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수준은 대부분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지만, 생명의 위급을 다투는 중환자실의 경우 아직까지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지난 2014년 처음 실시된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의 참담한 결과는 평가 주체였던 정부인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기 고백서’라는 비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박인숙 의원(새누리당)이 22일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개최한 ‘중환자실의 생존율 향상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전문가들의 이러한 의견이 쏟아졌다.

앞서 지난 2014년 처음으로 심평원이 우리나라 중환자실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병원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263개 병원에 대한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를 실시한 결과가 올해 5월 발표가 됐는데, 우리나라 중환자실의 전반적인 후진성, 낮은 접근성 지역ㆍ병원 간 심판 격차 등 다양한 문제점이 지적됐다.

1등급을 받은 병원은 12개에 불과했고, 정부가 최고 의료기관으로 인증한 상급종합병원 43곳 중 1등급을 받은 곳은 10개 밖에 안됐다. 병원 간 차이도 커서 100점을 얻은 병원이 있는가 하면, 20점이 안 되는 병원도 있었다.

특히 전라, 충청, 강원, 제주 권역에는 1등급을 받은 의료기관이 하나도 없는 등, 지역 간 중환자실의 질적ㆍ양적 편차가 매우 큰 상황이다.

이날 발제에 나선 임채만 대한중환자의학회장(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은 “2014년 시행된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는 정부가 평가주체이자 스스로 평가대상이었다. 이번 평가 결과는 복지부와 심평원의 자기 고백서다.”라며, “이번 평가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에 대해 복지부가 결자해지할 때이다.”라고 강조했다.

임 회장은 “우리나라 중환자실은 2016년과 1970년이 공존하고 있다.”라며, “중환자실 적정성 평가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임 회장은 “중환자실의 전담 전문의 1인당 담당 병상 수는 미국 14병상 이하, 유럽 6~8병상 등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 44.7병상으로 전문의 1인당 업무과중이 심각한 편이며, 이는 간호 인력도 예외가 아니었다.”라며, “또한 전담전문의 의무조항이 없는 종합병원급은 전체의 80%에 전담전문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중환자실의 이러한 후진성은 치료성적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라며, “지난 2010년 신종플루의 경우 선진국 사망률이 평균 14%였는데, 우리나라는 33%였으며, 중환자실의 대표적인 질환인 패혈증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 사망률이 2배에 달한다.”라고 전했다.

임 회장은 또, “국내 병원간 중환자실 사망률은 신종플루의 경우 4배, 패혈증은 3배까지 차이가 났다.”라며, “동일한 병을 갖고 어느 병원에 입원하느냐에 따라 생존 가능성이 1/3, 1/4로 줄어드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전담전문의 의무화 ▲병원 종별 간 중환자실 역할 정립 ▲의료진의 숙련도 향상 등을 주문했다.

특히 의료법 시행규칙 34조에 ‘중환자실에는 전담전문의를 둘 수 있다’로 규정돼 있는 임의조항을 의무조항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병원계는 전담전문의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인력과 재정문제 등 현실적 고충이 있다고 토로했다.

박진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중환자실에서 환자안전을 위해 전문인력의 중요성이 크다는 점을 병원계도 잘 알고 있으며, 많은 병원들이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양성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전문인력 확보가 인력부족, 재정적 문제 등으로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중환자실과 관련된 여러 가지 건강보험 수가구조는 전문인력 확충, 전담인력 등 다양한 형태의 수가적 유인(인센티브) 구조를 갖고 있으나, 아직 병원에서 충분한 투자와 전문인력 확보는 어려운 실정이다.”라며, “앞으로 정부가 나서서 중환자실의 전문인력과 인프라 확충을 위한 건강보험 측면에서의 수가체계 개편 및 지원과 국가적 지원이 더욱 확충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중환자실에 대한 질 관리와 평가는 당연히 이뤄져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평가의 설계와 방법도 정확히 이뤄져야 한다면서 중한자실 입원환자의 중증도를 평가해 환자구성에 따른 기관별 질적 차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평가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중환자실 건강보험 수가를 현실화하고, 공공적 영역으로서 중환자실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도 “의료법 시행규칙 34조를 개정해 1등급 중환자실의 경우 전담전문의 배치를 의무화하고, 전담전문의 1인당 환자수는 14명 이하, 간호사 1인당 환자수는 0.5명 이하로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소기준으로도 전담전문의 배치를 의무화하되, 전담전문의 1인당 환자수는 최대 30명 이하, 간호사 1인당 환자수는 1.0명 이하로 하고, 그 이하 등급은 ‘준중환자실’로 인정해 따로 수가를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정부는 관련법규 개정 뿐 아니라, 수가와 인력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정부는 지난해 9월 중환자실 입원료 수준을 기존 입원료 대비 50%에 해당하는 1,000억원 규모로 인상해 중환자실 진료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라며, “적정성 평가는 그보다 앞선 지난 2014년 이뤄진 것으로 시차가 있는 점을 감안해 달라.”고 밝혔다.

이 과장은 이어 “수가를 인상한다고 다 좋은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라며, “집중진료실을 종별로 층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고, 전문의들이 세분화돼 있는 상황에서 전담전문의를 어떻게 규정할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적정성 평가에서 1등급을 받은 11개 중 9개가 상급종병이다.”라며, “상급종병은 복지부가 지정기준을 갖고 운영 중이다. 이미 입법예고도 했지만, 상급종병의 중환자실에 전담전문의 근무기준을 만들 것이다.”라고 전했다.

상급종병 중환자실 전담전문의의 경우 1일 8시간 이상, 1주 5일 이상 근무하고, 근무기간은 3개월 이상 돼야 하며, 타업무나 교대업무는 허용되지 않는다.

부득이한 경우는 외래진료 주 4시간으로 규정하고, 휴가출장 시에는 대체 전문의를 둬야하는 등의 조항을 상급종병은 모두 충족하도록 해서 엄격하고 높은 수준으로 제공하는 내용이다.

이 과장은 또, “법규 제정만이 능사는 아니고, 여기에 더해 예산과 수가가 따라가고, 병원 현장의 수용도도 개선해 따라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필요할 것이다.”라며,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인력수급이다. 수가만으로 해결될지 우려도 있고 헌신과 소명감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과장은 “지리적 균등 문제는 상급종병에 대한 기준들이 좀 더 엄격히 요구되고, 그런 기준에 따라 상급종병들이 수준들을 충족하게 된다면 많은 부분 해소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이어 복지부가 다음주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것이라며, 병상간 최소거리를 규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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