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과 같은 정신장애인의 인권보호를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 정신보건 전달체계 및 서비스 인프라를 확충하고, 관련 재원 구조를 국가 보장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상설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에 기초한 심의위원회 및 후견제도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호주의 정신보건 전달체계 및 기본 토대
호주의 정신보건 전달체계 및 기본 토대

강상경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국제사회보장리뷰’ 여름호에 기고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정신보건영역의 인권보호’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강 교수에 따르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다양한 정신보건서비스 전달체계가 구축돼 있고 다양한 정신보건서비스 인력이 참여하며, 모든 서비스가 무료이기 때문에 정신장애인의 서비스 선택권이 넓고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져 있다.

이러한 정신보건 전달체계 자체가 당사자의 인권 옹호와 보호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전달체계의 외형적 구성은 우리나라와 유사하지만 호주의 정신보건서비스는 정신과 의사에 의한 제공 뿐 아니라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간호사 등 정신보건 전문가에 의한 서비스도 의료보장 재정으로 지원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또, 뉴사우스웨일스주의 비자의 입원 치료 과정은 의뢰, 초기 사정, 입원 기준 적합성 판단, 퇴원 또는 입원 판단, 정신건강심의위원회 연장 심의, 연장 심의 기준 적합성 판단, 연장 또는 퇴원 등의 순서로 이뤄진다.

의뢰 과정을 거쳐 정신장애인이 입원 병원에 연계되는 경우에는 정신과 의사나 정신보건 전문가가 초기 사정을 한다. 초기 사정의 법적 기준은 ▲당사자가 정신장애인이고 현재 정신증적 증상이나 기타 정신과적 증상을 나타내고 있는가 ▲당사자가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위험성을 보이는가 ▲비자의 입원 치료 외에 다른 대안적인 치료 방법이 있는가 등이다.

세 기준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자의 입원이나 지역사회 치료를 선택해야 하고, 세 조건이 모두 충족될 때만 비자의 입원 치료가 가능하다.

비자의 입원 치료 과정(강상경, 2019)
비자의 입원 치료 과정(강상경, 2019)

하지만 비자의 입원 치료 명령이 내려져도 정신장애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다양한 조치가 취해진다. 비자의 입원 치료와 같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당사자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상설 정신건강심의위원회(MHRT, Mental Health Review Tribunal)를 운영한다.

우리나라 심판위원회와 가장 큰 차이는 정신건강심의위원회는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 상설 기구로 필요한 경우에 언제나 심의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비자의 입원 치료로 인한 인권침해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는 비자의 입원이 발생할 경우 필요에 따라 정신건강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할 것을 규정하고 있고, 비자의 입원 치료가 시작된 후 3개월마다 정신건강심의위원회에서 재심사를 진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심사의 법적 기준은 세 가지 비자의 입원 기준과 동일하며, 재심사는 장기 입원을 예방하고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존중할 수 있는 중요한 단계이기 때문에 처음 1년 동안은 3개월마다 한 번씩 진행하고, 1년이 지난 후에는 6개월마다 한 번씩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재심사를 진행하는 정신건강심의위원회는 정신장애인의 상황을 다차원으로 진단할 수 있도록 법조인, 정신과 의사, 정신보건 전문가 등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한다. 정신건강심의위원회의 재심사 결과 세 가지 조건이 아직도 충족되고 있다면 계속 입원치료 명령을 내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안을 강구할 수 있다.

비자의 입원 치료는 당사자의 자기의사결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전문가나 보호의무자 및 후견인에 의해 이뤄지고, 지속 여부에 대한 판단도 정신건강심의위원회가 하기 때문에 잠재적 인권침해의 소지가 여전히 있다.

이러한 잠재적 인권침해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호주 정신보건법은 다양한 인권 보호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도 정신장애인 후견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호주의 정신건강심의위원회와 같이 당사자 인권 보호를 위한 상설 심의위원회는 부재하며 인권 보호 절차도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지역사회 비자의 치료 과정(강상경, 2019)
지역사회 비자의 치료 과정(강상경, 2019)

아울러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 치료를 거부도 당사자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지역사회 치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의 비자의 치료는 ‘지역사회 치료 명령 제도(Community Treatment Order)’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정기적으로 치료받는 것이 한계가 있다고 판단될 때, 보호의무자나 정신보건 전문가가 외래 치료 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또한 비자의 입원 치료를 받던 정신장애인이 정신건강심의위원회의 심사 결과, 지역에서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당사자를 위해 최선이라고 판단될 때, 퇴원과 동시에 정신건강심의위원회가 외래 치료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당사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외래 치료 명령에 대한 판단은 정신건강심의위원회가 할 수 있다.

강 교수는 “입원보다는 지역사회 치료를 우선시하고, 입원 전에 정신장애인이 최대한 지역사회 치료 명령에 따를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점에서 인권 보호 조치로 볼 수 있다.”라며,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서비스 인프라 및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이 부족하고 호주의 정신건강심의위원회와 같이 적극적인 인권 보호를 위한 상설 시스템이 아직 형성돼 있지 않다.”라고 전했다.

강 교수는 “한국과 호주 모두 법에서 당사자의 자기의사결정권 보장을 지향하고 이를 통한 인권 보호를 표방하고 있지만, 유사한 법이념과 다르게 실제 정신장애인에 대한 인권 보호 수준은 두 나라 간에 차이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입원 정신장애인의 평균 입원 일수가 호주는 16일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116일을 웃돈다는 것이다. 장기 입원은 지역사회 정신보건을 표방하는 장애인권리협약의 원칙에 위배되어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고 강 교수는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장애인권리협약 비준 국가로서 법체계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두 나라의 서비스 인프라 및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 등 기본 토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면서, “호주의 제도에서 나타나는 인권 보호 이념은 법적 선언에 더해 실제 작동하는 광범위한 정신보건 체계 및 다양한 운영 지원 시스템으로 그 실현 가능성을 높인다.”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호주와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법제도가 아니라 기본적인 정신보건 전달체계의 구조 및 운영에 있다고 판단된다.”면서, “호주의 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에 불과한데, 인구 10만 명당 정신과 의사 수가 호주는 13명이 넘고 우리나라는 5명에 불과해 호주가 우리나라보다 2.5배 이상이다.”라고 말했다.

호주의 정신보건 전달체계는 국가 의료보험과 국가장애보험제도에 기초한 입원 및 지역사회 서비스가 다차원적으로 구성되고, 다양한 서비스 선택 과정을 지원하는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이 상설 운영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역사회 정신보건서비스 체계 및 정신건강심의위원회와 같은 심판위원회의 운영을 원활하게 하는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이 상설 운영되고 있지 않다. 즉, 법이념은 두 나라가 유사하지만, 정신보건서비스 인프라와 재정 지원 방식 및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의 운영에서는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즉, 법제도에서는 우리나라도 호주의 이념과 유사하고, 법에 규정된 서비스와 제도도 유사하지만 법에서 지향하고 있는 이념을 실천에 옮기는 것에서는 두 나라 간 차이가 크다.”라며, “우리나라의 정신보건 시스템이나 운영 체계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직까지 법이 표방하는 정신장애인 인권 보호 이념을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호주처럼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 정신보건 전달체계 및 서비스 인프라를 확충하고, 관련 재원 구조를 호주의 국가의료보험이나 국가장애보험제도처럼 국가 보장형으로 전환해야 하며, 상설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에 기초한 심의위원회 및 후견제도를 운영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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