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6개월이나 지연되다가 개최된 대한의사협회 정기총회가 막을 내렸다. 본회의에서 가장 치열하게 논의된 사안은 정관 제24조(대의원의 정수 및 책정방법) 개정안이었다. 이 한 건을 의결하는데 46분이나 소요됐다.

이 개정안은 지난 여름 의료계 단체행동에 앞장선 젊은 의사들에게 대의원을 더 배정해 소통의 기회를 확대하자는 취지에서 제안됐다.

결론적으로, 긴 찬반토론 후 표결에서 수정동의안과 원안이 차례로 부결됐고 TF 구성 후 재논의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젊은 의사들의 의견이 대의원회에 더 반영돼야 한다는 취지에 많은 대의원이 동의하는데도 이 개정안은 왜 부결됐을까?

본회의에 앞서 열린 법령ㆍ정관 분과위원회는 정관 24조와 관련해 정관개정특별위원회 개정안과 경기도의사회 개정안을 병합심의했다.

정개특위가 제출한 안은 대의원 정수는 현행대로 유지하되, 정원책정 후 대의원이 없는 개별 직역협의회에 같은 조 2항(회비를 납부한 회원수의 비율에 따라 비례대의원을 책정하고 소수점 이하는 절사)에서 절사된 비례대의원의 범위 안에서 최소 1명의 대의원을 추가 배정하도록 책정방법을 변경하는 안이다.

경기도의사회가 제출한 안도 대의원 정수는 유지하고 책정방법을 변경하는 안이다. 의학회 대의원을 100분의 20명에서 15명으로 줄이고, 협의회 대의원을 100분의 10명에서 15명으로 늘리되, 협의회 몫은 정관에서 규정하는 직역협의회 당 최소 4인 이상을 배분하도록 책정방법을 변경했다.

찬반 토의 과정에서 ‘대의원 정수를 현행 250명에서 270명으로 20명 증원하되, 의학회에 대의원 정수의 50명을 배정하고, 협의회에 대의원 정수의 45명을 배정’하는 수정동의안이 제안돼 통과됐다.

수정동의안 당사자인 좌훈정 대의원은 본회의에서 “젊은 의사를 비롯해서 협의회 중 대표를 대의원으로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제안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좌 대의원은 불과 3시간 전 분과위원회에서 자신이 제안해 통과시킨 개정안을 대신한 수정동의안을 냈다.

좌 대의원은 “의학회 대의원들이 정수가 줄지는 않지만 비례로는 줄었다.”라며, “대학교수들이 전공의 투쟁을 뒷받침한 것을 고려해 의학회는 현행대로 대의원 정수의 100분의 20명으로 하고, 협의회는 대의원 정수의 100분의 16명으로 수정하겠다.”라고 제안했다.

수정동의안 대로라면 의학회는 50명에서 54명으로 4명이 늘고, 협의회는 45명에서 43명으로 2명이 줄게 된다.

대의원 정수 배분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여러 지역과 직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분과위에서 수정안을 낸 당사자가 본회의에서 한 두 자리도 아니고 여러 자리를 다른 직역에 배치하도록 하는 수정안을 재차 낸 것을 대의원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김세헌 대의원은 “과거 정족수 미달로 안건을 논의조차 못한 사례가 많은데 대의원 정수를 늘리면 총회 참여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라며 반대했다.

윤용선 대의원은 “투쟁과정에서 전공의들의 투쟁에 대해 대의원회가 회원 의견수렴을 못한다는 문제제기에서 개정안이 나왔는데 단순히 숫자만 배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며, “지역과 직역이 모여서 합의된 안을 가지고 논의해야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제혁 대의원도 “대의원 숫자가 부족한 게 아니라 고정대의원을 개선해야 한다.”라며, “회비 납부율, 참여율 등 정수 배분에 대한 룰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관건이다.”라며 반대했다.

