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자단체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1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 협상이 마무리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건보공단을 향한 비판과, 정부 개입 요구, 의협 집행부 책임론까지 어수선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지난 2일 오전 7개 유형 단체와 건보공단은 전날 오후부터 14시간 동안 이어진 마라톤 협상 끝에 2021년도 수가협상을 마무리했다.

협상 결과, 의원ㆍ병원ㆍ치과 등 3개 유형은 계약이 결렬됐고, 한방, 약국, 보건기관, 조산원 등 4개 유형은 계약에 성공했다.

그러자 의협을 선두로 의사단체들이 앞다퉈 건보공단과 재정운영위원회 비판에 나섰다.

의사단체들은 의료계 현실을 외면한 일방적인 수가 협상이라고 지적하며,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문재인 케어 발표 당시 대통령이 약속한 적정수가 보장을 이행하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주문했다.

건보공단과의 협상은 결렬됐지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최종 수치가 결정되기 전까지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가협상 결과는 ‘덕분에 챌린지’에도 불똥이 튀었다.

‘덕분에 챌린지’는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수개월 동안 밤낮 없이 헌신한 의료진의 사기를 진작하고 격려하기 위해 지난 4월 1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시작한 국민참여형 응원캠페인이다.

‘덕분에 챌린지’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자 최대집 의협회장은 “사회 각계 국민이 따뜻한 응원을 보내준데 대해 의료계를 대표해 깊이 감사드린다.’라고 응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원 유형 수가협상이 결렬된 직후 의사들은 ‘덕분에 챌린지’가 말뿐이었다면서 서운함을 토로했다.

특히, 8일에는 ‘덕분에 챌린지’를 당장 중지하라는 요구까지 나왔다.

부산시의사회는 8일 성명을 내고, “정부는 의료인의 헌신에 감사하다며 ‘덕분에 챌린지’를 시작했고, 대통령부터 모든 정부관료가 의료인의 헌신에 대한 보상을 이야기했지만 그 보상이 2.4% 협상안이었다.”라며,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쏟아내는 거짓된 ‘덕분에 챌린지’를 당장 중지하라.”고 주장했다.

부산시의사회는 “의료계의 배를 가르고 뼈를 발라 유지하고 있는 ‘저수가 덕분에’ 싸구려 강제 국민건강보험이 유지되고 있다.”라며, “정부는 건보공단 재정위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뒤에 숨지 말고 전면으로 나와 살인적 저수가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의협 집행부 책임론도 나왔다.

수가협상에서 의원 유형은 2019년도와 2020년도에 이어, 올해까지 3년 연속 협상이 결렬됐다.

세차례 모두 최대집 집행부가 협상에 나섰다. 최대집 집행부는 임기중 수가협상에 세차례 나서서 모두 계약에 실패한 첫 집행부가 됐다.

경만호 집행부와 노환규 집행부는 각각 1회, 추무진 집행부는 3회 모두 건보공단과의 수가협상에서 계약에 성공했다.

이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서 최대집 집행부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경기도의사회는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의협 40대 집행부의 수가 협상은 3년 연속 실패했고, 현 집행부 3번의 수가정상화 기회는 절망 속에 끝났다.”라며, “의료계는 생존위기에 내몰린 회원들을 위해 세 번의 수가협상을 모두 실패한 현 의협 집행부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현실적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비판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최대집 집행부에 총사퇴를 요구하는 한편, 회원 특별 생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범의료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다수 의사단체와 회원들은 의원 유형 수가협상 결렬의 책임을 건보공단과 정부에 돌리고 있다.

건보공단과의 수가협상에서 수가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단이 의협 협상단에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 14회 진행된 유형별 수가계약에서 의원 유형이 얻은 가장 낮은 인상률은 2009년도 2.1%이고, 가장 높은 인상률은 2017년과 2018년에 기록한 3.1%이다. 두 수가인상률의 차이는 1%에 불과하다.

유형별 수가계약이 진행된 14년 동안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나 코로나19 같은 다양한 변수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수가인상률은 대부분 2%대에 머룰렀다.

이 같은 현상은 왜 일어날까?

수가협상은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가 제시하는 추가소요재정을 놓고 공급자 유형별 제로섬게임 형태로 진행된다.

수가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재정운영위원회는 요양급여비용의 계약 및 결손처분 등 보험재정에 관련된 사항을 심의ㆍ의결하는 기구로,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 공익을 대표하는 위원 등 총 30명으로 구성된다.

재정운영위는 공급자단체 협상단에 추가소요재정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공급자들은 눈치보기에 급급할 수 밖에 없다.

공급자단체의 선택지는 단 두가지 뿐이다. 재정운영위를 대리한 건보공단이 제시하는 수치를 받거나, 거부하고 건정심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가입자들의 보험료 인상에 대한 부담을 내세우며 의협 협상단에 최종 2.4% 인상이라는 낮은 수치를 제시했다.

의협 협상단은 2.4%를 받으면 수가계약에 성공한 협상단이 되고, 2.4%를 거부하면 수가계약에 실패한 협상단이 되는 것이다.

1차 협상에 나서면서 협상을 완성시키겠다고 말했던 박홍준 의협 협상단장은 2일 수가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협상장에서 나올 때 내몰린 기분이 들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과정과 통보를 받았다.”라고 분개했다.

박 단장은 “우리가 내민 손을 내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가협상의 한 축인 의협 협상단장임에도 협상과정과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에 고개를 떨궜다.

지역의사회 한 대의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수가협상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 다른 협상단이 나선다고 해서 4%, 5%를 받을수 있겠나? 산하단체인 지역의사회가 수가계약을 맺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협 집행부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건보공단은 지난 5일 열린 건정심 본회의에 2021년 요양급여비용 계약 결과를 보고했다.

건정심은 계약이 불발된 의원, 병원, 치과 유형의 수가인상률을 소위원회를 열어 논의한 뒤 6월 중으로 본회의를 열어 최종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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