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 제63차 정기대의원총회가 끝났다. 젊은 의사 수백명의 참관이 예고되면서 물리적 충돌이 예상됐지만 우려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회계감사가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논란 속에서 감사보고서를 인준해 놓고, 의장이 재감사를 수용한 것은 감사보고서 인준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의사협회 대의원회가 앞으로 갈길이 멀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대의원총회를 돌아보고, 시사점을 진단해 본다.

①젊은 의사들 대의원총회장에 가다
②감사 손발 묶기…대의원이 막았다
③집행부 불신 드러난 대의원총회

△경만호 집행부의 공허한 사과
대의원총회 본회의가 시작되기 직전 상임이사들이 나와 경 회장을 둘러싸고 빚어진 물의는 회장 만의 책임이 아니며, 회장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집행부의 책임이 크다고 대의원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어 “의료계를 위한 경 회장의 진정성과 열정을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며, “경만호 회장과 끝까지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경만호 회장은 노환규 전의총 대표, 김세헌 대의원, 마노의료재단 구 전 실장 등에게 고소와 고발을 당했다.

횡령, 업무상 배임, 명예훼손, 정보통신법 위반 등은 검찰로부터 죄가 있다고 인정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회원들은 수장이 일반회원을 고발하고, 계속해서 추문에 휩싸이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소송심의특별위원회 ‘OUT’
지난해 12월 상임이사회에서 의결된 소송심의특별위원회(이하 소송심의위원회)는 4개월 가량 활동하면서 의사회원을 고소ㆍ고발하거나 윤리위에 제소하는 등의 논의를 주로 해왔고, 결정 내용을 담은 공문을 해당 회원에게 발송했다.

회원들이 소송심의위원회가 구성된 정당성을 묻자 집행부는 2010년 상반기 정기 감사에서 ‘협회와 관련된 소송 시 그 과정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는 집행부의 자의적인 해석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대의원총회에서 김주필 감사는 “상반기 감사를 보면 의협이 소송공화국 같다”며, “지난해 수억원의 소송비가 지출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송을 줄이고, 진행중인 소송은 면밀히 검토 후 취하할 것은 취하하라”고 권고했다.

감사의 지적사항은 불필요한 소송은 걸러내고, 필요한 소송만 진행하라고 지적한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법정관위원회는 소송심의특별위원회를 폐지하자는 안건을 표결에 부쳐 재석대의원 54명 중 찬성 36명(66.7%), 반대 17명(31.5%), 기권 1명(1.9%)으로 본회의에 상정키로 의결했고, 본회의 표결에서는 재석대의원 156명 중 찬성 111명(71.2%), 반대 42명(26.9%), 기권 3명(1.9%)으로 소송심의특별위원회 폐지가 확정됐다.

이채현 부산대의원은 제안 설명에서 “의협 법제팀에 소송심의위원회 관련 규정을 요구했지만 규정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회원을 징계하는 수단인데다가 정관 위배 사항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의원총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소송심의위원회 폐지를 결정함에 따라 그동안 소송심의위원회가 의결한 사항도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집행부 규정 제ㆍ개정 누구 맘대로
정관특위는 정관 제67조(규정제정) ‘협회의 사무를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제규정은 상임이사회에서 따로 정한다. 단, 감사규정, 중앙윤리위원회규정, 선거관리규정은 대의원총회에서 정한다’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냈다.

반면 경기도의사회는 제67조를 ‘대의원총회는 규정의 제정 및 개정의 권한을 갖는다’로 수정하는 개정안을 제안했다.

현재 규정에서는 협회 사무 관련 규정의 제정은 대의원총회의 간섭없이 집행부가 따로 정할 수 있다.

이 정관은 경만호 집행부가 대외사업추진비 등을 외부 증빙하지 않고 쓸 수 있도록 규정을 고친 근거가 되는 조항이다.

경기도 개정안의 세부내역을 보면 감사업무규정, 윤리규정, 선거관리규정, 재무업무규정, 의료정책연구소 운영규정, 대의원회 운영 및 운영위원회 규정은 대의원총회에서 의결해야 한다.

이외의 기타 규정과 정관 세칙의 제ㆍ개정은 집행부에 위임할 수 있지만 집행부에서 제ㆍ개정한 규정은 대의원총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대의원총회는 집행부의 안을 개정할 수 있으며, 집행부는 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또, 집행부는 대의원총회가 제정한 규정 내용과 상충되는 내용으로 제ㆍ개정 할 수도 없다.

양재수 경기대의원은 “경만호 집행부가 대의원회에서 위임 받은 권한을 악용해 대의원회에서 규정을 제정토록 개정안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채현 부산대의원도 “집행부가 규정을 자꾸 엉뚱하게 만들어 대의원이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이다”고 지적하며 규정 개정을 지지했다.

