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신속하고 적절한 중환자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정법이 발의됐지만, 정부와 의사협회, 병원협회, 간호협회는 기존 법과의 중복 및 실익 여부, 충돌 가능성 등을 지적하며 별도의 입법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전문학회와 간호조무사협회는 찬성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끈다.

앞서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은 지난해 11월 ‘중환자의료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률안은 최근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됐다.

박 의원은 “중환자는 일반환자와 달리 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집중적 관리와 적절한 치료가 이뤄질 경우 그 상태가 회복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최선의 중환자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은 국민의료 향상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법령상으로 중환자실의 시설과 운영에 관해 최소한의 기준을 정하고 있을 뿐 중환자의료에 관한 국가 차원의 정책 수립, 중환자의료를 시행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지원방안, 중환자에게 최선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 등 중환자의료의 실질적인 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은 크게 부족하다고 박 의원은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제정안은 중환자의료와 관련된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중환자의료 발전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규정했다.

또, 중환자의 진료비 중 미수금을 대지급하고 중환자실 등의 설치 자금 등을 지원하기 위해 중환자의료기금을 설치하고, 중환자실의 운영과 관련해 중환자의료기관의 준수사항을 규정하도록 했다.

이 같은 제정안에 대해 보건당국과 의사협회와 병원협회, 간호사협회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환자를 대상으로 최선의 의료를 제공하려는 취지에 공감한다.”라면서도, “별도 입법이 최선의 방법인지 불분명하다.”라고 전했다.

중환자는 응급환자인 경우가 많아 ‘응급의료법’을 통해 취지 달성 가능한 부분이 많고, 중환자 아닌 환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또, 제정안의 상당 부분이 의료법 및 응급의료법에서 규정된 사항과 중복돼 있어 실익이 작은 측면이 있고, 일부 사항은 법률 간 충돌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상세 조항 중 재정 지원 및 중환자의료기금의 설치에 대해서도 “중환자의료기관에 대한 재정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예산 배분의 형평성 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부정적 검토의견을 내놨다.

또한, 중환자의료기금을 설치하는 것은 정부의 출연금 부담이 가중될 수 있고, 기대효과가 불분명하며, 신축적 사업 추진 필요성 등에 있어 기금 신설의 타당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국가재정법’ 제14조제2항에 따른 기금설치 요건을 고려할 때, 별도 기금 신설 실익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도 “전반적으로 ‘의료법’ 등 기존 법령과 중복돼 입법 실익이 부족하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사실상 반대 입장을 전했다.

대한병원협회도 “중환자에 대한 양질의 진료제공과 환경 마련 등 필요성에는 공감하나, 이를 법률 제정을 통해 달성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논의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병원협회는 이어 “제정안 일부가 의료법 및 응급의료법과 중복되고, 구체적 실익이 부족하다고 평가될 수 있으며, 중환자 개념과 응급의료법에 따른 응급환자 개념을 엄밀히 구분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역설했다.

대한간호협회 역시 “중환자의료 관련 정책 강화 및 지원 취지에는 동의하나, 이는 기존 의료법 개정, 수가 개선 등으로 가능한 측면이 있고, 별도 법률제정이 오히려 의료기관의 자기 책임성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중환자의학회는 “국민이 신속하고 적절한 중환자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에 찬성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도 “국민이 신속하고 적절한 중환자의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에 찬성한다.”라고 전했다.

