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300여명이 서울 광화문에 모였다. 의사들은 당국으로부터 현지조사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안산 비뇨기과 원장을 추모하고, 현지조사 개선을 촉구했다. 이날 추모대회에 참석한 의사들은 모두, 당국의 현지조사가 불합리하다며 반드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또, 이날 행사가 단발성 행사로 그쳐서는 안 된다며 의사협회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의사들의 요구는 무엇일까?

▽경기도의사회가 주도한 추모대회
경기도의사회(회장 현병기)는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안산시 비뇨기과 원장 추모대회 겸 현지조사 개선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보건복지부가 사전통보 없이 진행하는 강압적인 현지조사의 개선을 촉구했다.

앞서 안산시 비뇨기과 개원의 A 원장은 지난 5월 보건복지부의 현지조사를 받은 후 정신적인 모욕감과 자존감 상실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7월초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기도의사회는 현지조사의 불합리한 점을 국민에게 알리고 당국에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7월 건강보험공단 안산지사 앞에서 두 차례 촛불 추모집회를 개최했고, 현재는 같은 장소에서 1인 침묵시위를 진행중이다.

이어, 지난 8월 이사회에서 ‘현지조사개선특별위원회’를 조직하고, 현지조사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날 추모대회는 강압적이고 부당한 현지조사로 인한 의권 유린에 대해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현병기 경기도의사회장이 대회사를 하는 모습
현병기 경기도의사회장이 대회사를 하는 모습

현병기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피폐한 의료 환경이 개선되지 않으면 의사들의 문제가 환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상황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다.”라며, “오늘의 상황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제도 개선이 필요하며 관계당국의 성의 있는 태도변화를 촉구한다.”라고 촉구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이번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안산 비뇨기과 의사의 행정살인에 대한 책임자 공개를 요구하고,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또한 북지부, 심평원, 건보공단의 행정실사 개선을 요구하며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의사의 청구대행 폐지도 추진하기로 했다.

▽의사 대표와 회원들, 절절한 제도 개선 요구
이날 추모대회는 인사말과 추모사, 성명서 낭독, 규탄사, 회원 자유발언으로 진행됐다.

가장 먼저 연단에 오른 추무진 의협회장은 현지조사의 합리적인 개선을 위해 정부 당국에 강력히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추무진 회장은 안산 회원에게 애도를 표한 뒤, “현지조사와 방문확인은 관련 법령 확인 및 지침의 준수와 최소 범위 내에서 실시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표준 운영 지침의 합리적 개선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추 회장은 “협회는 현지 조사 및 확인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의견을 수렴중이며, 오는 23일 복지부 주최로 개최되는 개선 회의에서 우리 의견을 강력을 제안하겠다.”라고 말했다.

임수흠 의협 대의원의장은 회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집행부의 선제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임수흠 의장은 “이제 우리들도 자포자기에서 벗어나 스스로 분명한 주장을 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려는 자세의 변화 필요하다”라며, “오늘 이 자리는 경기도의사회에서 주관했지만 적극적으로 전국 회원들이 동참할 수 있는 기폭제와 시발점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임 의장은 “회원의 권익을 우선하고 노력해야 하는 의협이 지금까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라며, “이제는 면피성 행보에서 벗어나 회원을 위해 선제적인 대처를 하는 의협이 돼야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숙희 시도의사회장협의회장은 “안산 선생님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를 풀어야 한다.”라며, “의협 집행부와 대의원회, 시도의사회가 모두 힘을 합쳐서 숙제를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저도 모든 힘을 바치겠다.”라고 말했다.

추모사에 나선 이호준 안산시의사회장은 “유명을 달리한 선생님과 매주 식사도 같이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정도 나눴다. 그런데도 돌아가고 난 다음에야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라며,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야기하기 좋아 한 사람들이 안산 선생님의 사후에, 그럴만한 일이 일어난 것 아니냐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유족과 동료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이다.”라고 분개했다.

이 회장은 “그분은 파렴치범이 아니라 동네병원 의사였다. 재판을 걸든, 청구 대행을 시키지 말든 해야 했다. 앞으로는 환자들이 진료비를 내고 공단에서 돈을 받아가도록 해야 된다.”라고 주장했다.

