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한림원은 10일 성명을 내고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철회를 촉구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9일 개최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소위원회에서 10월부터 한의원에서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관리 등 3개 질환에 대해, 환자에게 치료용 첩약을 처방하면 건강보험에서 지원한다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첩약 급여 시범사업 세부안에 따르면, 첩약 한제(10일분)당 수가는 ▲심층변증ㆍ방제기술료 3만 8,780원 ▲조제ㆍ탕전료 3만 380원~4만 1,510원 ▲약재 비 3만 2,620원~6만 3,010원(실거래가 기준) 등을 합해 14∼16만원 수준이며 이 중 절반을 환자가, 나머지 절반을 건강보험에서 부담한다.

보건복지부는 7월 3일 열린 건정심 소위원회에서 변증ㆍ방제료를 기존 3만 8,780원에서 3만 2,490원으로 6,290원 인하하는 수정안을 보고했다.

하지만 이를 반영한 첩약 한제당 수가는 15만여원으로 기존 보고안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한림원은 “정부는 한약 첩약을 보험급여에 포함하기로 결정하고 실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일에는 의ㆍ한의 대립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라고 우려했다.

먼저, 한림원은 근거기반 의학의 대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했다.

한림원은 “신약과 신의료기술 등 모든 새로운 의료 관련 항목은 엄격히 통제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돼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해 시판허가를 받게 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보험급여도 받을 수 있지만, 첩약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생성된 과학적 근거가 없다.”라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첩약 급여화 결정은 근거기반 의학의 대원칙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정책이다.”라고 꼬집었다.

한림원 정책 결정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고 정치적인 판단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짚었다.

한림원은 “정치적인 판단을 하는 현상이 보편화되면 각 전문분야의 학술적 기반과 발전을 무너뜨린다. 우리나라의 교육, 경제, 국방, 의료 등에서 정상적인 운영의 근간이 되는 각 분야 전문가의 학술적인 연구결과에 바탕한 전문적 의견을 무시하고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단기적인 안목으로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면 결국 시행착오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정부의 일방적인 업무수행이 의학계 내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림원은 “첩약 급여화를 반대하는 의학계와 이를 추진하는 한의학계를 적대적인 관계로 만들어 의료일원화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의료일원화는 국민을 위해 필요한 당위성이 있지만 의학계와 한의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합심해 추진해도 어려운 일이다.”라며, “정부는 이 두 의료영역을 갈라놓기보다 국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시너지효과를 창출하도록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림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한의학의 과학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림원은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중국의 약학자 투유유는 전통 한약재로 사용되던 천연물인 개똥쑥에서 항말라리아 약인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해 전세계 말라리아치료법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한방의 과학화를 이룩한 성공사례인 것이다.”라며, “우리 한의학계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한의학으로 발전시켜서 한의학을 과학의 반열에 올려놓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한림원은 “섣부른 첩약의 급여화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움직임을 저해할 뿐이다.”라며, “첩약을 급여화하는 논의 이전에 한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과학적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을 먼저 구축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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