무엇보다 개정안이 젊은 의사를 배려하는 안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가 제기됐다.

안원일 대의원은 “제시된 개정안을 보면, 젊은 의사를 얼마나 늘리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민의를 반영하려면 고정대의원을 조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경수 대의원도 “전공의 대의원이 몇 명 늘어나는 건가? 중요한 내용을 정리해서 알려줘야 되지 않나?”라고 물었다.

전공의 정수에 대한 배려가 연이어 지적되자, 수정안을 제시한 좌훈정 대의원은 “늘어나는 협의회 정수는 제가 정할 권한이 있는 게 아니어서 전공의에게 몇 명을 할애할 지 보장하지 못한다.”라면서, “취지가 전공의를 늘리자는 것인 만큼, 대개협, 전공의, 공보의 등 협의회 단체가 모여서 논의하면 원만하게 결정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반발은 계속됐다. 이인수 대의원은 “누구한테 몇 명이 가는 건가? 전혀 그런 게 없다. 개정안이 저런 식이면 안 된다. 잘 모르면서 표결할 수 없다. TF를 구성해 내용을 명확히 하고 표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세헌 대의원도 “정관개정안이 의결되면 보건복지부의 인준을 얻어야 하는데 당장 대의원 선거가 코앞이다. TF를 구성해 내년 정총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라고 의견을 냈다.

표결 결과, 대의원 정수를 270명으로 늘리고 의학회에 100분의 20명(54명), 협의회에 100분의 16명(43명)을 배정하는 수정동의안은 찬성 113명, 반대 52명, 기권 8명으로 부결됐다.

이어, 대의원 정수를 270명으로 늘리고 의학회에 50명, 협의회에 45명을 배정하는 원안도 찬성 73명, 반대 91명, 기권 7명으로 부결됐다.

이번 개정안이 부결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전공의들에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주자는 취지에서 제안됐지만 몇 명을 배정할 지 구체적인 제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논의의 초점이 젊은 의사에 대한 배려인만큼, 대의원을 배정받지 못한 직역협의회에 대의원을 배정하는 문제는 다음 총회로 미루고, 전공의 정수 배정에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전공의 정수 배정만 국한하면 논의가 간결해진다.

대의원 정수를 늘리고 늘린 만큼 전공의에 모두 배정하는 방법과, 대의원 정수를 고정하고 지역과 직역의 대의원 정수를 같은 비율로 줄이는 방법중 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 대의원 250명을 270명으로 늘리고 20명 늘린 정수를 전공의에게 모두 배정하면 된다(10명을 늘리든, 30명을 늘리는 모두 전공의에게 배정한다). 동시에 의학회 대의원을 정수의 100분의 20명에서 50명으로, 협의회 대의원을 정수의 100분의 10명에서 20명으로 수정하면, 다른 지역과 직역의 대의원 정수는 변함이 없고, 전체 대의원에서 차지하는 비율만 동일하게 낮아지므로 반발을 줄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대의원 정수를 250명으로 고정하고, 전공의에게 배정할 대의원 수를 정한 뒤, 고정대의원을 균등하게 줄이거나, 의학회와 협의회의 대의원을 동일한 비율로 줄이면 된다. 또는, 전공의 외에 모든 지역과 직역의 인원을 같은 비율로 줄여 전공의에게 넘겨주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대의원 정수만 늘리는 것도 단순하지 않다.

일부 회원들은 전공의들에게 대의원 수를 추가로 배정한다고 해서 대의원회가 더 민의를 수렴할 수 있느냐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또, 전공의 대의원이 임기 3년 동안 전공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회원도 많다.

특히, 의협 정관개정은 재적대의원 3분의 2이상의 출석과 출석대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해관계가 얽히면 총회에서 통과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대의원 정수 및 책정방법 개선은 다수 대의원이 방향성을 공유하면서 장기간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대의원회가 구성할 (가칭) 대의원회 개혁을 위한 TF를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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