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사건과 관련해 환자안전사고 보고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돼 눈길을 끈다. 국회에서 관련법이 잇달아 발의되고, 보건당국도 긍정적인 입장이다.

주장의 요지는 현행법상 국가지정 감염병이 아닌 한 보건당국에 대한 신고의무가 없으며 환자안전사고의 경우도 신고가 임의규정으로 돼 있어 신고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행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11조에서는 제1군감염병부터 제4군감염병까지의 경우에는 지체 없이, 제5군감염병 및 지정감염병의 경우에는 7일 이내에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관할 보건소장에게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환자안전법’ 제14조에서는 환자안전사고를 발생시킨 보건의료인은 보건복지부장관에 그 사실을 보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질병관리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4명 사망사고 경과 및 조치내역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는 이대목동병원이나 양천구보건소로부터 관련 사실을 신고 또는 보고받은 바 없으며, 양천경찰서와 서울경찰청에서 질병관리본부에 사건 접수여부를 문의해 뒤늦게 사건발생을 인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현행법상 병원과 의료진이 감염병에 의한 사망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경우 보건당국에 신고의무가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와 관련,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지난 2일 의료기관에서 일정한 기간 내에 원인불명의 사망자가 2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 의료기관의 장은 그 내용을 관할 보건소장에게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윤소하 의원은 “최근 한 대형종합병원에서 4명의 신생아가 연쇄적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의료기관은 감염병이 의심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로 해당 사건을 보건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원인불명의 사망자가 2명 이상 연속적으로 발생한 경우에는 감염병의 위험 뿐만 아니라 해당 의료기관의 운영 및 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을 통해 그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고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해당 사실을 신고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도 지난달 27일 ‘환자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고, 중대한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무적으로 신고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환자에게 영구적인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를 입힌 사고, 일정 기간 이상의 의식불명 등을 중대한 환자안전사고로 정의했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의료기관에서 ‘의료법’ 제24조의2에 따른 설명ㆍ동의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 중대한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 해당 의료기관의 장에게 신고 의무를 부과하도록 했다.

중대한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 그 신고를 게을리 한 의료기관의 장 또는 그 신고를 방해한 자에 대해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남인순 의원은 “감염병이 원인이 아닌 중대한 환자안전사고에 대하여는 정보의 전파와 그에 따른 대응이 지체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라고 지적하며,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급 의료기관에서 중대한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 해당 의료기관의 장이 지체 없이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함으로써 보건당국의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안전을 제고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법안 발의 취지를 밝혔다.

주요 외국의 보고대상 환자안전사고 범위*자료: 보건복지부*캘리포니아 주
주요 외국의 보고대상 환자안전사고 범위*자료: 보건복지부*캘리포니아 주

보건당국도 보고 의무화 필요성을 인정했다. 단, 대상은 적신호사건에 한정하고 의무화를 위한 전제조건도 제시했다.

지난달 7일 국회에서 열린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집단사망사건,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정은영 보건복지부 의료정책과장은 적신호사건의 경우 보고 의무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정 과장은 다만, 보고 의무화도 중요하지만, 적신호사건의 정의를 정확하게 하고 적신호사건이 들어왔을 때 현재의 환자안전본부가 그에 대한 정확한 원인분석과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만큼 전문성이 쌓였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정 과장은 “환자안전본부가 지난해 6명이고 올해 11명이다. 50명 신청했는데 30명 정도에 대한 예산만 반영됐다.”라며, “소규모로 출범해 자율보고를 검토하고 주의경보 발령하는데도 역부족인 상황이며, 환자안전 전문가도 부재하다.”라고 지적했다.

적신호사건은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가되, 상반기 중 적신호사건 보고체와 분석 방법, 조사단 구성 등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의무화는 패널티를 부여하는 문제가 있으므로 어떻게 할지도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외국은 보고할 경우 보험과 연계해 건보 지급분을 좀 낮추는데 그런 식으로 할지, 의료기관을 처벌할지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자율보고는 비밀이 보장되지만, 보고를 의무화하면 공개되므로 의료인 사과법이 병행돼야 한다며, 의료인이 충분히 설명하고 사과하더라도 형사적 배상 책임 등에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일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도 적신호사건 보고는 의무화하고, 보고대상 사건은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신호사건에 대한 공적조사 권한을 부여할 것도 제안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역시 환자안전법을 개정해 자율보고 원칙을 적신호 사건에 대해서는 의무보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적신호사건 보고 의무화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환자안전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구홍모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본부장은 “환자안전법의 가장 큰 특징은 강제성이 없다는 점이다. 환자안전법은 자발적인 참여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라며, “환자안전사고의 보고를 강제해 그 내용이 변질돼 우리가 참으로 알고자 하는 내용이 감춰지거나 수정될 가능성이 높다면 그 보고는 가치를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잘못된 내용에 근거해 만들어진 예방대책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쓸데없는 규제와 절차만을 양성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구 본부장은 “따라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조금 더 번거롭더라도 환자안전사고 보고의 처음은 자율을 전제로 시작돼야 한다.”라며, “내가 보고한 환자안전사고가 비난의 화살이 돼 돌아오지 않는다는 당연한 믿음이 형성되고, 오히려 효율적인 예방대책으로 환류돼 직접적인 도움과 다른 사람과의 공유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환자안전문화는 만들어진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믿음과 공감의 토대 위에서 적신호사건의 의무보고와 그에 따른 인센티브 지원 방안 등 구체적인 발전방안이 추진된다면 환자안전사고의 실시간 실태파악 등, 효율적인 환자안전 관리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환자안전사고의 보고와 학습이 중요한 이유는 개별 의료기관 내부에서만 알고 있는 환자안전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동일하거나 유사한 환자안전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건의료인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한편, 환자안전 보고학습시스템이란 의료인 등의 자율보고 등을 통해 수집된 환자안전사고를 수집ㆍ분석해 공유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잠재적인 환자안전사고의 위험요인을 낮추는 등 환자안전정책 수립을 위한 인프라로, 이 중 ‘보고되는 사건’은 보고학습시스템 구축ㆍ운영에 있어 핵심요소로 볼 수 있다.

보고되는 사건은 크게 근접오류, 위해사건, 적신호사건(심각한 위해사건)으로 분류된다.

일반적으로 근접오류란 의료오류가 발생하였지만 우연 또는 적절한 개입으로 인해 환자에게 도달하지 않은 사건을 의미하고, 위해사건이란 의료행위의 결과로 발생한 손생을 의미하며, 적신호사건이란 사망이나 심각한 신체적ㆍ정신적 손상이 발생하는 등의 사건을 의미한다.

국가별로 적신호사건 같이 위해의 정도가 심한 경우를 보고의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근접오류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는 등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환자안전사건에 대한 보고방법은 크게 의무보고와 자율보고로 구분할 수 있다.

의무보고란 해당 사고 등이 발생한 경우 반드시 시스템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임에 비해, 자율보고란 해당 사고 등에 대해서 자발적 의지에 따라 시스템에 보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의 경우 의무보고와 자율보고를 사건의 위해정도에 따라 병행해 운영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의 ‘환자안전법’은 초기 의료현장의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율보고만을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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