정선화 경기도의사회 조직강화이사가 현지조사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하는 모습
정선화 경기도의사회 조직강화이사가 현지조사 개선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하는 모습

정선화 경기도의사회 조직강화이사는 성명서 낭독을 통해 “동료의 죽음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라며, “의사의 생존권이 달린 상황에서 행정살인에 대한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는 “전국에 있는모든 의사들은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기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해서 죽음에 이른 동료들을 애도하며, 그 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왜곡된 현지조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천명했다.

이어진 규탄사에서 노환규 전 의협회장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노환규 전 회장은 “5년 전 2011년도 10월 어느날 종각 앞에서 리베이트를 받았다는 검찰의 주장 때문에 43일 동안 구속 수사를 받고 나와 스스로 극약을 주사해서 돌아간 故 김 원장의 추모 집회 열렸던 것을 기억한다.”라며, “지난 5년 달라진 것이 없다. 그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라고 자조했다.

노 전 회장은 “아마 다른 집단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서 많은 경찰차가 몰려 왔을 텐데 우리의 지금 모습은 너무 초라하다.”라며, “과연 희망이 있겠나.”라고 물었다.

노 전 회장은 “오늘의 규탄대회가 대한민국 12만 모든 의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한 날 한시에 규탄 함성을 저 높은 곳에 계신 분의 귀에 들릴 때까지 부르짖을 때 변화가 올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제도 개선이 되지 않을 경우 집단 휴폐업 등 단체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석범 의정부시의사회장은 “아직까지도 정부 당국은 실질적인 구제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라고 말한 뒤, “의사들의 희생으로 시작된 국민건강보험이 출발한 지 수 십 년이 지났지만 의사들의 공은 사라지고 보험재정을 도둑질하는 양 매도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원가의 70%에 불과한 의료수가 속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현지조사를 받는 상황을 참을 수 없다.”라며, “의사들은 계속 이런 강압적인 만행이 빠른 시일 내에 시정되지 않으면 집단 휴폐업 등 단체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라고 경고했다.

최대집 의료혁신투쟁위원회 공동대표는 “안산 원장은 현지조사의 결과로 생을 마감했다. 범법자다 도둑놈이다. 면허정지 한다는 압박 못이기고 자살했다.”라며, “그런데도 정부 당국은 규정대로 했으니까 문제가 없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최근 경북 경산에서 유사한 사례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역의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지만 유족이 반대해서 중단했다.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 사례가 수 십 건은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최 대표는 “정부는 현지조사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피상적으로 하는데, 이 문제는 사람을 살리는 행정이냐, 죽이는 행정이냐 문제다.”라며, “법 개정 전 현지조사 관계된 사람들을 확인해야 한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현지조사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기한 투쟁에 나설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송명제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조사 연장 가능성을 언급하며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심리적 모욕감을 주면서 자살에 이르게 했다.”라면서, “가혹하게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 넣는 게 정답인가.”라고 물었다.

송 회장은 “정부는 안산 사건 이후 현지조사를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신뢰하지 못한다.”라며, “더 이상 야만적이고 불합리한 사건으로 인한 비극이 반복돼선 안 된다. 보건당국이 안산에서 한 의사를 자살에 이르게 한 책임자를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노환규 전 회장, 청구대행 중단 촉구 눈길
규탄사에 이어 회원 자유발언에 다시 연단에 오른 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청구대행 중단을 촉구했다.

노 전 회장은 “의사는 진료를 하면 청구 대행을 하는데, 환자를 위해 환자가 해야 할 일을 대행하는 것이다.”라며, “프랑스의 경우 환자가 민간보험처럼 본인이 모두 지불하고 보험사가 지불해야 할 것을 직접 청구한다. 우리는 의사가 그 업무를 대행하기 때문에 진료비 후불제다.”라고 말했다.

노 전 회장은 “또, 의사는 청구할 때 전자차트를 이용해 전자청구를 하는데, 건보공단과 심평원의 편의를 위해 쓴다. 전자차트 비용도 의사가 부담한다. 환자 편의를 위해 진료비 후불제를 선택하고 있고, 전자차트를 쓰면서 의사가 비용도 낸다.”라고 지적했다.

노 전 회장은 “대정부 투쟁은 전공의나 교수가 동참하지 않은 개원의 만의 투쟁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개원의가 하는 힘있는 투쟁 방법이 있다. 청구대행 중단이다.”라고 강조했다.

