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상당수 의사는 진료실에 들어서면 덜컥 겁부터 난다. 이유는 환자나 환자 보호자로부터의 폭행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기 때문이다. 멱살과 욕설은 그나마 양호한 축에 속한다. 심지어 일부 의사들은 둔기에 맞고, 흉기에 찔려 생명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이르기도 한다. 실제 몇몇 의사는 환자의 흉기에 생명을 잃기도 했다. 이처럼 의료인에 대한 폭행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 제도나 장치 마련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본지는 환자나 환자 보호자로부터 직접 폭행을 당한 실제 사례를 돌아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봤다.

 
 
▽의료인 폭행 처벌기준 없는 의료법
의료법에는 의료기관 점거와 진료방해에 관한 처벌기준이 명시돼 있다.

의료법 제12조2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의료기관의 의료용 시설ㆍ기재ㆍ약품, 그 밖의 기물 등을 파괴ㆍ손상하거나 의료기관을 점거해 진료를 방해해서는 안 되며, 이를 교사하거나 방조하여서는 안 되며, 이를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료법 12조는 ‘의료기술 등에 대한 보호’로, 의료인에 대한 폭행이 아닌 의료기관에 대한 점거 및 진료 방해에 대한 처벌 기준임을 알 수 있다.

의료인에 대해 폭행이 이뤄졌을 경우 이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의료법 안에는 마련돼 있지 않은 셈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의료법에 의료인에 대한 폭행과 관련한 내용은 없다.”며, “의료인에 대한 폭행은 일반적인 형법을 따라야 한다. 형법이 있는 상황에서 (의료인에 대한 폭행만) 따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의료법에 명시된 의료기관 내 점거 및 진료방해에 대한 처벌기준
▲의료법에 명시된 의료기관 내 점거 및 진료방해에 대한 처벌기준
▽국회 복지위 계류안 산더미, 의료인 폭행 방지법 통과 여부 미지수
다행히 의료인 폭행 시 처벌에 대한 법적 근거가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국회 전 보건복지위 이학영 의원(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들에게 자행되는 폭행 및 협박행위를 엄격히 규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발의안을 통해 “최근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진료 중인 의료인을 폭행ㆍ협박하거나 의료기관에서 난동 및 기물을 파괴하거나 점거하는 행위가 증가하고 있다.”며, “특히, 의료행위 중인 의료인에게 가하는 폭행ㆍ협박 행위는 의료인에 대한 위해뿐만 아니라 환자의 생명권 또는 건강권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엄격히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나, 현행법에서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누구든지 의료행위 중인 의료인을 폭행ㆍ협박해서는 안 되며, 이를 위반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지난해 발의된 이 법안은 지난 4월에서야 법안 소위에 회부됐다.

지난 4월 12일 개최된 국회(임시회) 제1차 전체회의 복지위 회의에서 이 의원은 진영 복지부 장관에게 “의료행위 중인 의료인에 대한 폭행은 일선 의료기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더욱 흉포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큰 사고뿐이 아니라 발길질이나 주먹질, 뺨을 맞고 멱살을 잡히는 일, 폭언을 듣는 등의 사례는 수없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이학영 의원
▲민주당 이학영 의원
이 의원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 보호를 위해서는 의료인이 안전한 상황에서 적절한 진료를 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며, “(의료법을) 정비해 폭력, 협박 등의 각종 진료방해 행위를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환자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진영 장관은 알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복지위에 계류 중인 법안이 많아 의료인 폭행 방지법이 언제쯤 국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이학영 의원실 관계자는 “복지위가 워낙 법안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 순차적으로 했어도 계류 법안이 많아 법안 소위에 늦게 회부됐다.”고 설명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이 의원이 최근 복지위에서 정무위로 옮긴 것도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이 소위로 넘어가면 안건을 순서대로 상정하기도 하지만, 양당 간사 간에 협의를 통해 안건을 상정하기도 한다.”며, “안철수 의원이 복지위에 배정되면서 이 의원이 정무위로 이동돼 복지위가 소관 상임위가 아닌 상황에서 상정 안건 지정에 우리 의견을 내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의사협회 “의료인 폭행, 결국엔 환자에게 피해”
의료계는 의료인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송형곤 상근부회장 직무대리 겸 대변인은 “우리나라 정서상 의사는 정보의 편중성에 따라 항상 강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모든 부분에 있어 고객만족도 중요하지만, 인권 등 다른 부분도 지켜져야 하는데 아직까지 의료인에 대한 정서가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 대변인은 이런 정서가 의료인 폭행 방지법의 국회 통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대변인은 “국회 입법과정이라는 것은 약자를 위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의사가 약자라고 생각 안 해 의료인 폭행 방지법 등의 입법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사회 전반에 걸친 의사에 대한 인식 때문에 국회에서 정식 입법이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송 대변인은 의료인에 대한 폭행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의료사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 대변인은 “의료인에 대한 폭행은 환자와의 기본적 커뮤니케이션에서 발생할 수도 있고, 의료사고와도 연관될 수 있는데, 의료사고는 주관적이라 문제가 생겼을 때 의사의 과실로만 몰고 간다.”고 토로했다.

이어 송 대변인은 “의료사고는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는 국민적 이해가 부족하다.”며, “이런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인 폭행에 대한 경찰의 미온적 태도도 문제로 삼았다.

송 대변인은 “의료인이 폭행을 당해 경찰이 와도 이를 해결하는 경우가 별로 없고, 의료기관 내에서 환자나 환자 보호자가 난동을 부리고 기물을 파손해도 실제로 시정이나 징계가 가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며, “경찰이 오히려 의사에게 환자나 보호자가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며 참고 대충 넘어가라고 한다.”고 지적했다.

송 대변인은 의료인 폭행에 대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그 피해가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송 대변인은 “의료인에 대한 폭행 방지가 제대로 안 되면 의사는 위축ㆍ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문제를 일으킬 개연성이 있는 환자를 피하거나, 또는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한 가지만 해도 되는 검사를 여러 가지 하는 등 방책을 마련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환자로서 비용적인 손해를 포함해 여러 가지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며, “이제는 의료인 폭행에 대해 사회가 전체적으로 나아가는 방향에서 생각할 때다.”고 강조했다.

▽위기의 진료실, 탈출구는 어디에...
본지는 의료인에 대한 폭행과 관련한 기사를 준비하면서 의료인들로부터 상당수의 피해 사례를 접수했다.

피해 정도는 단순한 폭언부터 골절 및 중상에 이르기도 했다. 장소도 진료실부터 병원 로비, 응급실, 중환자실 등 의료기관 내 모든 곳에서 폭행이 이뤄지고 있었다.

수년 전 발생했던 피해에 대한 하소연도 있었으며, 지난달에 발생한 사고를 제보해 준 의료인도 있었다.

이처럼 의료인에 대한 폭행은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주소다.

그러나 취재 과정을 돌아볼 때 정부도, 국회도 의료인의 폭행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정책의 주체인 정부와 국회의 무관심 속에서 의료인은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환자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진료실을 무서워 하는 의사, 환자를 무서워 하는 의사가 되는 상황이 정상적인가.”며, “의료인에 대한 폭행은 진료실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탈출구가 과연 있을까.”라고 되묻던 제보자의 하소연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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