이 개정안은 법정관위원회에서 재석대의원 38명 중 찬성 26명(68.4%), 반대 12명(31.6%), 기권 0명으로 통과됐고, 본회의에서도 재석대의원 172명 중 찬성 168명(97.7%), 반대 4명(2.3%)으로 가결됐다.

△회장ㆍ임원, 개인 소송 패소 시 자부담
앞으로 의사협회 회장이나 임원이 함부로 소송을 할 수 없게 됐다. 대의원총회에서 회장 등 임원이 개인적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소송비용을 본인이 부담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울산시의사회는 ‘의협 회장 등 임원의 개인적 소송 패소 시 소송비용을 본인이 부담하는 안을 건의했다.

법정관위원회는 이 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36명(66.7%), 반대 17명(31.5%), 기권 1명(1.9%)으로 가결시켰다.

이 안은 본회의에서도 재석대의원 154명 중 찬성 129명(83.8%), 반대 24명(15.6%), 기권 1명(0.7%)으로 가결했다.

이로 인해 횡령과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법정 공방중인 경만호 회장의 운신이 폭이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경만호 회장은 본인과 관련된 소용비용을 의사협회 회비에서 지출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사 독립성 강화ㆍ재감사 ‘주목’
정관특위가 감사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감사업무규정 개정안을 냈지만 법정관위원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단’ 문구를 ‘감사 또는 감사단’으로 수정하는 안을 통과시켜 감사의 독립성을 강화시켰다.

지난 회계 상반기와 하반기 감사에서 경만호 집행부는 감사의 증빙자료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보 감사가 대외업무추진비의 사용내역을 요구하자 집행부는 다른 감사에게 구두로 보고했다며 밝히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감사업무규정이 수정됨에 따라 감사 1인의 요구를 감사단에 보고했다는 핑계로 비켜가기 힘들게 됐다.

이날 박희두 대의원의장이 재감사를 결정한 것도 집행부에 짐이 될 전망이다. 본회의에서 감사가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지적에 따라 특별감사가 표결에 부쳐졌지만 부결됐고, 곧바로 이어진 감사보고서 인준 표결은 가결됐다.

하지만 본회의가 마무리되기 직전 이원보 감사가 “감사보고서가 인준을 받았기 때문에 본인의 결산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종합의견도 성립된 것이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원보 감사는 “감사보고서에는 감사 의견이 두 결과로 나왔지만 두 의견이 충돌되는 것이 없다”며, “정관을 지키지 않았다. 감사 받기를 거부했다. 자료제출을 하지 않았다. 결산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종합의견이 있고, 세명의 감사 종합의견에는 결산보고서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감사는 “감사보고서가 성립됐다면 결산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도 승인을 받았는데 이는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명확하게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박희두 의장이 “이원보 감사의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는 말로 회의를 끝내려 하자 최덕종 울산대의원은 “이원보 감사의 의견을 받아들이겠다고 끝을 맺으셨는데 어떤 의미인지 제가 알 수 있도록 짚어주고 회의를 끝내 달라”고 주문했다.

조행식 경기대의원은 “감사보고서를 보면 하반기에 이어 상반기 감사 자료를 요청해도 자료를 미제출해 열람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인했는데 이러한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며, “이 내용은 이원보 감사의 종합의견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고 말했다.

고병구 부산대의원은 “하반기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이대로 넘어가면 의사협회의 걸림돌이 된다”며, “미흡한 부분에 대해 추가 감사를 충분히 하고, 다시 서면으로 승인을 받았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박희두 의장은 “미흡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다시 감사를 해서 대의원들께 한달 후에 서면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집행부 불신 확인된 대의원총회
경만호 회장 사퇴권고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정관특위의 감사 권한을 축소하는 감사업무규정과 회원을 제명할 수 있도록 한 윤리위원회 규정이 대의원들에 의해 거부됐다.

이는 정관특위가 낸 개정안 초안이 집행부에 의해 작성됐고, 다수 대의원이 정관특위 개정안을 사실상 집행부 안이라고 비판한 것을 감안하면 집행부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 됐다.

소송심의특별위원회 폐지가 가결되고, 회장과 임원이 소송에서 패할 경우 자비로 소용비용을 내도록 한 것과 회장 후보의 자격검증시스템을 도입한 것 등도 경만호 집행부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협회 규정 및 정관 세칙 제ㆍ개정 권한을 대의원총회로 못 박은 것도 집행부가 맘대로 규정을 고쳐 예산을 전용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 또한 대의원들의 경만호 집행부에 대한 불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회계 감사에 대한 재감사가 결정됨에 따라 업무사업추진비의 사용처와 와인사건에 대해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이 커져, 재감사 결과에 따라 경만호 집행부가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