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강력범죄로 형이 확정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의료인이 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의료인이 해당 범죄를 범한 경우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중이지만, 과도하고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지난 8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20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다.

권 의원은 “최근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 환자들을 상대로 전신마취 후 성폭행한 의사가 징역형 집행 후 다시 개원해 진료하고 있고, 수 차례 반복해서 의료사고를 낸 의사가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병원을 옮겨다니며 진료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면서, “환자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행법에서는 의사가 허위 진단서 작성이나 의사 면허 대여 등 의료 관련법령 위반행위를 하는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살인이나 강도, 성폭행 등 일반 형사범죄를 범한 경우에는 이를 취소할 수 없으며, 중대한 의료사고를 내거나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라도 이를 공개할 의무가 없다.

반면, 해외의 경우 대체로 주요 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하는바, 일본은 벌금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으면 형의 경중에 따라 의사면허가 취소되거나 정지되고, 미국은 다수의 주에서 유죄 전력이 있는 의사는 면허를 받을 수 없게 하고 있으며, 독일은 의사가 형사피고인이 되는 경우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면허를 정지하고, 직무 수행과 관련한 위법이 있다고 확정되면 면허를 일시 또는 영구정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개정안은 특정강력범죄로 형이 확정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은 의료인이 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의료인이 해당 범죄를 범한 경우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는 한편, 면허 취소 또는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의료인의 성명, 위반행위, 처분내용 등을 공표할 수 있도록 했다.

권 의원은 “개정안의 엄정한 대처를 통해 의료인의 강력범죄를 예방하고 국민 일반이 보다 안심하고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전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특정 직업군에 대한 과도하고 불합리한 법안이라고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 검토의견을 통해 “헌법상 평등원칙을 과도하게 침해하면서 특정 직업군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과잉규제다.”라고 주장했다.

대한병원협회도 “의료인의 면허취소ㆍ징벌적 공표행위가 개인 명예실추 등 과도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측면 등을 고려해 의료정책적 관점에서 허용돼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또, 특정 전문직역에 대한 행정처분 내역 공표 관련 유사 입법례(변호사법, 법무사법, 공인회계사법, 변리사법 등)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과잉조치라고 역설했다.

보건당국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직업적 특수성 및 의료인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특정강력범죄를 범한 의료인을 결격사유로 추가하는 개정안의 입법취지에는 공감하나, 의료인의 결격사유를 직무 관련 범죄 및 보건의료 관련 범죄로 축소한 의료법 개정의 연혁을 고려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 및 합의를 전제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법무부는 “입법취지에 공감하나, 의료인의 결격사유에 ‘강력범죄’를 추가하고, 결격사유가 되는 해당 ‘강력범죄’와 다른 죄의 경합범에 대해 ‘분리 선고’, ‘위반사실 등의 공표’는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한편,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실은 특정강력범죄경력자를 결격사유로 추가하는 조항에 대해 “의료인의 경우 의료행위의 특성 상 높은 수준의 직업 윤리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므로, 살인, 강간, 강제추행, 강도 등의 강력범죄로서 금고 이상의 형ㆍ집행유예에 상응하는 중대한 범죄를 범한 경우를 의료인의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면허를 취소하려는 개정안의 취지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특히, 강력범죄를 범해 금고 이상의 형ㆍ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선고유예를 받은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행하는 것은 환자의 안전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정안의 타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타 전문직의 결격사유 규정 입법례
타 전문직의 결격사유 규정 입법례

전문위원실은 이어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법무사 등 사회적으로 전문직으로 인식되고 있는 국가자격의 경우 결격사유를 개정안에 대비해도 엄격하게 규정해 근거 법률의 결격사유 규정에서 위반 대상 법률을 제한하지 않고 있고, 이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위반 대상 법률과 무관하게 면허가 취소(제명)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위원실은 다만, “의료인 직무 수행과 무관하게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에 대해서까지 일률적으로 금고 이상의 형ㆍ집행유예를 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하므로 현행과 같이 직무 관련성이 있는 범죄에 한정해 결격사유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면서, “의료인의 사회적 책임, 타 전문직과의 형평성, 의료행위의 특수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입법정책적 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제언했다.

또한 ‘형의 분리선고’ 조항은 특정강력범죄와 다른 죄의 경합범에 대하여는 이를 분리해 선고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개정안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2조에 따른 특정강력범죄로 금고 이상의 실형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자는 의료인이 될 수 없도록 결격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특정강력범죄와 다른 죄의 경합범으로 처벌될 경우, ‘형법’ 제38조에 의해 가장 중한 죄에 정한 장기 또는 다액의 그 2분의 1까지 가중하되 각 죄에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을 합산해 형을 선고하게 되므로, 특정강력범죄에 정한 형이 금고 미만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죄의 경합범(競合犯)으로 처벌됨에 따라 금고 이상의 실형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게 되면, 그 선고된 형 전부를 특정강력범죄에 대한 형으로 보아 결격사유가 적용될 수 있어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위원실은 “따라서 개정안과 같이 특정강력범죄경력자를 결격사유로 추가하면서 특정강력범죄와 다른 죄의 경합범에 대해 이를 분리 선고하도록 할 경우 의료인에게 결격사유가 과도하게 적용되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위반사실등의 공표 관련 입법례
위반사실등의 공표 관련 입법례

아울러 ‘위반사실 등의 공표’ 조항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의료인의 의무 위반에 대한 인지도를 제고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의료법’ 상 의무 위반을 예방ㆍ방지하고, 국민이 안전하게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취지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위반사실 등의 공표는 ‘국민건강보험법’ 제100조, ‘영유아보육법’ 제49조의3, ‘모자보건법’ 제23조, ‘노인복지법’ 제39조의18 뿐만 아니라 현행법에서도 이미 운영 중인 제도라는 설명이다.

다만, 전문위원실은 “중대하지 않은 법 위반사실에도 범죄자로서의 낙인 효과로 의료 현장에 복귀할 수 없게 되는 등 헌법상 기본권인 개인의 인격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련 입법례와 같이 공표가 필요한 중대한 법 위반사실을 특정해 규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예를 들어 ‘영유아보육법’은 제45조 또는 제45조의2에 따른 행정처분을 받은 어린이집 중 보조금을 부정수급한 경우 또는 운영기준 및 급식기준을 위반해 영유아의 생명을 해치거나 신체 또는 정신에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한해 위반사실을 공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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