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약사회가 오늘부터 전국 51곳에서 24시간 연중무휴 영업하는 ‘심야응급약국’ 시범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시행 전부터 약국회원들의 참여저조와 응급명칭 사용의 불법성, 임의조제 우려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 험난한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한약사회가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저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심야응급약국을 시행하는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심야응급약국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의료계는 왜 반발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심야응급약국 도입 배경은?
대한약사회는 그동안 공휴일과 야간시간 당번약국을 자율적으로 운영해 왔다. 그러나 당번약국이 순환제로 운영됨에 따라 찾기 어렵다는 불만이 제기돼, 심야응급약국과 연중무휴약국 시범사업을 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난 5월 전국약사대회에서 보건복지부 전재희 장관이 “심야시간대 국민들의 약품구매 불편을 해결해 달라”고 말한데서 심야응급약국 시범사업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대한약사회가 야심차게 시작하는 심야응급약국에 대해 의료계는 물론, 시민단체를 비롯한 국민여론조차 좋지 않은 것은 기획재정부가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고,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막기 위한 협회 차원의 이기적인 ‘방어책’이라는 의심 때문이다.

▽심야응급약국 어떻게 운영되나?
19일부터 전국에는 2800여개의 심야 응급약국과 연중무휴 약국이 운영된다. 지난 13일 대한약사회에 따르면 이번 시범사업에는 24시간 또는 새벽 6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응급약국(레드마크) 51곳과 새벽 2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응급약국(블루마크) 30곳을 포함해 심야응급약국 81곳이 운영된다.

또 공휴일과 주말에도 4시간 이상 연중무휴로 운영하는 2174개 약국과 연중무휴는 아니지만 평일 밤 10시 이후까지 운영되는 593개 약국 등 모두 2848개 약국이 이번 사업에 참여한다.

심야응급약국과 연중무휴약국은 기존 개장시간을 늘려 운영한다. 그러나 심야응급약국을 운영하기 어려운 지역은 지역 약사회관 또는 공공기관에 심야응급의약품취급소 형태로 개설돼 밤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운영된다. 심야응급의약품취급소는 19일부터 순차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레드마크 약국은 서울 25곳, 경기 9곳, 부산 1곳, 대구 1곳, 인천 2곳, 광주 2곳, 대전 2곳, 울산 1곳, 충북 2곳, 충남 2곳, 전북 1곳, 경남 2곳, 제주 1곳으로 운영된다.

블루마크 약국은 서울 9곳, 대구 2곳, 인천 1곳, 광주 2곳, 대전 2곳, 경기 5곳, 충남 1곳, 전북 2곳, 전남 1곳, 경북 3곳, 경남 1곳, 제주 1곳이다.

대한약사회는 약국 운영시간을 이미지화 한 간판 또는 스티커를 붙여 환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할 예정이다. 또 심야응급약국등에 관한 정보는 시범사업 중 계속 업데이트되며 대한약사회 당번약국 안내 홈페이지(www.pharm 114.or.kr), 1339(응급의료정보센터)와 114(생활정보서비스), 120(다산콜센터) 등의 전화안내 등을 통해 제공받을 수 있다.

▽의사들 '응급' 약국명칭 불만, 왜?
그러나 심야응급약국은 그 명칭에서부터 불법성 논란에 휘말리며 잡음이 일고 있다.

특히 의료계를 중심으로 단순하게 일반의약품 구매 편익을 위해 심야약국을 운영하면서, 응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마치 국민들에게 응급조제 및 전문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처럼 오인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의협은 지난 14일 보건복지부에 심야응급약국 명칭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며 시정조치를고 요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의협 문정림 대변인은 “의료기관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 약국에서 ‘응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9조 ①항의 취지에 위배되며, 정책적으로는 의약분업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에 의협은 복지부에 심야응급약국 명칭 중 ‘응급’을 삭제토록 행정지도할 것과,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9조 및 제62조에 의거해 의법조치할 것을 촉구했다.

의협은 만약 자신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심야응급약국에 대한 현지조사를 통해 증거를 확보한 후 법적대응에 나설 것이며, 심야응급약국의 불법행위에 대한 감시활동을 강화해 법 위반사항 적발시 형사고발 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김일중 회장 역시 “‘응급’이라는 용어는 자칫 ‘환자를 진료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심야당번약국’ 혹은 ‘24시간약국’ 등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전국의사총연합도 “잘못된 명칭으로 전문성이 훼손될 수 있고, 응급상황에 처한 환자들이 자칫 오인해 심야응급약국을 방문할 경우 적절한 응급처치의 기회를 놓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약국에서 임의조제가 성행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우려했다.

▽심야응급약국 성공가능성 의문
명칭 외에도 심야응급약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회원약국들이 수지타산이 안맞고, 안전문제 등을 이유로 저조한 신청률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심야시간대 시민들이 주로 찾는 해열제나 진통제 등 일반의약품을 팔아서는 심야시간대 영업이익을 도저히 맞출수가 없다는 것이 약사들의 불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사회 차원에서의 인센티브는 현재로서는 전무하다.

결국 자발적으로 신청한 약국이 절반도 되지 않자, 나머지는 마지못해 시군구약사회 차원에서 약사회와 관공서 등에 의약품 취급소를 운영하게 됐다.

또한 전국적으로 81곳에 운영되는 심야응급약국은 서울에 34곳, 경기도에 14곳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지역편중 현상도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됐다.

일부 지역은 심야응급약국 개념으로 운영되는 약국이 한곳도 없거나, 레드마크에 해당하는 새벽시간대 운영약국이 전무한 지역도 있어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사업이라는 대한약사회의 목소리가 무색하게 됐다.

약사들의 불법ㆍ임의조제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한 개원의는 “지금도 약사들의 임의조제 문제가 심각한데, 심야응급약국에서는 ‘심야’라는 점을 악용한 불법조제나 불법진료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반약의 약국외 판매 저지를 위해 시행된 심야응급약국이 오히려 일반약 슈퍼판매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전국의사총연합은 지난 15일 성명을 통해 “심야응급약국은 일반약 슈퍼판매 허용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미봉하려는 술책에 불과하다”면서 “국민의 편의성과 약제비 감소를 위해 일반약 슈퍼판매를 허용하라”고 주장했다.

성명은 “이미 OECD 국가 및 기타 선진국에서는 안전성이 담보된 일반약 슈퍼판매가 이뤄지고 있다”며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만 약사들에게 독점적인 판매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약사들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 역시 심야응급약국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며, 일반약 슈퍼판매를 주장하고 나섰다.

경실련은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현재 보건복지부와 약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심야응급약국은 2007년 시행했다 실패한 ‘24시간 약국’과 다를 바가 없다”며 “일부 일반약 약국외 판매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외면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심야응급약국은 일반약의 약국 외 판매 필요성을 대신하거나 해소할 수 없다”며 “심야응급약국 도입안은 결국 약사의 이권을 위해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심야응급약국 시범사업의 결과에 따라 대한약사회의 희비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한약사회는 시범사업의 성패와 관계없이, 더이상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일반약 슈퍼판매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를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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