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자들이 병원을 선택할 때 미리 홈페이지를 둘러보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홈페이지 단장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의사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 않고, 타인의 글을 베끼는 불법 행위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달 16일 소아정신과의사의 글을 베껴 자신의 한의원을 홍보한 한의사가 공중파뉴스에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당시 자신의 글을 도용 당한 김태훈 원장(사랑샘터의원)을 만나봤다.

 
 
장영식 기자: 반갑습니다. 원장님?

김태훈 원장: 네. 반가워요.

장영식 기자: 홈페이지를 둘러보니 게시된 글이 많던데 언제부터 올리신 건가요?

김태훈 원장: 2004년 3월에 병원을 개원했고, 홈페이지는 두 달 뒤인 5월 오픈 했어요. 그리고 2006년부터 임상 관련 글을 올렸죠. 홈페이지에는 500여건을 올렸고, 블로그에도 400여건을 올렸습니다. 중복되는 글을 제외하면 모두 600여건은 될 겁니다.

장영식 기자: 홈페이지 방문자는 얼마나 되죠?

김태훈 원장: 홈페이지 방문자는 하루 300여명 정도 됩니다. 운영중인 네이버와 다음의 블로그에도 각각 200여명 가까이 방문하니까, 모두 더하면 최소 600여명이 방문하는 것 같아요.

장영식 기자: 한의원이 원장님 글을 무단 도용했다고 들었어요. 언제쯤 알게 되셨나요?

김태훈 원장: 제가 쓴 글을 블로그에 올린 후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검색하면 노출이 됩니다. 최근에 글을 올리고 확인해 보니 상단에 노출됐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겁니다. 검색도 안되길래 좀 이상하다 싶었죠.

장영식 기자: 그래서 확인작업에 들어간 거군요?

김태훈 원장: 이런 경우 내 글과 똑 같은 글이 있어서 노출됐다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블로그에 올린 글 제목으로 검색해 봤어요. 그랬더니 다른 곳의 글이 검색되는 겁니다. 몇 개 글을 더 쳐봤더니 똑 같더라고요. 너무 황당해서 제 책에 있는 다른 꼭지 제목을 쳤어요. 그러니까 F 한의원 블로그가 검색돼 올라오더라고요. 그 한의원 블로그가 내 글을 검색할 때마다 모두 검색되길래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어요. 확인해보니 내 책을 다 베꼈더군요.

장영식 기자: 얼마나 베낀 거죠?

김태훈 원장: 베끼지 못할 부분만 빼고 다 베꼈어요. F 한의원이 부산에 있다 보니 ‘소아정신과가 강남에 많은 이유’라는 글은 안 베꼈고요. 그리고 한의원이다보니 정신과 약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는데, ‘엄마들이 알아야 할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들’이라는 글도 뺐더군요.

장영식 기자: 그런 특징적인 글을 제외하고는 모두 베꼈다는 말인가요?

김태훈 원장: 네. 재미있는 건 한번씩 베꼈으면 말을 안 합니다. 하나의 글을 여러 번 올렸어요. 또 각 글마다 서브 주제가 있는데, 그걸 메인 주제로 해서 또 올렸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한 꼭지는 네이버와 다음을 다 합쳐보니 20개가 넘게 글을 올렸더군요.

장영식 기자: 그러니까 하나의 글을 여러 개로 나눠서 올리기도 하고,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리기도 했다는 말이죠?

김태훈 원장: 그렇죠. 조각을 내지 않고도 계속 반복해서 올린 것도 많고요. 그래서 다 찾아냈어요. 당시 발견해 낸 글 수만 314개였어요. 제가 쓴 ‘산만한 아이 혹시 ADHD’의 꼭지 제목이 46개인데, 그걸 그런 식으로 분할해서 다 올린 거죠.

장영식 기자: 당시 심정이 어떠셨나요?

김태훈 원장: 벌거벗은 기분이었어요. 요즘 말로 멘붕 상태가 된 거죠. 왜 남의 허락 없이 그런 짓을 했는지 화가 났어요. 그리고 더 화가 나는 것은 내 지식을 다 뺏어가서 ADHD에 대해 전문가 행세를 했다는 거 자체를 참을 수 없었어요. 한의사에게 도둑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장영식 기자: 과거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나요?

