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이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을 면담한 사실이 일부 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추무진 회장이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의료계의 반대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는 소식이었다.

본문에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의원과, 이를 저지하려는 단체의 수장이 손을 맞잡고 해맑게 웃는 사진이 실렸다. 혹시 서로 윈-윈하는 방법이라도 찾은 걸까?

3일 뒤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인재근 의원과 김명연 의원이 각각 발의한 한의사 현대의료기기법 심사를 보류했다. 소위는 3개월간 의ㆍ한ㆍ정 협의체를 운영하는 조건을 달았다.

전문가 단체 간 논의를 통해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의사협회도 협의체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혀 이 같이 결정했다고 한다.

의사협회의 협의체 참여 선택은 옳은 결정일까? 당장 23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심사가 끝나, 다음날 전체회의에 보고될 ‘가능성’을 막았으니 박수를 쳐야 할까.

상임위 전문위원실은 입법 검토에서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학문적 원리 ▲한의과의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교육 현황 ▲사용권한과 관련한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위해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도 “전문가, 이해당사자 등과 해결방안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라며, ‘신중검토’ 의견을 내놓았다.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다.

전공의협의회는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법안이 통과되면 파업까지 고려한 투쟁체제로 전환하겠다고 예고했다.

비대위 홍보위원장은 지난 22일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 법안에 반대하는 전공의 2,292명의 탄원서를 양승조 보건복지위원장실에 전달하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한의협의 국회 입법 로비 의혹도 불거졌다. 한의협은 회장이 불신임돼 직무대행이 회무를 수행중인 상태다.

여건상 인재근 의원이 한의사에게 이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강력하게 추진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협회가 협의체 참여 조건을 받아들였으니 인재근 의원은 안도의 숨을 쉬지 않았을까.

특히, 협의체 참여는 오는 12월 10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예정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다.

이날 의사협회 비대위는 문재인 케어 저지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법안 폐지를 걸고 대규모 집회와 가두시위를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의사협회가 한의사 현대의료기기 허용 법안을 놓고 한의협과 협의하기로 한 상황에서 비대위의 법안 폐지 주장이 힘을 받을 리가 없다.

의사협회는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국민건강 향상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라며 옳은 선택이라고 주장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2년 전 국회에서 제안해 운영된 의ㆍ한협의체가 국민건강 향상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라는 의협과,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라는 한의협이 서로 다른 주장만 하다가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이를 의식한 인재근 의원은 “과거처럼 기한 없이 의ㆍ한 합의 도출을 기다리지는 않겠다. 협의를 통한 결론을 내지 못하면 개정안 심사를 재개해 국회에서 결론을 내겠다.”라고 못박았다.

하나 더 불안한 소식은 3개월 뒤는 의사협회가 한창 회장선거를 치르고 있을 시기라는 점이다.

의사협회가 협의체 덫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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