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

우리나라 의학교육계는 올해 4월에 세계의학교육연합회(World Federation for Medical Education)가 주관한 국제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바 있다.

이번 대회는 오랜 공백을 깨고 만 16년 만에 다양한 주제들을 선보이며 성공을 거둔 ‘서울 국제학술대회’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나라 의학교육의 잠재성을 마음껏 보여준 것도 서울 대회의 특징 중 하나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대규모 의학교육 학술대회에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자의 참여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타이완은 우리나라보다 약 한 세대 먼저 서양의학교육을 받아들여 정착시켰다. 타이완의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정치적 상황들은 우리나라와 닮은 점이 많다.

그럼에도 한세대 먼저 서양의학을 받아들여서인지 타이완의 국제화 수준은 우리를 능가한다. 의학교육에 대한 국제적 감각이나 열성도 우리나라 보다는 한 수 위에 있다.

타이완 의학교육자를 만나보면 우리와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데 바로 타이완의 의료수준이 세계최고라고 자부한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 하는 자료로 간 이식에 대한 사례와 생존율, 그리고 심도자술 등 우리와 우수성이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

서양의학 먼저 도입한 타이완 우리나라와 닮은꼴 많지만 국제화 수준 상당히 앞서
언젠가 미국에서 세계 200대 병원을 선정한 적이 있었는데 타이완의 병원 14개가 세계적인 병원으로 선정됐다.

이런 사실은 미국과 독일 다음으로 많은 수준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솔직히 타이완의 병원을 방문해 보면 이들이 이룩한 국제화와 이에 대한 국제적인 지명도는 상당히 높은 것이 사실이다.

타이완 전체 의과대학은 13개로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말레이시아, 타이완 모두 같은 해에 의과대학평가인증 개념을 도입해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의과대학 질 관리 문제가 대두되었고, 결국 의과대학 평가인증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나 이들 세 나라의 의학교육의 질적 향상과 평가인증제도의 도입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40개 의과대학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와 13개가 있는 타이완의 의학교육을 비교해 보면 한눈에 보아도 양적으로는 우리나라가 훨씬 규모가 커 보인다.

그러나 질적인 면을 보면 타이완 의과대학의 평균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높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타이완이 주최하는 의학교육 행사에 가보면 무엇보다도 의학교육에 대한 국제적인 동향을 재빨리 간파하고 의학교육에 대한 시대적인 동시성을 추구하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의학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도 우리보다 많아 보인다.

세계 저명 학자들과 왕성한 교류, 의학교육 혁신에 정부도 발 벗고 나서
이런 연유인지 타이완 의과대학들이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의학교육 행사도 우리보다 훨씬 많고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자의 초청과 이들과의 지속적인 관계유지도 눈에 띄게 달라 보인다.

일회성 초청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 형성으로 의학교육의 혁신적인 분야에 대한 타이완의 접목과 이식을 실현시키고 있는 것이다. 타이완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학교육을 위한 행사에서 많은 타이완 출신의 미국 현직 의학교육자들도 자주 눈에 띤다.

정치적 불안정이 원인인지 다수의 의학교육자는 이중국적과 국제적인 교육을 받은 인사들이고 이미 해외에 진출하여 상당한 위치에 도달한 타이완 학자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타이완은 아시아에서 비영어권 나라로 의학교육의 혁신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나라보다 높아 보이고 타이완 정부는 그 뒤에서 지원하고 있다.

사립이 75%가 넘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정부가 지원하는 공립 의과대학의 시설이나 교육에 대한 배려는 우리와 매우 다르다.

이미 화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것을 보아도 타이완의 학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올해 비엔나 ‘유럽의학교육학회’ 300명 단체 등록 참가 단일 최다 참가국 기록
국제적인 의학교육학술대회의 등록비가 100만원 정도하는 시대가 됐다.

올해도 유럽의학교육학회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성대히 개최됐고 4500명이 넘는 참가자가 등록했다.

우리나라 의학교육자도 매년 최대 20~30명 정도 참가한다. 유럽의학교육학술대회에서 단일 최다수 참가 국가는 태국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여비와 등록비로 참가하기에 300명 이상이 공동의 단체일정으로 참가한다.

우리나라 의학교육자의 수준에서 태국의 소득 수준으로 이와 같은 대규모의 의학교육 학술대회 참여는 이해하기 힘들어 보인다.

우리나라 정부가 국제적인 의학교육의 참여를 위해 지원한 일도 없거니와 앞으로도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온 의학교육 학술대회 참가자는 의과대학 교수가 주가 아니라 일선 진료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개원의들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태국 의사의 상당수는 공무원 신분이고 태국의 의학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태국정부가 이를 지원하는데 의과대학 교수도 학교의 지원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참가가 저조한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부럽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 지난 몇 년간 꾸준한 학술대회 참가의 성장세를 보여준 타이완이 올해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에도 280명에 이르는 대규모 참가단으로 주목을 받았다.

타이완의 국민소득은 아직 20000불이 채 안되고 우리나라는 30000불인 시대가 됐음에도 우리나라의 의학교육에 대한 학교나 정부의 지원이 어떤지는 참가단 규모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보다 국민소득 낮지만 타국에서 ‘타이완의 밤’ 행사로 잠재력 과시
물론 유럽의학교육학회의 참여도로 한나라의 의학교육에 대한 수준을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현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앞서가는 의학교육학술대회는 유럽이 주도한 학술대회임을 부인할 수 없다.

너무나도 미국적인 내용만 다루는 미국 의학교육학술대회와 달리 영국이 주도하는 유럽의학교육학술대회는 가히 전구(全球)적인 학술대회로 전 세계 90개국 이상 참여하고 있다.

중국에 주권이 넘어가고 애매한 상태에 있는 타이완은 유럽의학 교육학회 첫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본부를 둔 타이완대표부를 통해 궁전과 같은 장소를 빌려 ‘타이완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

유럽의학교육학회에 참가한 의과대학 교수, 그리고 의과대학생과 전공의, 타이완 평가원 등 관련기구 모두와 타이완 의학교육학회와 평가원이 초청한 국제적인 저명 학자들이 참가하여 품위 있는 만찬행사를 진행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초청하고 싶어 하는 외국의 저명 의학교육 관련 인사들도 이미 다 와 있었다.

초청받은 다른 나라의 의학교육자들도 타이완의 밤 행사 규모에 대한 놀라움을 표시했다.

매우 비싸고 화려한 장소에서 300명이 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타이완 의학교육계의 자체적인 단합은 물론 현재 의학교육을 주도하는 선도자들을 초청한 대단한 친목행사를 개최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현재 만들어 내는 의료 환경의 악화는 의과대학 교수나 교육병원이면 당연히 해야 할 의학교육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내는 현실이 됐다.

국제 의학교육 학술대회 참여 경비는 고사하고 이런 활동을 위한 시간조차 만들어 내기가 더욱 힘들어 지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이웃 나라가 개최하는 외국에서의 행사에 참여하며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도 어쩔 수 없었다.

의료나 의학교육 모두 개선이나 혁신을 일으키려면 적절한 규모의 관련 커뮤니티 형성이 우선이다.

다른 말로 이야기해 공동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모임이 어느 정도의 임계규모(critical mass)가 돼야 한다.

국민 소득 만으로 비교해 보아도 우리나라보다 더 열악한 의료 환경을 갖고 있는 이웃나라 타이완의 의학교육에 대한 역량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자못 궁금하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의학계나 의료계 모두 존경받는 70대 후반의 의학교육의 리더 급 학자들이 우리보다 많아 보인 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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