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보건의료 분야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다며 내놓은 대책이 이해당사자들과 국민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그 동안 보건의료 서비스의 발전을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중요하다며 몇 차례 운을 떼더니, 지난 13일 본격적인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의료계는 원격의료와 영리병원에 강하게 반대하며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고, 약사들은 법인약국 허용 소식에 아연실색했다. 국민여론 역시 이번 정책을 ‘의료민영화’로 규정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등은 의료민영화가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개념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기관 자법인ㆍ법인약국 허용 발표
보건복지부는 지난 13일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을 허용하고 부대사업의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보건의료 서비스 방안을 담은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에 따르면, 자법인의 형태를 비영리법인뿐만 아니라 상법상 회사로 확대해 투자와 사업의 범위를 넓혔다.

그 동안 의료법인에 대한 자법인 설립은 불허했고 진료 외 부대사업은 법령상 8개 분야로 제한했다. 고유목적 사업인 의료사업에 전념해야 한다는 측면에 중점을 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병원의 수익구조가 악화되면서 의료법인의 경영난이 가중됐고, 학교법인인 대학병원과의 형평성 문제 등이 제기 돼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개발 활성화와 병원경영 효율화, 의료관광 촉진 등을 위해 부대사업 종류를 확대하고 이를 실현시킬 자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현재 허용되고 있는 부대사업은 의료인 등 양성ㆍ보수교육과 산후조리, 노인의료복지시설업, 조사 연구, 장례식장, 의료기기, 구내식당ㆍ매점, 이ㆍ미용업, 은행업, 시도지사 공고를 통한 숙박업, 서점 등이다.

하지만 내년 하반기부터는 바이오 등 연구개발 성과물을 응용하고 의료기관 임대와 의약품 개발, 여행업, 외국인환자 유치업, 온천ㆍ목욕장업, 체육시설 등도 허용할 방침이다. 또 시도지사 공고였던 숙박업과 서점은 시행규칙 직접 허용으로 절차를 간소화한다.

다만 자법인 설립 가능 기준을 회계 지배관계 투명성 등 공익법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출연재산 운용수익을 의료서비스 등 공익 목적사업에 80% 이상 재투자하는 성실공익법인으로 제한했다. 또, 의료법인은 순자산의 30% 정도 까지만 자법인에 출자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아울러 내년 상반기 의료법인이 경영합리화를 위해 다른 의료법인과 합병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마련되며, 법인 형태의 약국 설립을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밖에 한방물리치료사 도입을 추진 중이며, 해외환자 유치 촉진을 위해 상급종합병원의 외국인 입원환자 병상비율에 국내환자 이용률이 낮은 1인실이 제외된다.

▽의료계 ‘대규모 궐기대회’ㆍ약사들 ‘국민적 저항’ 예고
이 같은 정부의 발표에 보건의료계는 발칵 뒤집혔다. 특히 앞서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원격의료 확대 소식에 이어 투자활성화 대책까지 쏟아지자 의료계는 대규모 궐기에 나섰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15일 여의도에서 개최한 전국의사궐기대회 모습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15일 여의도에서 개최한 전국의사궐기대회 모습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위원장 노환규)가 원격의료와 영리병원 허용에 반대하며 지난 15일 여의도광장 문화마당에서 개최한 대규모 궐기대회에는 전국에서 2만여명의 의사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잘못된 의료제도 개선과 관치의료 중단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의사들은 정부가 발표한 투자활성화 대책은 잘못된 건강보험제도를 해결하지 않고 편법 수단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경영 악화로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있으므로 영리 자회사를 설립해 부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병원경영 개선에 활용하라는 것은 취지부터 잘못됐다.”라고 지적했다.