김태훈 원장: 이렇게 통째로 도용한 적은 없었어요. 몇 곳 있었지만 한의원이 아니라 언어치료사와 아동발달연구소를 운영하는 업체 등이었고, 한 두건에 불과해서 그냥 넘어갔죠.

장영식 기자: 그렇군요. 한의원이 원장님의 글을 무단 도용해 간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하셨나요?

김태훈 원장: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지만, 먼저 실태파악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전문 업체에 맡길까도 고민했지만 내가 작성해서 모두 아는 내용이니까 직접 찾아보기로 했죠. 그다음 변호사를 선임해서 해당 한의원을 고소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장영식 기자: 그래서 고소를 하셨나요?

김태훈 원장: 내용증명을 보냈고, 고소까지 하진 않았습니다.

장영식 기자: 내용증명 내용은 어떤 것이었나요?

김태훈 원장: 내 글을 허락받지 않고 무단 도용한 것을 확인했다고 지적하고, 손해 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장영식 기자: 고소를 하지 않은 이유는 내용증명에 대한 답이 왔기 때문인가요?

김태훈 원장: 한의원 측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해줬습니다. 경제적 문제도 고려했고, 무엇보다 고소를 하면 진료 시간을 뺏기 게 되는 것이 걱정됐어요.

장영식 기자: 그렇군요. 원장님이 펴낸 책을 도용한 F 한의원에 대해서는 우선 그렇게 정리를 하셨고, 원장님 홈페이지와 블로그 글을 도용한 한의원도 있었죠?

▲사랑샘터의원 홈페이지 화면
▲사랑샘터의원 홈페이지 화면
김태훈 원장: F 한의원이 제 책을 베꼈다면, 부산에 있는 B 한의원은 홈페이지와 블로그 글을 도용했어요. B 한의원은 6월초에 고소했다가 취하했어요. 고소를 취하한 이유는 제3자가 제가 선임한 변호사에게 연락해 자기가 저지른 일이고, B 한의원 한의사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에요. 한의사의 죄를 묻는 게 목적이었는데 그럴 수 없게 돼 더 진행할 수가 없었어요.

장영식 기자: 주변에서는 원장님이 이번 사례에 대해 좀 더 확실히 처리해 주기를 바랐을 것 같아요.

김태훈 원장: B 한의원 건은 그렇게 하려고 고소를 한 겁니다. B 한의원 한의사가 해당 지역에서 한의사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법적 책임을 지우려 했어요. 그런데 그 한의사가 “나는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돌연 나타난 제3자는 “글을 도용한 건 나다.”라고 주장하니 한의사에게 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었어요.

장영식 기자: 원장님은 B 한의원 홈페이지에 원장님의 글이 올려져 있던 장면을 증거자료로 가지고 있잖아요?

김태훈 원장: 그렇죠.

장영식 기자: 그런데도 제3자가 자신이 도용했다고 주장하면 손을 쓸 수가 없는 건가요?

김태훈 원장: 변호사에게 자문을 받아보니 저작권 위반은 주체가 누구냐가 중요해요. 한의원 홈페이지라고 하더라도 한의사는 발뺌을 하고, 제3자가 자신이 도용 했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할 수 없답니다.

장영식 기자: 분명히 한의원 한의사에게 경제적 이득이 갔을 텐데도 그렇게 되는군요. 그렇다면 자신이 도용했다고 하는 사람을 고소할 수 있지 않나요?

김태훈 원장: 그 사람을 고소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고소 후에 조사를 받기 위해 진료 시간을 뺏길 걸 생각하면 얻는 게 없죠.

장영식 기자: 동료 의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태훈 원장: 여기저기에서 도용할 정도로 책이 유명한 지 몰랐다고 놀라워하기도 했고, 위로도 하더군요. 또,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남의 지식을 도용해서 전문가 행세하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동료도 있었죠.