보건복지위 전문위원실은 입법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몇 가지 점에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문위원실은 “제정안은 중환자의료종사자의 권리와 의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중환자의료기관의 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과 유사하게 규정하고 있다.”라며, “중환자의료, 중환자의료종사자, 중환자의료기관 등을 응급의료, 응급의료종사자, 응급의료기관과 유사하게 현행 ‘의료법’과 별도의 법률로 구분해 규율해야 할 실익이 있는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중환자와 응급환자의 법적 성격의 비교, 법률 체계 상 중복 여부 등과 관련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응급환자의 경우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송 및 처치 등에 있어 신속성이 요구된다는 특징이 있으나, 중환자와 일반 환자의 차이는 질병, 수술, 사고 등의 증세의 차이에 불과해 별도의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할 실익이 높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의 권리와 의무, 중환자의료종사자의 권리와 의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등 제정안의 상당 부분이 ‘의료법’ 및 ‘보건의료기본법’과 중복되는 측면이 있으며, 중환자의료기금의 경우 신축적 사업 추진 필요성이 높지 않고 일반회계와 차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현재 국내 중환자실의 설치ㆍ운영 현황과 관련해 제기되는 문제는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상 전담 전문의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고, 병상별 시설 및 인력 규격을 강화하는 등, 현행 법령 개정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환자실(Critical Care Unit, CCU) 또는 집중치료실(Intensive Care Unit, ICU)은 중증의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집중적인 치료를 시행하는 공간이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제34조 별표 4는 병상이 300개 이상인 종합병원은 입원실 병상 수의 100분의 5 이상을 중환자실 병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그 외 중환자실에 대해 병상별 시설 및 인력 규격을 규정하고 있다.

연도별 국내 중환자실 현황(단위: 병상, 명)*자료: 보건복지부
연도별 국내 중환자실 현황(단위: 병상, 명)*자료: 보건복지부

2018년 11월 기준 국내 중환자실 병상은 총 1만 237병상으로, 2015년 9,768병상 대비 469병상 증가했다.

그런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7년 5월부터 7월까지 상급종합병원 43개소, 종합병원 239개소 등 282개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2차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를 실시한 결과, 중환자실을 설치ㆍ운영하는 의료기관의 인력ㆍ시설ㆍ장비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의료기관별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담 전문의 운영 현황(2017년 기준, 단위: 개소,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담 전문의 운영 현황(2017년 기준, 단위: 개소,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먼저, 전담 전문의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의료법 시행규칙’ 제34조 별표 4가 중환자실은 전담 전문의를 둘 수 있도록 규정함에 따라 총 282개 기관 중 중환자실에 전담 전문의를 둔 기관은 113개 기관(40.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전담 전문의 1인당 중환자실 병상 수의 평균은 24.7병상으로 2014년 44.7병상에 비해 감소했으나, 선진국의 15병상 수준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14병상을 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다.

간호사 1인당 중환자실 병상 수(2017년 기준, 단위: 개소,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간호사 1인당 중환자실 병상 수(2017년 기준, 단위: 개소,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아울러 간호사 1인당 중환자실 병상 수는 2017년 평균 1.01병상으로 이는 3교대 근무 등을 감안하면 간호사 1인당 환자 3∼4명을 간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경우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2명 이하로 유지할 것을 규정하거나(미국 캘리포니아주), 인공호흡기를 적용한 환자인 경우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1명 이하로 유지하도록 규정(영국)하는 것에 비하면 간호사 수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장비 및 시설 구비 현황(2017년 기준, 단위: 개소,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문장비 및 시설 구비 현황(2017년 기준, 단위: 개소, %)*자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격리실과 동맥혈 가스분석기, 이동식 인공호흡기, 지속적 신대체요법 기기, 기관지 내시경, 중환자실 전담의사를 위한 독립공간 등, 중환자실 운영에 필요한 전문장비 및 시설 구비 현황 역시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43개 기관 모두 6개를 구비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종합병원의 경우 6개 모두 구비한 기관은 239개 기관 중 49개 기관에 불과했다.

이와 같이 국내 중환자실의 인력ㆍ시설ㆍ장비가 선진국 대비 부족함에 따라 중환자실 사망률 또한 선진국 대비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7년 중환자실 사망률 평균은 14.2%로 2014년 16.9% 대비 2.7%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선진국의 경우 10.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병원별 중환자실 사망률 또한 최소 5.6%에서 최대 38.9%까지 편차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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