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원장 손명세)은 최근 유소아 급성중이염 항생제 적정성 평가(4차) 결과를 공개하며, 국내 항생제 처방률이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어서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비단 이번 자료뿐만 아니라 그동안 심평원은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이 OECD 평균을 상회한다고 주장하며 항생제 적정성평가 등 처방 관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데 최근 OECD가 심평원의 주장을 뒤엎는 자료를 내놓았다. 해당 보고서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 수준을 살펴봤다.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 OECD 평균 이하
OECD는 지난 11월 4일(프랑스 현지시각) 2013년 자료를 기준으로 회원국별 보건의료 성과를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OECD는 보건의료 질 지표(Health Care Quality Indicators) 프로젝트를 통해 회원국의 보건의료의 성과지표를 수집하고 비교ㆍ분석해 그 결과를 ‘한 눈에 보는 보건의료(Health at a Glance)’에 공표하고 있다.

OECD가 ‘한 눈에 보는 보건의료(Health at a Glance 2015)’에 근거해 만든 항생제 사용량 비교 그래프
OECD가 ‘한 눈에 보는 보건의료(Health at a Glance 2015)’에 근거해 만든 항생제 사용량 비교 그래프

항생제 사용량 자료는 이번에 처음 수집ㆍ비교된 영역인 ‘일차의료 약제처방 지표’에 포함돼 있으며, 의원과 보건기관의 외래 데이터를 토대로 작성됐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16.2(DDD/1,000명/일)로, OECD 회원국 평균인 20.7(DDD/1,000명/일)보다 낮게 나타났다.

단, 광범위 항생제에 해당하는 퀴놀론과 2세대 세파로스포린 항생제 사용량은 6.1(DDD/1,000명/일)로 OECD 회원국 평균 3.3(DDD/1,000명/일)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DDD(Defined daily dose)는 약물사용량의 기본단위로, WHO는 ATC(해부학적 치료분류군)별 DDD를 매년 업데이트해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인 16.2DDD는 국민 1,000명 중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는 사람이 약 16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보고서는 총 31개국의 항생제 사용량(처방)을 비교ㆍ분석했으며, 우리나라는 칠레, 네덜란드, 에스토니아, 스웨덴, 라트비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스라엘, 독일, 노르웨이에 이어 11번째로 항생제 사용량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보다 항생제 사용량이 많은 OECD 회원국은 총 20개 국가로, 이들 국가는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리투아니아, 캐나다, 체코, 영국,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오스트레일리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아일랜드, 스페인,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터키 등이다.

OECD는 이 분석자료에 근거해 ‘항생제 남용(overuse of antibiotics)’ 그래프를 만들었고, 세계동물보건기구(OIE)가 지정한 ‘제1회 세계 항생제 인식 주간(World Antibiotic Awareness Week)’을 기념해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해당 그래프를 게재하기도 했다.

▽과거 OECD 국가 항생제 사용량 비교 자료는?
OECD가 지난 2013년 공개한 ‘한 눈에 보는 보건의료(Health at a Glance)’ 자료에서는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이 27.9(DDD/1,000명/일)로 OECD 평균인 20.5(DDD/1,000명/일)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보다 항생제 사용량이 많은 OECD 회원국은 프랑스, 벨기에, 룩세부르크, 그리스 등 4개국 뿐이며, 24개국의 항생제 사용량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의 ‘한 눈에 보는 보건의료(Health at a Glance 2013)’ 보고서 중 항생제 사용량 관련 비교 그래프
OECD의 ‘한 눈에 보는 보건의료(Health at a Glance 2013)’ 보고서 중 항생제 사용량 관련 비교 그래프

그렇다면, OECD의 2013년 보고서와 2015년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이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2013년 보고서의 경우 우리나라가 OECD에 제공한 항생제 사용량 관련 데이터가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 많았기 때문에 항생제 사용량이 높게 나타났다.

심평원에 따르면, 2013년 보고서(한눈에 보는 보건지표, Health at a Glance 2013)에 수록된 항생제 사용량은 OECD Health Data에서 수집하고 있는 ‘의약품 소비량 및 판매액’ 통계를 자료원으로 하고 있다.

이 통계는 전체 항생제 처방 건(모든 의료기관 종별, 입원과 외래 포함)을 대상으로 의약품 ATC(해부학적 치료분류군)별 사용량을 산출한다.

그런데, OECD에 항생제 사용과 관련된 광범위한 자료를 제출한 나라는 항생제 사용량을 비교ㆍ분석한 29개 OECD 회원국 중 6개 국가에 불과하다.

OECD는 항생제 사용량 비교 그래프 관련 주석을 통해 6개 국가(한국, 칠레, 캐나다, 그리스, 이스라엘, 아이슬란드)는 모든 부문(입원ㆍ외래 등)의 자료를 포함한 반면, 다른 국가들은 외래 자료만을 활용했다고 공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항생제 사용과 관련된 광범위한 자료를 제출한 6개 국가 중 한국 등 4개 국가가 2013년 OECD 보고서에서 항생제 사용량이 OECD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2015년 OECD 보고서에서는 31개 OECD 회원국 중 아이슬란드만 유일하게 항생제 사용과 관련해 광범위한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평원, 별다른 공지 없이 OECD 데이터 활용
심평원은 지난 6월 ‘2014년 하반기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결과’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이 OECD 평균에 비해 약 1.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근거로 ‘OECD Health Statistics(2014)’를 제시했다.

심평원이 지난 6월 사용한 OECD 국가 항생제 사용량 비교 표(출처: OECD Health Statistics 2014)
심평원이 지난 6월 사용한 OECD 국가 항생제 사용량 비교 표(출처: OECD Health Statistics 2014)

OECD 국가의 항생제 사용량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OECD 평균은 20.3DDD 수준인 반면 우리나라는 28.4DDD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본지 확인 결과 해당 보고서 역시 우리나라가 OECD에 제공한 광범위한 항생제 사용자료에 근거해 작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비교국가에 비해 제공된 항생제 사용 자료가 많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이 OECD 평균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심평원은 별다른 공지를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OECD에 제공한 항생제 사용 관련 자료 내역
우리나라에서 OECD에 제공한 항생제 사용 관련 자료 내역

한편, 심평원 관계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 “OECD에 제출한 자료의 종류가 달라 국가간 항생제 사용량 비교 데이터에 차이가 발생한 것 같다.”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어 “의료진의 협조로 국내 항생제 사용률이 줄어들고 있으나, 아직 일부 요양기관에서는 항생제 사용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근 전 세계적으로 항생제 내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학회 및 의사회 등 관련 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진료지침을 홍보하는 등 항생제 적정사용 관리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우리나라 항생제 처방률이 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심평원의 항생제 적정사용 관리 정책이 도마위에 오를 전망이다.

그동안 심평원은 국내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이 높아 항생제 오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사용량 관리를 강화해 왔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