장영식 기자: 저도 주위 의사들에게 물어보니 한의사가 뇌 치료를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김태훈 원장: 이번 일을 겪고 보니 한의사들의 도덕성을 의심하게 됐어요. 더구나 한의사회 임원을 맡고 있는 사람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더 문제죠. 더군다나 그 한의사는 남의 글을 베끼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한의사들의 재활의학과 교과서 무단 도용 문제도 심각한데 이번 기회에 이런 부분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갔으면 해요.

장영식 기자: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김태훈 원장: 단호하게 대처할 생각입니다. 이번 건은 처음이라 미숙한 부분이 있었는데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법적으로 처리할 겁니다.

 
 
장영식 기자: 알겠습니다. 이제 화제를 돌려볼게요. 그동안 두 권의 책을 내셨죠?

김태훈 원장: 네. 지난 2010년 4월에는 ‘산만한 우리 아이 혹시 ADHD’라는 책을 냈고, 최근 ‘시계의 원리’ 라는 책을 냈어요.

장영식 기자: 환자만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특별히 책을 펴낸 이유가 있나요?

김태훈 원장: ADHD에 대한 지식을 일반인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그동안 ADHD를 제대로 소개하는 책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출판사를 구하는 게 힘들었어요. ADHD가 대중적이지 않아서 사람들의 관심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간신히 책을 펴내게 됐고 사회환원 차원에서 인세 전액을 산악인 엄홍길 씨가 운영하는 ‘휴먼재단’에 기증하고 있어요.

장영식 기자: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는데요?

김태훈 원장: 책을 펴낸 이유는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ADHD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였어요. 그래서 일반인 입장에서 ADHD가 과연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쉽도록 책을 썼어요. 그런데 한의사들이 이런 식으로 악용할 줄 몰랐어요.

장영식 기자: 이야기 하다 보니 다시 도용 문제로 돌아왔네요.

김태훈 원장: B 한의원의 경우 고소해서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요. SBS 방송 보셨나요? 방송을 보니까 그 한의사는 기자에게 “우리는 그 당시에 뇌 전문으로 한 게 아니고,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 침 놓고 그런 걸 하고 있었을 때에요. 직원들이 퍼다가 끌어 쓴 거죠. 어느 정도는 내용이 채워져야 하니까.”라고 말하더라고요. 자신은 일반 환자를 보는 한의사에 불과한 데 뇌 전문가로 행세했다는 걸 고백한 거죠.

장영식 기자: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할게요. 요즘 개원가 사정이 나쁘잖아요? 체감으로 느끼기에 어느 정도인가요?

김태훈 원장: 개원한 지 십 년 째인데 이런 불경기는 처음입니다. 2007년도에 ADHD 붐이 불어서 환자가 가장 많았는데, 그때랑 비교하면 60% 수준인 것 같아요.

장영식 기자: 사회가 다변화 되면서 정신과를 찾는 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지 않나요?

김태훈 원장: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소아를 대상으로 정신과 진료를 하기 시작하면서 문턱이 많이 낮아진 것도 사실이고, 환자들이 예전에는 치료를 위해서 무작정 오는 경향이 강했는데 요즘에는 차근차근 미리 준비해서 오는 분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여건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워낙 침체하다 보니 환자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장영식 기자: 불경기가 가장 큰 이유인가요?

김태훈 원장: 또 하나는 일반인 사이에서 아직까지 정신과에서 진료받은 기록이 밝혀질까 봐 꺼리는 분위기가 남아 있어요. 이는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으면 전부 F코드로 남기 때문인데, 그 기록이 새어나간다고 의심해요. 실제로는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어서 새어나갈 염려가 없는데도 말이죠.

장영식 기자: 일반인들의 불신을 해소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겠네요.

김태훈 원장: 정부에서 정신보건법을 개정해서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만으로 불이익을 받는 것을 없애겠다고 이미 밝혔어요. 정신보건법에서도 정신과에서 단순외래진료를 받은 사람은 정신질환 분류에서 제외해 사보험 혜택에서 차별 받는 것을 없애겠다고 했고요. 정신보건법이 빨리 진행돼 공포되면 정신과 문턱이 낮아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불명예 중 하나인 자살률도 많이 낮아질 거구요.

장영식 기자: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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