노 회장은 “정상적인 진료를 하는 경우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인 현 왜곡된 건강보험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라며, “올바른 건강보험제도는 병원이 정상적인 진료활동을 통해 적정 이윤을 얻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정부가 추진중인 원격의료에 대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노 회장은 “휴대폰을 이용한 진료의 허용은 진단의 정확성을 떨어뜨리고 동네의원의 몰락을 가져와 오히려 정부의 주장과 반대로 의료의 공공성을 떨어뜨릴 것이 자명하다.”라고 경고했다.

또한 원격진료 허용으로 인해 국민 건강에 미칠 영향은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탁상공론을 통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정확한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약사회 역시 정부의 법인약국 입법 추진에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대한약사회(회장 조찬휘)는 지난 13일 입장 발표를 통해 “원격진료 추진에 이어 법인약국과 의료민영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접하고 우려를 금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약사회는 “법인약국은 보건의료가 공공재로서의 기능보다는 자본에 의한 독점과 편중으로 당초의 기대와는 다른 역효과로 인해 국민에게 위해를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정책추진 의지는 일방적이며 독선적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 전문직능인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정책과 제도는 반드시 사회 환경과 현실성을 반영해야 한다.”라며, “10년 이상 방치된 법인약국 문제가 현 시점에서 재론된 것에 대해 공청회와 관련단체,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운데 국민적 여론이 다시 집약되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약사회는 지난 19일 발표한 이사회 결의문을 통해서도 “정부가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이라는 미명하에 법인약국 도입을 내세우고 있지만, 약국의 법인약국 허용은 곧 대자본에 의한 기업형 체인약국을 확산시켜 동네약국의 몰락을 초래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사회는 “정부가 법인약국 도입을 추진하려는 것은 보건의료서비스의 특수성과 공공성을 배제하고, 궁극적으로 의료민영화로 가기 위한 사전 포석이다.”라며, “정부가 법인약국 허용을 위한 약사법 개정을 추진할 경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국민적 저항운동을 전개하겠다.”라고 밝혔다.

다만, 병원계는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병원경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는 등 의협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병원협회는 정부 투자활성화 대책과 관련해 협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사항이 상당수 포함됐다고 평가하고, 병원 및 연관 산업 전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병협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던 의료법인병원의 부대사업 범위 확대는 타법인(개인의료기관, 사회복지법인, 사립학교법인)간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의료법인의 경영난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수익기반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의료법인간 합병허용에 대해서는 관련 부처인 복지부에서도 추진했던 사항인 만큼 의료법인의 경영합리화 차원을 넘어 의료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국민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해외환자 유치 촉진과 관련하여 제시된 외국인환자 병상비율규제 완화와 외국인 밀집지역 의료광고 허용에 대해서도 의료기관들이 해외환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시민단체들 “정부는 아니라지만 민영화 맞다”
시민단체들 역시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돼 의료비를 폭등시킬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쏟아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19일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보건의료 투자활성화대책을 통해 전면적인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19일 ‘철도파업지지 및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19일 ‘철도파업지지 및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한 노동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의료비를 폭등시키고, 병원의 영리형 부대사업 전면 확대는 부적절한 진료를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병원 인수합병 허용은 체인형 영리병원으로 대기업의 병원지배를 초래하고, 약국 영리법인 허용은 약제비 인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역시 같은 날 논평을 통해 “정부는 억울한 듯 아니라고 하지만, 보건의료 투자활성화 대책과 원격진료 허용은 모두 영리적 의료를 위한 정책들”이라고 주장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07년 ‘의료서비스산업 고도화와 과제’ 보고서를 통해 ‘영리의료법인 허용의 전 단계로 부대산업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자법인을 통한 부대사업 확대가 영리의료법인 도입으로 가는 로드맵임을 밝히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지난달 영리병원의 다른 이름인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며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진출 제한을 완화해 다양한 수익사업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한 사실을 내세웠다.

