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해 향후 임신기간별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 한계를 도입하고, 낙태죄 법정형의 조정, 선택형으로서 벌금형 추가 등 낙태죄 처벌규정을 정비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국회입법조사처(김주경, 이재명 입법조사관)는 최근 발간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관련 쟁점 및 입법과제’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모자보건법’ 및 ‘모자보건법 시행령’
‘모자보건법’ 및 ‘모자보건법 시행령’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11일 ‘형법’의 (임부의) 자기낙태죄 조항과 업무상 동의낙태죄 조항 중 ‘의사’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면서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현행 법률을 계속 적용하도록 했다.

이번 판결의 요점 중 하나는 제한적인 허용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낙태를 전면적ㆍ일률적으로 금지한 현행법이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임부의 임신종결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이번 결정에 따라 입법자는 ‘형법’, ‘모자보건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임부의 자기결정권 허용 수준별 시기 구분(임신 주수 기준), 시기별 허용 사유, 자기결정권 행사가 어려운 경우(미성년자, 지적 발달 지체인 등)에 대한 보완, 의사의 진료 거부 권리, 낙태 결정 전 상담 및 숙려기간 도입, 건강보험 적용 등이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견되며, 각 사안별로 또 다른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낙태의 규율에 있어 원칙적 금지, 일정한 적응사유가 있을 때 허용이라는 ‘적응 방식’을 채택하고 ‘모자보건법’에 우생학적ㆍ윤리적ㆍ의학적 적응사유를 열거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현행법상 적응사유에 임신 후 일정기간 내에서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기한 방식’이 추가돼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전체 임신 기간을 세 개 구간으로 나누어 낙태 허용수준을 달리 하는 ‘임신기간별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 한계’를 도입하는 개정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라고 제안했다.

즉, ▲임부가 자기결정권을 100% 행사하는 임신 초기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하는 적응사유에 따라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기간 ▲임신을 종결시키지 않으면 임부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의학적 판단이 없다면 절대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기간을 설정하는 방안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현행 허용사유에 사회경제적 사유만 추가한 후 임신기간별로 달리 적용하도록 하는 것보다 이 같은 방식이 체계상 일목요연할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또, 상담과 숙려기간 등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기 전의 절차와 관련된 사항들을 모아 별도의 조항으로 두는 방안도 내놨다.

아울러 전체 법체계의 관점에서 낙태에 관한 금지규정(현행 ‘형법’상 처벌규정)과 위법성을 조각하는 허용사유(현행 ‘모자보건법’상 적응사유)를 ‘형법’에 함께 규정하되, 허용사유와 관련해 ‘형법’에는 기본적인 사항을 담고, ‘모자보건법’에 낙태에 관한 구체적인 절차, 세부적인 허용사유의 기준 등을 규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와 함께 헌재 결정에 따른 이번 개정 시에 낙태죄 법정형의 조정, 선택형으로서 벌금형 추가 등 낙태죄 처벌규정을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금까지 낙태죄와 관련된 논쟁이 낙태죄의 폐지와 존치,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 허용, 배우자 동의 조항 삭제 등 다양한 쟁점을 두고 진행돼 왔다.”라며, “이번 헌재 판결로 임신 초기 자기결정권을 인정받게 됨에 따라 논의의 대전제를 바꿔야 하고, 논의해야 할 사안들이 더 세분화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정황을 고려할 때 향후 세부 사안별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이며, 따라서 입법 개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낙태에 대한 인식과 관점은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그 간극이 커서 좀처럼 사회적 합일점을 도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헌재 판결은 낙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외국 입법례와 법률 개정 동향을 참고해 우리 실정에 적합한 법제 정비가 가능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이어 “헌재에서 입법 개선에 시한을 두고 있는데 제한된 시간 내에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에 기초한 법률개정이 가능하려면 국회가 중심이 돼 토론회ㆍ공청회 등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세계 낙태법 현황
세계 낙태법 현황

한편, 세계의 낙태 허용 입법례를 살펴보면, 1950년부터 1985년까지 산업화된 대부분의 국가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20세기 말 기준으로 전 세계 98%의 국가가 임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63%가 여성의 신체 건강 보존을 위해, 62%가 여성의 정신 건강 유지를 위해, 43%가 강간ㆍ성적 학대ㆍ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의 중단을 위해, 39%가 태아 이상 또는 손상 확인을 원인으로, 33%가 사회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27%가 임부의 요청에 따라 낙태를 각각 법적으로 허용한다.

세계 낙태법 현황 지도의 분류 범주
세계 낙태법 현황 지도의 분류 범주

세계보건기구는 낙태를 엄격히 제한하는 국가들에서 낙태 시술률이 훨씬 높고 이런 국가들의 경우 대부분의 낙태가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안전하지 않은 방법으로 시행돼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빈도가 높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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