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성 대전 중구의사회장
정태성 대전 중구의사회장

홍경표 전문가평가제도 시범사업 단장은 ‘전문가평가제는 의사회원에 대한 무조건적 규제가 아니라, 일부 의사 직업윤리에 반하는 회원을 계도하고, 이를 통해 대다수 선량한 의사회원을 보호하면서 진정한 자율권 확보, 국민 신뢰 획득, 의사 권위 확장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과연 그럴까? 명백히 허위주장이다. 조목조목 살펴보자.

▽자율평가 대상의 유형은?
1)면허신고서 관련 의료인으로서의 결격사유에 해당되는 경우(의료법 제8조 관련)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한정치산자, 금치산자, 면허신고서를 통해 의료행위에 지장있는 질병을 가진자 등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정부가 의사들에게 자율규제권을 주는 시늉을 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변경될 의료법에 의하면 면허신고 시에 의료인은 의료행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자신의 질병을 스스로 신고하게 의무화했으며, 질병의 신고를 허위로 할 경우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질병 신고의 허위 판정 여부는 건강보험공단의 빅데이터를 활용토록 설계돼 있다.

신고된 의료인의 질병에 대해 의료행위 가능 여부를 판정 내려줘야 하고, 허위ㆍ미신고 자에 대한 색출도 누군가 해야 하는데, 바로 전문가평가단이 활용되도록 설계돼 있다.

의료행위 가능 여부를 판정하고, 허위 신고와 미신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부 예산을 들여 정부 산하에 의료인 질병평가단을 별도 설립해야 하는데 의사들 스스로 전문가평가단을 만들어서 정부 일을 대행해주겠다는 것이다.
 
막대한 예산 낭비를 막아 주었을 뿐만 아니라, 60여만 의료인으로부터 쏟아지는 수많은 
민원성 항의를 의사들 스스로 받아내겠다고 자청하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그야말로 정부로선 손 안 대고 코푸는 격이다.

2) 의사의 품위손상행위(의료법 시행령 제32조 관련)
의료인품위손상행위에는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아니하는 진료행위, 비도덕적 진료행위, 거짓 또는 과대 광고행위, 불필요한 검사ㆍ투약(投藥)ㆍ수술 등 지나친 진료행위, 부당하게 많은 진료비를 요구하는 행위, 상습적 본인부담 할인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나열된 항목을 자세히 살펴보라.

학문적이란 기준은 무엇인가? 의학교과서인가? 또, 심평원 심사책 기준인가? 과대, 불필요, 지나친, 부당하게 많은, 이 말들의 평가 기준은 무엇인가? 이현령비현령이다. 민원이나 고발 당하면 처벌을 피하기 쉽지 않다.

놀랍게도 또 다른 형태의 실사제도 아닌가? 특히 정부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비급여 부분에 대해 자율규제란 명목으로 전문가평가단에 특별실사를 맡긴 것으로 봐야 한다.

3) 무면허 진료행위(사무장병원, 불법의료생활협동조합) 
반발하는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끼어넣기와 물타기에 불과한 일고의 가치없는 항목이다.

전문가평가단이 이 문제를 처리할 능력도 배짱도 없다. 특히, 해당 사항은 현행 여러 법령 하에서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 법이 없어서 근절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단속 의지와 의사 단체의 고발 의지가 부족해 오늘날 사무장병원과 불법의료생협이 만연된 것이다.

▽행정처분 양형은?
시범사업 기간 중에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해 중앙윤리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처분에 따라 경고부터 최대 면허정지 1월의 행정처분을 의뢰할 것이다.

시범사업이 종료되면 면허정지 기간이 최대 12개월로 대폭 증가된다. 구색 갖추기 시범사업이다.

전문가평가제도는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대한 면허정지 기간의 대폭 확대에 따른 의사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눈 가리고 야옹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실질적 조사권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실질 조사권이 없는 전문가 평가단은 해당 의사가 조사를 기피하거나 거부하면, 보건소에 조사 협조 요청을 해 공동 조사를 실시하고, 그래도 거부하면 심평원, 공단, 사법기관에 고발하겠다고 한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전문가평가단의 이름하에 일제시대 밀정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을 하니 놀라운 일 아닌가?

아무리 비양심적인 의사들을 의사 집단에서 격리해 선량한 의사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시행한다고 강변해도 면허관리제도의 일환으로 의료인의 질병을 평가 관리할 목적으로 탄생됐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한, 품위손상이니, 비도덕적이니 운운하는 다분히 주관적인 어휘가 난무해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없이 이현령비현령 상태로 또 다른 형태의 상설특별실사 제도라는 의구심이 드는 한, 조사와 평가, 행정조치까지 어느 것 하나 자율적이지 못하고, 요소요소에 밀정 역할을 하도록 제도가 기획돼 있는 한 전문가평가제도는 결단코 탄생되지 말아야 할 제도이다.

우리 속담에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운다는 말이 있다.

이대로 제도가 시행되면 본래 선량한 의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선의로 기획된 이 제도가 자칫 의사들 간에 심각한 내부 분열을 초래해 의료계 단결을 저해하고, 의사들 상호 간 신뢰를 영구히 회복 불능 상태로 빠트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전문가평가 제도,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궁극적으로 의협 내에 면허관리국을 신설해 의사들이 스스로 면허관리를 하도록 의사단체에 자율관리권을 부여하는 방향 설정은 옳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 전문가평가제도는 초저수가인 건강보험 하에서 비급여로 연명하는 의원들의 비급여 의료행위를 통제할 목적과 새로운 면허관리제도의 일환으로 신설된 의료인의 질병 신고에 대해 이를 관리하기 위해 불순한 의도로 기획됐으므로 폐기해야 한다.

다만, 여건이 성숙될 때까지 장기적 안목에서 지역의사회를 통해 포지티브 방식의 면허자율관리 시범사업을 시도해보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포지티브 방식의 면허자율관리란 현재 기획된 전문가평가제도처럼 처벌 위주의 면허관리 방식이 아니라 법을 지키고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수행하면서 일정 기간 지역의사회의 면허자율관리에 성실히 따라준 의사들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혜택으로 거론할 수 있는 항목은 본의 아니게 사소한 실수를 저질러 면허정지를 받게 될 경우, 그 기간을 감경시켜준다거나 이수할 연수평점을 인정해주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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