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공의와 공중보건의사 등 젊은의사들과 관련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해 눈길을 끈다. 특히 이번 사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 그 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던 문제들이 원인이 돼 터졌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지난해 말 몇몇 지방의료원 전공의들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수련환경과 의국 내 불합리한 행태에 반기를 들고 파업에 나섰다. 또, 사회적으로는 인턴 사고팔기와 전공의 음주진료가 논란이 됐으나, 여기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심성 행정에 희생양이 된 연천의 공보의 사건도 의료계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해 11월 16일 대전협이 내과 전공의 파업사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지난해 11월 16일 대전협이 내과 전공의 파업사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더 이상은 못 참아…병원 뛰쳐나온 전공의들
앞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내과 전공의 1년차 7명은 지난해 11월 2일부터 6일까지 병원 측에 촉탁의 등 인력 추가고용, 내과 업무영역 보장, 수련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다.

이들은 파업 중인 11월 5일 입장 발표를 통해 “이런 소동을 일으키면서까지 요구하는 것은 ‘환자를 안전하게, 꼼꼼하게 진료할 수 있는 환경 및 전국 어느 병원 내과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진료의 질’이다.”라며, “과중한 업무로 인해 생기지 않을 수 있는 실수로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제도개선을 포함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같은 노력은 전공의 내에서의 당직 체계 변경과 같은 내부적 조정, 혹은 PA 고용이 아니라 촉탁의 고용과 같은 합리적인 외부의 도움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파업에 참여했던 전공의들은 내과부 교수들과 토론을 거친 끝에 ‘전공의 수련환경의 획기적 개선’이라는 목표와 세부사항들에 합의하고 11월 6일 파업을 철회했다.

실제로 병원 측은 2015년도 전공의 모집 공고에서 촉탁의 고용을 준비 중이며, 야간 응급실 당직을 ‘스탭 콜’로 전환했다며, 변화된 수련환경 개선을 약속하기도 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전공의들은 지난해 11월 24일 ▲의국의 근본적인 체질 개혁 ▲교수들의 의식 변화 ▲전공의 수련 및 교육 환경 개선 등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대한민국 전공의들에게 살인적인 근로 시간을 강요하는 것은 반인권적 불법 행위일 뿐만 아니라, 환자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라며, 수련병원들은 개정된 수련기준 표준안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대전협은 전공의들이 수련현황표 거짓작성을 강요하는 전국 병원들의 실태를 폭로하며, 독립적인 수련환경평가기구를 통한 진정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주장했다.

▽음주 전공의 파면 옳은 처사인가?
지난해 11월 28일 인천 길병원 1년차 전공의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봉합수술을 진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병원 측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이 전공의를 파면 조치했다.

국회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음주 후 의료행위를 금지하는 법까지 발의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해당법은 과도한 규제이자 입법 남발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진료 전날 술을 먹은 경우나 회식 도중 응급환자가 오면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고 합법적으로 진료거부를 할 수 있냐며 비판하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당직이 아니었음에도 진료에 나선 의사를 파면시키고, 관련자 10여 명도 보직 해임한 병원에 대해서도 ‘꼬리 자르기’라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이번 사건이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이번 사건은 전공의 한 개인의 문제를 떠나서 병원 수련 시스템과 수련과정 전반에 대한 문제가 내포돼 있기 때문에 향후 전공의 병원 수련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와 대책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의사총연합도 “해당 전공의가 음주상태에서 수술장갑도 끼지 않은채 봉합수술을 함으로써 환아에게 피해를 야기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이를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를 파면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해법인지는 의문이다.”라고 지적하며, 전공의 파면철회를 촉구했다.

개인의 잘못도 있지만, 열악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은 뒤로 한 채 오직 당사자에게만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것은 형평성이 결여됐다는 것이 전의총의 주장이다.

특히 전의총은 “해당 전공의 파면을 주장하기 전에 저수가를 강요하고 의료전달체계 및 응급의료체계를 왜곡시키는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이 먼저 파기돼야 한다.”면서, “또한 전공의를 값싼 노동자로 부려먹는 병원이 먼저 업무정지처분을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인턴 스케줄 암거래…비현실적 상황이 문제
지난해 말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인턴들이 힘든 과의 근무를 피하기 위해 돈을 주고 스케줄을 사고 판다는 내용까지 알려져 논란이 됐다. 해당 병원의 관계자는 ‘매우 비교육적인 일’로 판단, 내부 감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송명제 대전협 회장은 “이번 문제의 핵심은 일부 인턴들이 비교육적인 탈선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인턴들을 그렇게까지 내몬 현실이다.”라고 지적하며, “인턴들을 교육을 시킬 의도가 없는 과들이 진료과의 스케줄을 암거래하는 인턴들에게 ‘비교육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지적했다.

