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케어로 대표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시행중이지만, 사각지대 이슈와 건강불평등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한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우며 보건의료의 상업화와 영리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건복지포럼 12월호에서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은 ‘포용복지와 건강정책의 방향’을 통해 이 같이 밝히며, “포용적 복지국가 달성을 위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넘어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을 다루고 사회적 보호와 보건의료 체계의 공공성을 높이는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문재인 정부가 ‘어느 계층도 소외됨이 없이 경제성장의 과실과 복지를 고루 누리면서 개인이 자신의 역할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나라’라고 정의한 포용적 복지국가 개념에 비춰볼 때, 현재의 건강정책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미흡하다.”라고 말했다.

우선 다양한 건강 결과와 건강 행동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뚜렷이 관찰되는데, 이는 의료보장 강화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의료보장 측면에서는 문재인케어로 대표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통해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의료급여 수급 자격이 까다롭고 노동시장 불평등, 주거 불안정, 전통적 가족 해체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보험 생계형 장기 체납자 문제 같은 사각지대 이슈는 여전히 남아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지리적 접근성이나 의료 질에서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보건의료 공급 체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대책도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라고 지적했다.

소득 5분위별 기대수명과 건강기대수명*자료: 한국건강형평성학회(2018)
소득 5분위별 기대수명과 건강기대수명*자료: 한국건강형평성학회(2018)

실제로 다양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국에서 소득, 사회계급, 학력, 지역에 따라 일관된 건강불평등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건강지표인 출생 시 기대여명과 건강기대여명(healthy life expectancy)에서 지역별, 소득계층별 뚜렷한 격차를 확인할 수 있다.

17개 광역시ㆍ도 중에서 수명이 가장 긴 곳과 짧은 곳의 격차는 약 3년이며, 건강기대수명의 격차는 5년 정도로 더 크다. 지역을 세분화해서 살펴보면 불평등은 더욱 두드러진다.

개인소득으로 구분해봐도 소득 최저 1분위와 최고 5분위 사이에는 기대수명 6년, 건강기대수명 11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지역박탈지수 분위별 연령표준화 회피가능사망률 (2013~2015년, 단위: /10만 명)*자료: 국민의 건강수준 제고를 위한 건강형평성 모니터링 및 사업개발: 통계로 본 건강불편등(2017,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지역박탈지수 분위별 연령표준화 회피가능사망률 (2013~2015년, 단위: /10만 명)*자료: 국민의 건강수준 제고를 위한 건강형평성 모니터링 및 사업개발: 통계로 본 건강불편등(2017,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렇게 사망 수준에 격차를 낳는 요인들 중에서는 회피 가능한 요인 혹은 예방 가능한 요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 전국 시ㆍ군ㆍ구의 박탈지수(deprivation index)를 산출해 4개 집단으로 구분하고 그에 따른 회피가능 사망률을 살펴보면, 절대격차에서든 상대격차에서든 뚜렷한 불평등을 확인할 수 있다.

정신건강과 삶의 질 수준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예방가능사망의 대표 사례에 해당하는 자살사망에서도 불평등은 매우 뚜렷하다.

65세 미만 연령 계층에서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이들에 비해 초등학교 졸업 이하 학력자의 상대격차는 남녀 각각 5배와 8배에 달한다. 절대적 격차에서도 남녀 각각 10만 명당 140명과 85명에 달할 정도로 불평등이 심하다.

불평등 현상은 만성질환이나 정신건강 이환은 물론 각종 질환의 대표적 위험 요인 중 하나인 흡연에서도 일관되게 관찰된다.

학력에 따른 연령표준화 자살 사망률(2015년, 단위: /10만명)*자료: 국민의 건강수준 제고를 위한 건강형평성 모니터링 및 사업개발: 통계로 본 건강불편등(2017,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학력에 따른 연령표준화 자살 사망률(2015년, 단위: /10만명)*자료: 국민의 건강수준 제고를 위한 건강형평성 모니터링 및 사업개발: 통계로 본 건강불편등(2017,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 센터장은 “이러한 건강불평등은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가져온 결과이며, 사회적 삶의 다른 영역에서 또 다른 불평등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라며, “의료서비스 보장만으로는 이러한 건강불평등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다만, “현 정부의 임기가 절반을 지난 시점에서 포용적 복지국가 전략을 성취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정책과제를 만들어 내서 실행에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그보다는 남은 임기 동안 사각지대 해소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과제들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공공보건의료 마스터플랜의 실행 계획을 구체화해 실행에 옮기는 것이 당장의 중요한 책무다.”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틀 안에서 몇 가지 전환을 시도해 볼 만한 대목이 있다면서, 포용적 복지국가 전략은 단순한 정책 패키지가 아니라 국가의 비전을 실현하는 수단이자 정책 ‘담론’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는데, 의료보장의 사각지대 해소라는 소극적 담론보다는 ‘모든 이에게 건강권 보장’과 ‘건강 형평성 증진’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의제를 표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담론은 당장의 현실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장기적 영향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또한, “의료보장 이외에 건강과 건강불평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존의 여러 사회정책들을 조율하면서 ‘건강한 공공정책(healthy public policy)’으로의 방향을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맥락 안에서 노동정책과 주거정책의 연계, 통합적 의료보장제도로서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연계, 지역사회 일차의료와 재활ㆍ복지서비스의 연계 등이 가능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그는 “소득주도 성장을 위한 혁신성장 요소로서 의료산업화에 대한 강조는 의료비의 낭비적 지출과 공공보건의료 체계의 훼손, 건강불평등의 심화, 정보인권의 침해 등 커다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라며, “포용적 복지국가를 위한 물적 토대를 확보한다는 정책이 포용적 복지국가 전략 그 자체와 가치를 훼손하는 모순은 없어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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