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국민건강보험을 비롯한 보건의료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해법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지난 16일 오후 여의도 렉싱턴호텔에서 열린 ‘보건의료제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발제에 나선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이중 지출되고 있는 민간의료보험료를 줄이고, 건강보험료와 보험수가를 현실화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노환규 회장은 “우리나라 보험수가는 원가의 약 70%선에 불과하다 보니 병원은 손실을 줄이고 이익을 늘이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고 박리다매 진료를 하며, 비급여 진료를 확대하는 등 각종 편법을 동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 회장은 이어 “이 같은 편법은 결국 위험한 진료를 양산해 환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고, 치료비 부담도 증가하게 만든다.”라며, “결국 의료비 부담이 염려되는 국민들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게 된다.”라고 전했다.

광고비, 모집수당, 회사이익 등이 포함된 민간의료보험 지출을 줄이고, 건강보험료를 올려 보장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반면, 토론에 나선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주임교수는 “노환규 회장의 발제내용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조금 생각이 다르거나 다르게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라고 반박했다.

김윤 교수는 “건강보험 저수가로 인한 과잉진료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수가를 적정 수준으로 올려야 하는데, 결국 국민들이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라고 전제한 후,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건강보험료를 올려 적정수가가 되면 국민들이 더 이상 과잉진료나 불필요한 비급여진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의료제도 개혁으로 가능한데, 과잉진료나 비급여진료가 발생하기 쉬운 현행 행위별수가제를 포괄수가제와 같은 과잉진료가 상대적으로 덜 발생하는 지불제도로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또,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해 비급여진료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대학병원이 동네의원과 경쟁하는 비효율적인 의료체계를 바꾸고, 노인질환과 만성질환이 잘 관리되지 않는 복합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주치의제도에 가까운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외에도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의료분야의 과잉투자를 막아야 한다며, 국가가 산업에서 구조조정을 하고, 과잉투자를 규제하듯, 의료분야도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도록 규제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노환규 회장은 “포괄수가제는 과잉진료의 위험은 없지만, 과소진료의 위험이 매우 크다.”라며, “과잉진료 지적만 하는데, 꼭 필요한 필수진료를 줄이는 과소진료 문제도 심각하다.”라고 반박했다.

노 회장은 “이미 저수가 때문에 비급여 항목이 없는 부분은 과소진료를 하고 있다.”면서, “포괄수가제는 그 위험성이 더욱 크므로 의협이 반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치의제도와 관련해서도 “새 제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는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탄생 배경과 우리가 과연 지금 여건에서 주치의제도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복합적인 부분이 있다.”라며,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면 한나절이 갈 것이다. 간단히 끄집어내거나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패널토의에 나선 장성인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보건의료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의료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성인 회장은 “지난달 10일 이뤄진 의료계 총파업 당시 예상을 깨고 많은 전공의들이 참여한 이유는 전공의들이 배운 대로 최선의 진료를 못 하고, 경제적이나 다른 제도적 이유로 양심에 어긋나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현실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장 회장은 이어 “우리나라가 GDP 대비 의료비가 OECD 평균보다 적은데 증가율은 높고, 고령화에 따라 비용이 증가해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런 인식에서 전공의들이 힘들어하는 불합리한 의료제도가 출발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꼬집었다.

의료비가 낮으면 올리는 것이 정상이고, 대상자가 늘면 그에 맞춰 의료비를 늘리는 게 정상인데, 왜 의료비를 줄이려고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의료비를 줄이는 것이 마치 쓸데없는 돈을 아끼는 것처럼 포장되지만,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의료 혜택을 줄이는 것인데 그것이 왜 좋은 것처럼 여겨지는지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장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의료가 복지의 관점에서 다뤄지면서도, 비용 측면에서만큼은 의료를 복지와 다르게 바라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복지는 비용이 적다며 늘리려고 하고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하면서, 의료는 비용이 증가하니 조정해야 한다고만 얘기한다는 것이다.

장 회장은 “의료를 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왜 복지와 다르게 의료에는 다른 잣대를 적용해 더 적은 비용만을 요구하는지 그런 부분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의료를 복지나 산업의 수단으로만 바라봐 생기는 왜곡들이 많다.”면서, “의료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지불제도나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어도 효과가 나올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실장은 “병원 노동자 입장에서 그 동안 수가 영역은 사실 금기의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하게 됐다.”라며, 적정수가를 위해서는 현재 불합리한 수가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나영명 실장은 “기계와 장비 등 시설과 관련한 수가는 상당히 고평가 돼 있는 반면, 인력이 투입되는 부분에 대한 수가는 50%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라며,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 개선을 위해 정부와 국민, 공급자가 함께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나 실장은 또, 수가만을 올리기는 힘들 것이라며, 국민들이 민간의료보험에 내는 보험료를 국민건강보험으로 돌리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료를 좀 더 높이는 방안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도 전면 반대가 아니라 이제는 고민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그는 “정부가 건강보험료에 기여하는 비율이 법정 기준인 20%에도 못 미치는 16%에 불과하다.”면서, “정부의 책임영역이 낮은 문제를 해결해 다른 나라처럼 최소 25~30%까지 올리려고 하는 노력을 수반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수가인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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