송 회장은 또, “힘든 과를 기피하는 인턴들을 과연 비난할 수 있나. 여기서 힘들다는 정도는 인권 밖에 있기 때문에 일반 근로자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다.”면서, 전공의들의 인권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송 회장은 “외국과 국내의 의료 사고 사례를 보아도 전공의의 과도한 근무 시간과 업무 집중력은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다.”라며,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수련 기준 표준안을 개정해 근무 시간에 제한을 두게 했으나, 자금력이 없는 수련병원들은 전공의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에 대해 다른 보안 조치를 취하지 않고 보고서를 날조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송 회장은 “결국 인턴들 간 힘든 과 스케쥴 거래 행위는 대형 병원에서 요구되는 의사 노동력에 대한 적절한 수급과 지불을 수련 병원과 정부 당국이 회피한 결과라는 것이 전공의들의 판단이다.”라고 전했다.

인턴은 의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전문직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과의 전공의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병원 내 평판을 관리해야 하는 구조적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원 측에서는 매력적인 의료인력으로 볼 뿐이라는 것이다.

송 회장은 또 하나 주목할 점으로 인턴들이 힘든 과의 스케줄을 교환하면서 제시한 금액을 꼽았다.

해당 병원 전공의들에 따르면, 암거래 액수는 인턴 월급의 최대 2.5배 정도에 이른다. 자신들의 업무는 그대로 하면서 단지 스케줄을 교환하는 조건으로 제시되는 액수가 이 정도다.

송 회장은 이에 대해 “만약 해당 과의 인턴 업무에 대해 자유 시장이 형성된다면 천정부지로 솟을 수 있는 환산 가치의 노동 강도임을 보여 준다.”라며, “인턴들의 근무 환경도 문제지만, 의사 면허를 갓 취득한 의사들이 3차 병원의 중증 질환 환자들을 대부분 전담하는 한국 의료의 구조는 환자들의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턴을 사고파는 행위에 대한 잘잘못은 개개인의 책임으로 묻는 것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현실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으면 하는 한다.”라고 당부했다.

▽하루 800명 접종한 공보의 주의처분 ‘논란’
하루에 800명 이상의 주민들에게 예방접종을 한 공보의가 주민 민원을 이유로 주의 처분을 받으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공보의까지 나왔다.

이번 문제는 지자체의 선심성 행정과 정치인들의 포퓰리즘 정책에 따른 대량 예방접종, 일방적이고 감정적인 민원에 대한 부당한 처리, 예방사업에 매진해야 할 보건소의 진료행위 몰두 등 총체적인 문제들이 결합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앞서 A 공보의는 경기도 연천군 보건의료원에서 하루에 800명이 넘는 주민에게 예방접종을 한 날 한 민원인이 제기한 민원 때문에 ‘복무 불성실’로 행정처분을 받았다.

특히 A 공보의는 지난 11월 21일 각각 ‘주의’와 ‘경고’ 행정처분명령서를 함께 받아 3개월간 업무활동장려금 지급 중지라는 처분이 내려졌다.

공중보건의사제도운영지침에 따르면, 12개월 이내에 주의 2회 또는 주의 1회 및 경고 1회의 누적 처분을 받은 경우 3개월간 업무활동장려금 지급 중지 처분을 내린다.

이에 대해 해당 공보의와 선후배 동료 의사들은 행정처분이 일방적이고 과도하다고 판단해 연천군청과 경기도청, 보건복지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민원을 제기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도 이번 처분이 법리적 문제가 없는지 항의 공문을 보내는 등 지원사격에 나섰다.

신현영 의사협회 대변인은 “공보의들이 예방접종 시즌에는 하루에 1,000명도 본다고 한다.”면서, “이는 결국 환자안전 측면에서 봤을 땐 세월호 사태처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며, 문제가 생기면 모두 공보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해결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영인 대공협 회장도 “제도적으로 봤을 때도 구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예방접종 건에 대해 공보의를 같은 보건의료원 구성원과 공무원 신분으로 대응해 주는 것이 아니라, 민원인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행정처분을 내리고 끝내 버리는 일종의 책임 전가적인 측면도 있어 협회가 나설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보의들의 권익과 처우와도 관련이 있으며, 나아가 지역주민의 보건환경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연천군보건의료원 측은 주의처분을 내리는 과정에서 공보의의 의견을 듣지 않은 절차상 잘못을 인정하며 기존 주의 처분을 취소하고 A 공보의의 의견서를 제출 받았으며, 보건의료원장 직권으로 주의 처분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A 공보의는 “애초부터 말도 안 되는 민원 때문에 고생한 것이다.”라며, “여러 단체와 의사 동료들의 도움으로 행정처분을 막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예방접종 사업과 관련해 정책적인 변화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대공협과 질병관리본부 간 상시 연락체계가 갖춰지고, 차기 대공협 집행부와 보건복지부와의 근무지침 재협상 과정에도 이번 사안이 반영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질병관리본부와 업무협의를 통해 각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독감예방접종 사업에 대해 독감예방접종 1일 예진자 수의 한도를 정하는 등의 공보의 복무환경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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