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건강보험 정책을 결정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가 사실상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을 해왔다는 지적에 장본인인 정부가 “발끈”했다. 비판만 할 게 아니라, 그동안 성과도 있었다는 반박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명수 위원장 주최,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 주관으로 지난 7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 마련을 위한 건정심 개편방안 모색 정책세미나’가 열렸다.

지난 2002년 탄생한 건정심은 건강보험 정책결정에 있어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활동하고 있지만, 건정심 위원 구성과 운영에 대한 지적이 지속돼 왔다. 특히 2004년 감사원의 지적이 나온 이후 여러 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건정심 위원 구성의 문제와 의사결정 범위 등에 대해 문제 삼았다.

이날 발제에 나선 이평수 전 차의과대학교 교수(전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는 건정심 위원 구성의 편향성을 지적했다. 건보공단과 심평원 등 일부 공익 대표의 중립성과 객관성, 가입자 대표의 객관성, 공급자 대표의 대표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전 교수는 또, 위원 구성을 보건복지부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하다 보니 공익대표와 가입자단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장관의 재량권 남용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근거에 의한 타협보다는 힘에 의한 다수결 ▲환경 변화의 반영 한계 ▲결정 기준(지침 또는 원칙)의 부재로 객관성 한계 등으로 의사결정 과정에도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 전 교수는 “건강보험제도는 자체 또는 관련제도의 변화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므로 변화에 적응하는 법령 개정과 운영이 고려돼야 한다.”라며, “이러한 측면을 고려해 건정심 의사결정 구조와 과정의 개선을 위한 법령 정비가 진행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토론에 나선 각계 전문가들도 현행 건정심의 의사결정 구조와 위원 구성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진수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은 “투표까지 진행되면 공익대표가 가입자단체의 눈치를 보며 중립성을 지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건정심 구성 프레임 자체가 복지부가 정책을 원활하게 끌어가는데 직접 결정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덜고, 책임을 위임하기 위한 면제부 기능으로 작용되다 보니 그에 합당한 구성을 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라고 비판했다.

서 위원장은 이어 운영과정에 있어서도 방대한 양의 서면심사를 언급하며, 실질적으로 논의도 되지 않는데 굳이 형식적인 건정심을 거쳐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또한 수가결정은 기본적으로 공단과 공급자 간 계약인데, 중간 결렬시 일방적으로 공급자에게 페널티를 부여하는게 옳은지 의문이며, 일부 건정심 위원의 전문성 결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진환 법무법인 열린사람들 변호사도 현행 건정심 구성의 문제로 공익대표 구성을 꼽으며, 이로 인해 위원회 제도 취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표 대결로 갔을 때 결국 실질적인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것은 공익대표 8인의 의견인데, 공익대표 8인 중 6인이 공무원이거나 국가산하기관 소속 직원이다 보니 건정심 심의가 정부의 의사대로 결정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요양급여비용 결정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저수가’ 정책을 통한 ‘보장성 강화’를 내세우고 있어 공익대표가 아니라 가입자 대표로서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러한 공익대표의 구성에서의 문제점으로 인해 건정심은 중립성이나 전문성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고, 행정부로부터도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라며, “많은 경험과 전문지식을 가진 여러 전문가가 집단적인 의사결정이 아니라 정부 주도의 정책결정 기구로 전락해버림으로써 신중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급자와 가입자 간의 협의를 통한 조정보다는 정부의 표 대결 선호로 의사결정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공익대표의 실질적인 조정과 중재역할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위원회의 장점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단점인 의사 결정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문제점만 부각된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건정심 구조개선안으로 “수가 등 건정심의 심의사항들은 의료 공급자와 가입자의 협의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위원회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므로 공익대표에 정부측 인사는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진정한 공익대표로서의 역할에 적합하다.”라며, “만약 정부측 인사를 포함시킨다면 정부는 의료비 지불자의 위치이므로 가입자 대표 8인 중 2인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제안했다.

또, 많은 수의 공익대표는 이해관계 충돌시 실질적인 조정과 중재역할을 하기에 부적합하므로 3인으로 축소하되, 공급자 측이 추천한 위원 1인, 가입자측이 추천한 1인, 공급자측과 가입자측이 합의해 추천한 위원장 1인으로 구성할 것을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이러한 구조개선을 하는 것이 계약관계에 기초한 보험자와 공급자 간의 협상이라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설립 취지에 부합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만 10년간 건정심 부위원장과 소위원장을 했는데, 대부분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이라는 지적에 10년간 역할한 사람으로 마음 편치이 않다.”라고 토로했다.

신 연구위원은 건정심의 의사결정 범위 논쟁과 관련해 “법령에서는 건정심 의사결정 대상을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어 중요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라며, “향후 건정심을 최상위기구 역할을 하게 한다면 그에 걸맞는 수준의 업무범위를 재정리해야 한다. 하부에 전문위원회, 별도 소위원회 등을 만들어 세부적 검토를 받아오는 형태로 운영하는 방법이 있다.”라고 제안했다.