노 전 회장은 “한날 한시를 기해 청구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 투쟁 방법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단골 환자에게 어떻게 진료비를 다 내라고 하느냐며 부담스러워 했다. 차라리 문을 닫고 말겠다고 이야기도 들었다.”라고 말했다.

노 전 회장은 “청구대행 중단 투쟁은 어느 날 한날 한시 기일을 정해 놓고 정부와 국민에게 예고 하는 것이다.”라며, “왜 투쟁해야 하는지 국민에게 홍보하고 처음에는 그날 하루 다음에는 일주일 투쟁하는 식으로 한다. 정부는 밥그릇 싸움으로 몰아갈 수 없기 때문에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노 전 회장은 “진료비 후불제는 전적으로 의사들이 환자 편의를 증가시키는데 동의해서 동의해서 진행됐다. 이로 인해 지금과 같은 비극이 생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 전 회장은 “의사들은 부당하게 조사를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수사를 받고 있다. 수사는 잠재적 예비 범죄자나 확신범에게 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 건 진료비 후불제에 동의했기 때문이다.”라며, “청구대행 중단을 강력히 촉구한다. 의사들이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노 전 회장의 청구대행 중단 구호를 따라하며, 관심을 보였다.

▽환영 받지 못한 추무진 회장 숙제 남겼다
이날 추모대회에는 약 300여명(주최측 추산 400명)의 의사와 의사가족이 참여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12만 의사회원 중 소수 회원만 참여했다고 푸념했지만 대체로 기대보다 많은 회원이 참석했다며 만족해 하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참석해 무게가 더했다. 이정현 대표는 관계당국의 강압적이고 부당한 실사 문제를 제기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청취해 눈길을 끌었다.

이정현 대표는 추모대회 하루 전 경기도 수원 소재 한 피부과의원을 방문해 노인정액제와 현지조사 개선 등에 대한 의사들의 의견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하루 뒤 열리는 추모대회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약속을 지킨 것이다.

경기도의사회는 21일 광화문에서 故 안산 비뇨기과 원장을 추모하고 현지조사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경기도의사회는 21일 광화문에서 故 안산 비뇨기과 원장을 추모하고 현지조사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의사회원의 적극적인 동참과 여당 대표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이날 행사는 숙제를 남겼다.

의사들을 대표하는 추무진 회장이 현장을 방문했으나 환영 받지 못한 것이다. 추 회장이 인사말을 할 때 야유가 터져 나오는가 하면, 자유발언에 나선 한 회원은 그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반응은 故 안산 원장 사건과 관련해 의사협회의 소극적인 대응에 기인한다.

처음 안산시의사회의 성명서로 사건이 알려진 후 의사협회는 해당 회원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거론하기 보다는 물밑에서 실제적인 제도개선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의사협회는 의료혁신투쟁위와 안산시의사회가 주도한 공단 단원지사 집회와 단원보건소 집회, 경기도의사회가 진행중인 1인 시위와 거리를 뒀다. 광화문 추모집회에도 적극적인 참여는 하지 않았다. 의사협회는 해당 행사 홍보 등 참여를 유도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물밑에서 협상을 하더라도 의사협회의 적극적인 대응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또, 회원의 아픔을 보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회원들의 힘을 결집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후속 조치다. 이날 참석자들은 추모집회가 단발성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노 전 회장은 “12만 의사가 단 하루라도 한 날 한시에 한 자리에 모여서 규탄 함성을 저 높은 곳에 있는 돌아가신 분의 귀에 들릴 때까지 부르짖을 때 변화가 올 것이다.”라며, “이번 대회가 끝이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김석범 의정부회장은 앞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휴폐업 등 강경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했고, 최대집 대표도 책임자 처벌과 제도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와 제도개선을 외치겠다고 했다.

한 참석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날 대회를 계기로 전국 시도에서 결의대회가 잇따라 열리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고, 다른 참석자도 “오늘 대회가 그동안 움츠렸던 의사들이 기지개를 켜고 대정부 투쟁에 나설 수 있는 도화선이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다른 참석자는 “오늘 대회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추무진 회장이다. 앞으로 의사협회가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기대가 되지 않는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추무진 회장의 광화문 추모대회 참석도, 그동안 의사협회 집행부의 기조대로라면 어울리지 않은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복지부는 오는 23일 현지조사 개선을 위해 보건의료단체와 간담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추무진 회장은 그동안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의사들의 개선 요구가 강력하게 이어질 때, 더 빠른 시기에 제대로 된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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