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외상센터에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트라우마센터를 국가 지원으로 설치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지만, 정부와 의료계, 국회 전문위원실 모두 부정적인 검토의견을 내놔 주목된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지난 2월 19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12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예방 가능 사망률은 30.5%로 일본(15%) 또는 미국(10%)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중앙응급의료센터, 권역응급의료센터, 전문응급의료센터 및 지역응급의료센터 중에서 권역외상센터를 지정ㆍ지원해 중증 외상환자에 대한 진료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2020년까지 예방 가능 사망률을 20%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정부의 행정적ㆍ재정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권역외상센터에 근무하는 의료인의 경우 직무의 성격상 다양한 사고로 인한 환자들의 참혹한 상태를 직면하고 일상적으로 생과 사를 경험하게 됨으로써 심리적ㆍ정신적 손상으로 인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아 원활한 인력수급에 한계가 있다고 권 의원은 지적했다.

권 의원은 “의료진의 심리적 안정을 통한 업무의 지속성 제고와 효율적 직무수행을 위해 권역외상센터에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트라우마센터를 설치ㆍ운영하도록 하고, 국가가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전했다.

권역외상센터별ㆍ연도별 전담전문의 사직인력 현황(단위: 명)주1)권역외상센터는 선정 후 지정 절차를 거쳐 지정이 완료되며, 국립중앙의료원ㆍ원광대병원ㆍ제주한라대병원은 선정은 완료됐으나 지정이 되지 않은 상황임*자료: 보건복지부
권역외상센터별ㆍ연도별 전담전문의 사직인력 현황(단위: 명)주1)권역외상센터는 선정 후 지정 절차를 거쳐 지정이 완료되며, 국립중앙의료원ㆍ원광대병원ㆍ제주한라대병원은 선정은 완료됐으나 지정이 되지 않은 상황임*자료: 보건복지부

실제로 중증외상환자의 진료를 위해 현재 17곳의 권역외상센터가 운영 중이지만, 전담전문의의 인력부족 문제가 매년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매년 다수의 권역외상센터에서 전담전문의의 사직이 발생하고 있는데, 2017년에 64명, 2018년에 47명의 권역외상센터 전담전문의가 사직한 것으로 보고됐다.

또한, 2018년에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를 제외한 모든 권역외상센터에서 당초 계획한 전담전문의 충원인력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단국대병원ㆍ원주기독병원 등 6곳의 권역외상센터는 2017년에 비해 전담전문의 현원이 감소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개정안에 대해 정부와 의료계, 국회 전문위원실 모두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방법론에서는 이견을 보였다.

보건복지부는 “다발성 손상을 입은 중증외상환자를 진료하는 직무 성격상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이 겪게 될 심리적ㆍ정신적 손상을 고려한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나, 권역외상센터는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지정돼 있어 기관 내에서 정신건강의학과 등 트라우마 치료가 가능하다.”라며, “외상센터 근무 의료진만을 대상으로 한 별도 센터를 설치하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판단했다.

또한, 권역외상센터장 및 기관장의 책무에 관한 사항은 현재 ‘권역외상센터 운영지침’에 규정해 관리하고 있으므로, 별도 법률사항으로 규정하기보다는 해당 지침에 관련 사항을 반영하고, 권역외상센터 평가를 통해 지침 준수여부를 정기적으로 관리ㆍ감독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어 “트라우마 치료 등 관련 비용은 권역외상센터 국고보조금 운영 지침을 통해 지원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관련 학회도 개정안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다른 지원방안을 제시했다.

대한외상학회는 “권역외상센터 내 트라우마센터를 두는 것은 조직 구조상 중복 문제 등으로 별도 건립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외상센터 근무 의료진이 트라우마를 많이 겪는다는 근거자료가 없으며, 실제 현장에서도 심리적ㆍ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많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외상학회는 “트라우마 환자의 치료는 정신건강의학과 담당으로 판단된다.”라며, “별도 트라우마센터 설립보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성을 지원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라고 강조했다.

권역외상센터 역시 별도 트라우마센터 설치는 필요하지 않으며, 심리적ㆍ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의료진이 있다면 이용자가 이용이 편리한 곳에서 치료받고 그 비용지원을 해주는 방식이 나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A 권역외상센터는 “외상 센터의 의료진이 힘든 이유는 정신적인 문제보다는 인력수급이 없어서 발생하는 신체적 문제다.”라며, “의료인력 부족으로 인해 휴가 및 교육 참여 등 기본적인 활동도 어려운 상황에서 트라우마센터 설치 시 활용이 어려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B 권역외상센터도 “현재 국내 상황에서는 권역외상센터 내 트라우마센터 설치가 시급하게 필요한 시설이 아닌 것 같다.”면서, “자체 조사결과, 현재 외상센터에 종사하고 있는 구성원들 또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보건복지위 전문위원실 역시 “개정안은 권역외상센터 의료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안정적인 근무 여건을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으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전문위원실은 우선, 권역외상센터 근무 의료진의 심리적ㆍ정신적 트라우마와 권역외상센터 인력수급 간의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중증외상환자의 진료 과정에서 얻는 의료인의 심리적ㆍ정신적 트라우마를 권역외상센터 인력수급의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는데,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권역외상센터 의료인의 심리적ㆍ정신적 트라우마와 관련된 연구나 조사가 수행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이들이 어느 정도의 트라우마에 노출돼 있으며, 이것이 권역외상센터 근무를 기피하는 원인이 되는지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참고로, 해외에서는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의 이차적 외상 스트레스(Secondary traumatic stress)에 관한 연구 등이 수행돼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의 정신적 문제에 관한 논의가 진행돼 오고 있다.

전문위원실은 또,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의 심리적ㆍ정신적 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하더라도, 가장 효율적인 지원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권역외상센터의 트라우마센터 설치ㆍ운영에 따른 추가재정소요(단위: 100만원)*주: 단수조정으로 합계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음
권역외상센터의 트라우마센터 설치ㆍ운영에 따른 추가재정소요(단위: 100만원)*주: 단수조정으로 합계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음

국회예산정책처가 제출한 이 법안에 대한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연간 약 13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트라우마센터의 운영 방안과 기대 효과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위원실은 “의료진의 심리적ㆍ정신적 회복을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해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을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심리상담이 가능한 바우처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라며, “권역외상센터 의료진이 처한 심리적ㆍ정신적 트라우마 상황에 대해 명확히 검토한 후 가장 효율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