위원구성에 대해서는 “공급자, 가입자, 공익대표가 각각 8인씩인데, 공단의 위상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공단이 과연 가입자를 대표하는지, 보험자인지에 대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신 연구위원은 또, 공단에 가입자대표 기능을 부여하고, 가입자 대표 선정을 공단이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아울러 요양급여협의회가 협의해 공급자 대표를 정해야 한다고도 했다.

건정심 위원의 핵심인 공익대표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 방식을 준용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정부가 3배수를 추천하고, 가입자와 공급자 양 직역에서 표시한 사람을 제외하고 구성하는 방안이다.

그는 “제도운영의 궁극적 책임은 정부에 있기 때문에 정부의 입김을 배제하고 운영하기란 불가능하다. 정부가 완전히 제3자적 위치로 물러날 수는 없다.”라면서, “전체적인 조화와 운용은 정부가 하되, 정부 마음대로 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온 위원 구성을 다시 정리하는게 어떨까.”라고 전했다.

한편, 정부 측 패널은 이날 쏟아진 지적에 일부 공감한다면서도,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건정심이 비판만 받을 정도로 역할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그 동안 건정심 개편법안이 많이 나와있고 이런 토론회도 많았다. 사회보험제도를 가진 나라는 여러 심의의결기구가 있지만 어느 하나 정답이 없다. 기능도 다르고 역사적 배경도 다르기 때문에 역사성 무시한 상태에서 뭐가 맞다고 하긴 어렵다.”면서, 해외사례와 무조건적인 비교를 경계했다.

정 과장은 이어 “우리나라 건정심도 재정건전화특별법 마련 후부터 이 구조를 유지해 왔다. 현재 형태는 당시 시대적 요구의 산물이다. 당시에는 그 방식이 사회적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해서 현재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라며, “이제 환경이 변화해 현재 구조와 맞지 않는다면 다시 사회적으로 논의해 적절한 구조를 찾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단순히 위원 구성의 공정성 차원을 넘어, 건정심에 어떻게 기능을 부여하고, 그에 맞는 운영을 어떻게 할지 큰 틀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 다른 사회적 논의의 장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 과장은 “15년 이상 운영돼 온 과정에서 건정심이 무조건 문제만 있다고 보긴 어렵다.”라며, “그동안 가입자, 공급자, 공익대표가 균형 있게 참여하며 건강보험 관련 정책에 대해 최종 의사결정을 하며 최대한 공정하고 국민을 위한 시각으로 의사결정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부분은 전혀 없었다고 비판만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역설했다.

정 과장은 공익대표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공익대표도 건정심이 이 구조로 간지 오래인데, 오래 전 참여자와 현재 참여자의 의견이 다를수 있다. 건정심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히 어떻게 운영되는지 모른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와 보면 치열한 논의를 통해 결정하는 걸 볼 수 있다.”면서, “구조 자체가 공급자와 가입자 입장이 판이한 상황에서 계속적인 합의를 이뤄내고 있다면 공익대표가 그만큼의 노력 을 하고 있다는 부분도 등한시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건정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정부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기능에 대한 것은 건정심 또는 건강보험정책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어떤 거버넌스로 할 것이냐 문제로, 전체적인 큰 틀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므로 정부 입장을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말을 아꼈다.

정 과장은 또, 위원구성의 절차와 전문성, 투명성 지적에 대해 일면 타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공급자나 가입자가 더 참여해야 한다는 점은 말하는 단체와 논의의 장이 어떤 장이냐에 따라 다른 논의가 나온다며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익대표 선임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참여하는 모든 위원회에서 정부는 공익대표다. 정부가 대변하는 공익의 부분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정부가 특정단체나 편향된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데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한다.”라며, “마찬가지로 정부 뿐 아니라 국책연구기관도 위원으로 위촉된 공익위원도 특정한 개인 참여보다 더 공익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밖에 없다. 그런 부분에 대한 일방적 공격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과장은 위원들의 전문성에 대한 지적에도 “특정 사안에 대해 굉장한 전문성을 가진 분들은 아니다. 특히 가입자의 경우 그렇다.”라면서도, “논의에 계속 참여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전문성은 없을지라도 객관성, 합리성에 대해 국민의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충분히 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다만, 건정심 사무국 기능을 하는 곳이 없는 점을 지적하며, 건정심 위원이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 정책자료 등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전문위원회, 소위원회 활성화 방안도 찾겠다고 덧붙였다.

정 과장은 투명성 지적에 대해서는 “억울하기도 한데, 공개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하는 뱡항으로 개편을 검토중이다. 여러 논의를 통해 어떤 방법이 좋을지에 대해 의견을 모아주면 최대한 반영하겠다.”면서, “다만 어떤게 바람직하다고 한 가지로 결론을 내리긴 어려우므로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여러 단위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 측의 의견이 아닌 좀 더 중립적인 반영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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