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호 경기도의사회 조직강화부회장
성종호 경기도의사회 조직강화부회장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은 제대로 시행하던가 아예 하지 말던가,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한다.

올해 3월 의료인 면허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의협은 공청회 3회와 산하단체 의견조회 등의 절차를 진행해 왔다.

오는 11월부터 전문가평가제라는 이름으로 시범사업이 진행된다는 9월 22일자 보도자료가 발표됐고, 하루 뒤인 9월 23일 예상하지 못한 면허관련 의료법 하위법령 개정안이 발표됐다. 시기적으로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나 내막은 알 길이 없다. 

유럽을 위시한 선진국은 의사 직업에 의료전문가주의라는 이념적 기준을 제시해 직업적 자긍심과 사회에서의 의사 역할과 사회적 권위를 의식, 무의식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의료전문가주의의 중요한 축인 자율규제는 수백년 동안 진행돼 온 의사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이 직업적 존재감을 유지하고 사회적 역할을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불행히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은 자율이라는 틀보다는 국가권력에 의한 면허제도로 출발해 의료전문가주의라는 이념에도 낯설고, 자율규제라는 방식에도 국민, 의사, 정부당국 모두 미숙하다.

이번 시범사업이 과연 자율규제라는 낯설지만 좋은 제도를 한국의사사회에 뿌리내리게 할수 있을까?

대한제국이 의사면허를 부여하기 시작한 후 일제시대를 거쳐 대한민국은 국가가 모든 것을 관장하는 국가주의적 시스템으로 진행돼 왔으나, 사회가 발전하고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구시대적 국가주의적 시스템의 한계는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의료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단적인 예로, 정부가 국민들의 생각과는 다른 의료 영리화를 강력히 추진하면서도 동력이 생기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시범사업이 방법적, 목표적으로 적절하다면 의사사회에 자율규제라는 선진적 민주적인 제도가 정착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그렇다면 이번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은 시기적, 방법적, 목표가 적절한가?

첫째, 시범사업이 시기적으로 적절한가?

다나의원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는 이를 의료기관의 윤리적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그렇다면 1회용 주사기 재사용은 법적 처벌을 받을 수가 없으나 실제로는 행정처분이 가능한 사안이다.

즉,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법적문제이다. 법적문제는 법에 따라서 처벌하면 된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은 법적 문제를 윤리적 문제로 변질시켜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으며, 의협 또한 문제의 핵심을 보지 못하고 부화뇌동하고 있다. 의료영역의 법과 윤리에 대한 정부와 언론, 심지어 의사들의 이중잣대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다나의원 사태가 동료의사에 의해 신고된 것은 바로 자율규제의 모습이다. 이러한 자율규제가 자발적으로 활성화 되도록 정부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야 하며, 그 시기는 사회적으로 공론화돼 있는 현 시기가 적합하다고 판단한다.

둘째, 시범사업이 보도자료로 알려진 방법대로 시행된다면 적절한 방법인가?

자율평가는 의사들 스스로 내부적 문제점을 계도, 시정, 재교육, 처벌을 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핵심은 처벌이 아니라 계도, 시정, 재교육이라는 과정이다. 하지만 전문가 평가제 시범사업은 자율규제라는 미명하에 새로운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자율규제라는 원래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

진정한 시범사업이 되려면, 계도, 시정, 재교육이 중점이 돼야 하며, 이런 과정을 거쳐도 시정이 되지 않을때 행정적 처벌이 이루어 져야 진정한 자율규제가 되는 것이다.

발표된 시범사업은 모든 험한 일은 의사단체가 수행하고, 정부는 앉아서 허락만 해주는 상왕제도이다. 권리는 주지 않고 의무만 부과하고, 힘들고 욕먹는 일은 시키면서 보상은 없는 시범사업이다.

발표된 시범사업 방법을 의사들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정부와 의협은 원점에서 시범사업 방법을 다시 짜야 한다.

셋째, 시범사업의 목표가 적절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보도자료와 언론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대체 시범사업을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논의도 없이 시범사업이 진행된다고 하는 것은 어디를 향해서 항해를 할지 모르고 항구를 떠나는 배와 같다.

자율규제의 목표는 의사 내부의 자정을 통한 의사들의 권위를 유지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강화하는 것이다. 단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의사 내부의 자정을 강화하는 것은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시범사업에 대한 취지에 동감하고 참여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5호담당제니 상호감시제니 하는 냉소가 만연하고 있다. 이는 내부 자정 방법이 계도, 시정, 재교육이 아니라 처벌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뢰를 강화하는 것은 의사가 국민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도 한 요소이지만, 정부나 언론의 의사에 대한 태도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본질은 외면된 거짓, 부당청구 발표, 타 직업에 비해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기사들이 그것이다.

이번 시범사업은 단지 의사들의 비도덕적 의료행위의 자율규제에 대한 시범사업으로 국한될 것이 아니라 정부 또한 시범사업에 적극 참여해야 하며, 그 방법은 보도자료 등으로 배포되는 부당하고 자극적인 의사까기 언론플레이 금지가 시범사업에 포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범사업 보도자료 발표 하루 뒤 의료법 하위법령 개정안이 발표된 것은 현 시범사업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율규제를 핑계로 추가적인 족쇄를 채우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럴 바에는 허울 좋은 자율규제 시범사업은 때려 치우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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