원격진료 도입 역시, 지난 2009년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삼성경제연구소가 정부에 제시한 ‘미래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건강관리서비스의 시장화와 원격의료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 내용을 정부가 충실히 실제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원격의료 도입을 제안했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원격진료에 필요한 IT기기를 보유한 삼성 등 대기업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영리사업이라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 원격의료 허용을 위한 의료법 개정을 염두에 두고 진행된 스마트케어 시범사업에 SKT, LGT,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대기업과 국내 ‘BIG4’ 병원이 적극 참여했던 것”이라고 일침했다.

같은 날 보건의료노조도 성명을 통해 보건의료제도 개혁을 위한 8대 요구를 제시하며, 의료영리화 저지 전면투쟁을 선언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에 ▲원격의료 허용법안 즉각 폐기 ▲의료민영화 정책 전면 폐기 ▲보건의료제도 발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보건의료산업 일자리 50만개 확충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 ▲공공의료 확충 방안 마련 ▲적정부담-적정보장-적정수가체계 확립 대책 마련 ▲의료양극화 해결방안 마련 ▲획기적인 건강보험 보장정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또한 이들은 “‘박근혜정부의 의료영리화ㆍ의료민영화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전면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한다.”라며, 범국민 서명운동 전개 및 보건의료단체들과의 연대투쟁 등을 예고했다.

▽국민여론은 더 ‘흉흉’…맹장수술이 1,500만원?
인터넷과 SNS를 중심으로 한 국민여론은 더 ‘흉흉’하다. 정부의 정책이 시행되면 맹장수술이 1,500만원에 달할 것이라는 등 근거 없는 주장들까지 급속도로 확산되며 ‘의료괴담’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철도 민영화 논란과 맞물려 많은 국민들은 이미 ‘의료민영화’라는 프레임에 갇혀 이 같은 주장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분위기다.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통해 숙박이나 의료기기 등의 수익사업을 하다 보면 결국 의료민영화로 이어져 병원비가 폭등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영리사업을 할 수 있는 자법인을 허용하면 병원이 수익확대를 위해 적정진료보다 과잉진료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고, 자연스레 수익을 낼 수 있는 의료서비스 쪽으로만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지난 15일 다음 ‘아고라’에서 시작된 의료민영화 반대서명은 목표치 1만명을 훌쩍 넘어 8만 5,000여명의 네티즌이 서명한 상태다.

네티즌들은 “의료민영화가 되면 미국처럼 의료비가 엄청나게 올라 간단한 수술도 몇 천만원이 될 것이다”, “큰 병에 걸려도 돈이 없으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등의 주장을 펴며 의료민영화와 관련한 주장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모양새다.

▽청와대 수석 해명에 복지부 아고라까지…‘총력 진화’
거센 역풍에 당황한 정부는 주무부처 장차관과 실무진, 청와대 수석까지 총출동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아고라’에 직접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료민영화라는 지적을 하는데, 우리나라 병원 95%가 이미 민간병원인데 민영화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라고 반박했다.

문형표 장관은 “맹장수술 하는데 1,500만원이 들 것이라는 주장은 말 그대로 ‘괴담’에 불과하다.”라며, “자법인은 비영리법인인 병원 틀 내에서 세우는 것이므로 병원 자체가 영리법인이 되는 민영화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라고 못 박았다.

이영찬 복지부 차관 역시 지난 17일 “원격의료는 영리병원과 관련 없다는 점을 의사협회도 인정했고,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도 영리병원과 무관하니 오해하지 말아달라.”라고 밝혔다.

이창준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몇몇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 허용은 대형병원 쏠림 현상으로 인한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병원의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복지부는 최근 홈페이지를 개편, 메인화면에 ‘원격진료, 보건의료 투자활성화 정책 바로알기’를 배치하고 다음 ‘아고라’를 통해 직접 해명에 나서는 등 국민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최원영 청와대 고용복지수석과 현오석 부총리가 나서 원격의료는 의료민영화와 무관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지난 21일에는 노환규 의협 회장과 시민단체, 복지부 실장이 한 데 모여 TV 토론까지 개최했지만,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의료민영화 논란은 정부와 의료계, 시민단체까지 엉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만큼,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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