법 자체가 아닌 법을 시행하는 정책적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와 이슈가 있다.”라며, “이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을 환자 인권에 반하고, 자기 이익에 매몰돼 있는 집단으로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 이사는 개정 정신보건법은 입원적합성 심사위원회의 목적성이 모호하고, 서로 다른 의료기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인 진단은 공공 책임성을 민간에 전가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치료 사각지대의 증가로 인한 정신질환자 및 사회적 안전망의 문제가 있고, 지역 지원체계 준비 없이 입원치료 절차만 복잡하게 할 경우 행려 입원환자들은 갈 곳이 없다고 우려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김창윤 울산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개정 정신보건법은 필요한 치료 개입을 어렵게 하고 인권보호 기능이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여전히 미흡해 인권침해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라며, “이해 당사자인 환자, 보호자, 의사 모두 만족할 수 없어 대안 마련과 법 개정이 시급하다.”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특히 개정 정신보건법에 따르면, 강제치료 요건이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로 제한돼 치료가 필요할 경우에도 치료적 개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발병 초기에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호전될 수 있어도 증상이 악화돼 자해나 타해 위험성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치료적 개입이 가능해진다는 지적이다.

또한 김 교수는 “위험기준이 추상적이고 구체적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서, “위험기준은 사실관계 파악이 아니라 예측하는 것이라 의사들마다 다를 수 있어 법적 분쟁의 소지는 지속되고 부담은 모두 의사에게 돌아오게 된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법안을 재개정해 사법입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적 판단을 거치지 않은 강제입원은 적법절차 위반으로 위헌 소지가 있으므로 입원 전 사법부 판단에 의한 입원제도를 도입하면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 치료 거부 환자에 대한 개입이 용이해지고 입원 기준이나 해석을 둘러싼 인권침해 논란도 줄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강제입원을 위한 보호자 요건도 까다롭게 할 이유도 없어지고, 강제입원 절차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도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입원 적합성 심사도 법원이나 준사법적 기능을 가진 외부 입원적합성 심사로 강화하고, 강제입원 요건의 ‘and’를 ‘or’로 변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외에도 응급환자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잠정적으로 쉽게 입원할 수 있도록 하고, 서로 다른 소속 기관 국ㆍ공립 의사 판정은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성혁 대한정신건강의학과봉직의협회 학술이사 역시 “개정 정신보건법에 따르면, 자ㆍ타해 가능성이 없는 정신질환자가 병식이 없다면 치료할 방안이 없다.”면서, “환자 증상이 더욱 악화되길 기다렸다가 자타해 가능성이 생기고 나서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부조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특히 진단 입원 중 치료입원으로 전환을 위해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국ㆍ공립 정신의료기관 혹은 지정 정신의료기관) 전문의 1인의 교차진단을 요구하는 조항을 문제 삼았다.

이에 따르면, 연간 약 23만건의 진단입원 건수 예상되며, 진단업무만 전담하는 진단의사 80~100명 추가 필요한데 충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복지부 입장이다.

복지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의료기관을 지정 정신의료기관으로 두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민간 정신의료기관에 대한 비자의입원의 공적 모니터링을 다시 민간에게 의뢰하는 모순적 정책 시도이며, 도덕적 적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 취지에 완전히 역행하는 행위라는 것이 박 이사의 지적이다.

그는 “상당기간 준비하고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시행한 정신병원 인증평가제도마저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되는 상황이인데, 지정의료기관 선정을 위한 구체적이고 공정한 평가 및 선정기준, 관리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민간 정신의료기관 사이에 발생할 대가성 청탁 및 담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환자의 인권은 또 다시 유린당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또한 복지부는 민간 정신의료기관을 동원할 시 발생할 비용적, 법적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진단업무 수가를 책정하고, 진단업무시 발생하는 책임에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봉직의협의회는 민간수가 지정 자체를 강력히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박 이사는 “민간수가를 지정할 예산과 자원이 있다면 국공립병원 의사를 충원해 제대로 된 법의 시행에 힘써 달라.”면서, “민간동원시 발생하는 민형사상 책임에 대해 보호방안을 마련하겠다는 해명도 무책임한 발언이다. 사법부가 아닌 복지부가 법적 책임에 개입하거나 보호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라고 꼬집었다.

김태형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도 “정신질환자의 치료 일선에서 매일 환자의 입원을 결정하고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개정안은 더 큰 혼란과 해악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라며, “법안 시행 전이라도 반드시 개정돼야 하며, 시행 전 개정이 불가능하다면 시행 즉시 개정안이 발의돼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개정 정신보건법이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어도 정신장애인을 위한 한 걸음을 떼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우려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하위법령을 통해 보완할 것이라고 전했다.

차전경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이번 개정 정신보건법 시행으로 정신장애인의 복지가 좋아지느냐는 질문에 단언컨대 ‘예’라고 할 수 있다.”라며, “지금까지는 정신장애인 복지의 근거조차 없었다. 앞으로 법적 근거가 생기면 이를 토대로 예산을 따고 관련 사업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차 과장은 “의료계는 법안 중 입원과 관련된 부분만을 조명하는데, 이 법은 정신장애인 복지와 관련한 근거를 마련한 법이다.”라고 거듭 강조하며, “하지만 거기에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향후에도 예산을 따올 수 있을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개정법이 시행되면 입원 정신장애인 8만명 중 4만명이 퇴원한다는 우려를 많이 하는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단언하며,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그런 주장 속에는 정신질환자가 위험하다는 편견이 들어가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차 과장은 사법 입원제도와 관련해서는 “우리도 같은 입장이다. 모두 같을텐데, 아직은 준비가 덜 돼 행정적 문제가 클 것이다.”라며, “개정법을 시행하고 어느 정도 인프라가 갖춰지고 심사가 되면 이후에 또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논란이 되는 강제입원 요건이 ‘and’냐 ‘or’에 대해서는 “복지부도 고민 많긴 하지만, 자ㆍ타해 위험이라는 해석은 기본적으로 의료진의 판단이다. 다만 자ㆍ타해 위험을 시행규칙으로 어느 정도는 보완해놨다.”라며, 의료계와 인권단체, 당사자단체, 가족과 소통하며 만든 하위법령이 조만간 입법예고되면 다양한 의견을 달라고 당부했다.

차 과장은 민간의료기관 판정 문제와 관련해선 인력 확보를 위해 행정자치부와 긴밀하게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력을 확보해 국ㆍ공립에서 최대한 커버될 수 있도록 하는게 목표지만, 우리나라 국ㆍ공립병원은 3%에 불과해 당장 채우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민간에 협조를 부탁하는 것이라며, 우려하는 법적 문제에 대해서는 법률자문단 구성 등 여러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정신질환자 당사자들이 대거 참석해 피켓 시위를 하고, 발제 도중 발언권을 달라고 고성을 지르는 등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특히 이들은 법안에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 단체에 패널 요청이 오지 않은 것을 비판했다.

다만, 가족 측을 대표해 패널로 참석한 이항규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경기남지부장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의료서비스가 보장되고, 인권보호라는 미명 하에 사회에 방치되는 정신장애인은 없어야 하며, 정신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센터, 직업재활시설 등, 당사자와 가족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보다 근본적인 방안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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