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희 변호사
김동희 변호사

경업금지약정은 근로관계 종료 후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기간과 장소의 제한을 두고 근로자가 유사한 곳에 이직하거나 동종사업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약정이다.

주로 기술력이 중요한 IT 업종에서 두었는데, 최근 의료 업계에서도 봉직의와 근로계약할 때 계약서에 경업금지조항을 두는 경우를 몇 차례 보았다.

봉직의의 경업금지약정은 지역적 제한, 기간적 제한, 직원고용제한 3가지로 구성된 개원제한약정으로 나타난다.

근무했던 병원이 위치한 지역에서 약속한 몇 년 동안 개업할 수 없으며, 그 병원의 직원을 고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환자는 지역성이 강한 고객이다. 만약 봉직의가 근무하던 병원 건너편에 새로 개원하고, 함께 일하던 병원 직원을 데리고 나간다고 생각해보자. 고용주인 원장은 지금껏 쌓은 병원브랜드가치를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환자와 직원을 잃을 위험에 대비해 봉직의와 근로계약을 할 때부터 미리 개원제한약정을 맺어 두는 것이다.

그러나 봉직의의 입장에서는, 근로계약 자체가 대등한 교섭력 하에 맺은 것이 아니니 부당한 조항이 아니냐고 충분히 항변할 수 있다.

특히, 기간적 제한이 지나치게 길거나, 제한된 지역이 너무 넓거나(서울 내에서 개업금지 등), 그 병원의 직원을 평생 고용할 수 없다거나 하는 제약이 있다면 봉직의의 직업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 또한 자유로운 경쟁을 침해한다면 소비자인 환자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가 된다.

개원제한약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주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기간적, 지역적 제한을 두되 그 제한이 합리적 범위 내에 있어야만 봉직의의 개원의 자유와 자유로운 경쟁을 침해하지 않는 ‘윈윈게임’이 된다는 것이다. 고용주의 이익과 근로자의 이익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최근에는 봉직의로부터 3년간의 개원금지 조항에 대해 상담문의를 받았다. 계약서상 인근 개원금지 기간이 3년이었는데, 제한지역도 상당히 넓어 소송으로 갈 경우 1년~2년 사이로 단축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개원제한약정에 대한 판례는 없지만 경업금지에 대한 법원의 태도는 일반적으로 통상 1년 정도의 기간제한을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나치게 광범위한 지역 내에서의 개원을 금지할 경우에도 그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림동에서 봉직하던 의사가 서울에서의 개원을 못하게 된다면, 봉직의의 개원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 것일뿐더러 의료소비자들의 이익에도 반할 수 있다.

지역적 제한은 진료과목, 인구밀도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한 구(區)도 상당한 규모이기 때문에, 같은 구 내에서의 개원금지도 지나친 제한이라고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개원제한약정에는 의례 손해배상조항이 붙는다. 약속을 어기고 개원할 경우 미리 약속한 ‘2억원, 3억원’을 배상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사전에 약속한 손해배상금액이 과다할 경우, 법원은 민법 제398조제2항에 따라 합리적인 금액으로 감액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감액의 기준은 통상적 손해배상금액이나 실제 손해를 따르므로 몇 천 만원까지 대폭 감액되기 십상이다.

개원제한약정은 다시 말해 ‘상도’다. 상당한 월급을 지급해주고, 상당한 기간의 고용을 약속할테니 앞으로 이곳을 떠나더라도 꼭 멀리 가서 개원해 달라는 고용주의 부탁이다.

고용주가 그 약속을 지켜준 한, 봉직의에게도 그 부탁을 들어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고용주는 교섭력의 차이를 이용해 봉직의의 개원의 자유를 침해할 정도의 조건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특히 약속한 월급을 주지 않는 등 고용주의 귀책사유 때문에 봉직의가 근로계약이 파기된 경우에는 봉직의가 개원제한약정을 지켜야 할 의무가 더욱 희박해진다.

개원제한약정을 두는 것은 좋으나, 반드시 봉직의와의 충분한 대화 후 합리적인 기간과 지역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섭력의 우위에 있는 원장이 먼저 합리적인 범위를 제시해야 한다.

신림동에서 봉직한 의사에게 서울에서 3년간 개원하지 말라거나, 이를 어기면 3억원을 배상하라거나 하는 지나친 약정을 할 경우 후에 법정다툼이 생기면 고용주 입장에서도 절대 기대했던 대로의 효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원제한약정은 어디까지나 ‘제한’약정이어야 하고, ‘금지’약정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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