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상당수 의사는 진료실에 들어서면 덜컥 겁부터 난다. 이유는 환자나 환자 보호자로부터의 폭행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기 때문이다. 멱살과 욕설은 그나마 양호한 축에 속한다. 심지어 일부 의사들은 둔기에 맞고, 흉기에 찔려 생명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이르기도 한다. 실제 몇몇 의사는 환자의 흉기에 생명을 잃기도 했다. 최근 본지는 전공의 시절 중환자실에서 난동을 피우는 환자 보호자에게 맞은 적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해당 의료인은 현재 전북 무안보건소에서 공보의로 근무 중인 윤기성 씨. 그를 만나 전공의 시절 폭행을 당했던 당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어봤다.

 
 
손의식 기자: 안녕하세요. 귀한 제보를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폭행을 당했던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윤기성 씨: 지난 2008년 일산백병원에서 전공의로 있을 때였죠. 당시 수술을 마치고 나와 중환자실에 들어갔는데 상당히 시끄러운 분위기였어요. 보니까 환자의 친형으로 보이는 50대 후반의 보호자가 술에 취한 상태로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요.

손의식 기자: 중환자실에서 소란을 피우면 다른 환자에게도 피해가 갈 텐데요.

윤기성 씨: 맞아요. 그 보호자 때문에 다른 환자의 진료와 처치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중환자실은 보호자 면회시간이 따로 있고, 5~10분 정도 면회 후 나가야 하죠. 당시 병원에서 근무하던 청원경찰이 술 취한 보호자에게 나가달라고 했지만, 제지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가서 이러면 곤란하니 나가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손의식 기자: 환자 보호자가 순순히 따르던가요?

윤기성 씨: 아닙니다. 나가달라는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그 보호자가 돌아서면서 주먹으로 제 얼굴을 가격했어요. 청원경찰들이 달라붙어 말렸는데 나중에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코뼈가 골절된 상태였어요.

손의식 기자: 처음 겪는 폭행이었나요?

윤기성 씨: 그렇습니다. 근무하면서 폭행을 당하기는 처음이었어요.

손의식 기자: 충격이 크셨겠어요.

윤기성 씨: 육체의 고통은 물론이고, 심리적인 고통도 컸어요. 당시 중환자실에는 환자와 환자 보호자들을 비롯해 간호사들도 많았어요. 폭행을 당한 후 부은 얼굴로 진료 하러 다닐 때면 창피해서 얼굴을 들기가 어려웠어요.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면 내가 맞은 이야기를 하나보다라는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손의식 기자: 코뼈가 골절됐었다고 하셨는데 차라리 좀 쉬고 난 후 진료를 보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윤기성 씨: 당시 신경외과가 인력이 워낙 부족해 제가 진료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휴가를 따로 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죠. 부상을 당한 채로 진료는 물론 수술까지도 해야만 했어요.

손의식 기자: 듣고 보니 많이 힘드셨을 것 같네요. 사건 후 병원에서 재발방지책은 마련해줬나요?

윤기성 씨: 솔직히 저도 그 사건을 이슈화할 생각이 없긴 했지만, 병원 차원에서 특별히 재발방지책이나 별다른 조치는 없었어요. 오히려 교수님들이 나서서 합의를 종용했던 기억이 나네요.

손의식 기자: 전공의가 폭행을 당했는데 교수가 나서서 합의를 요구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윤기성 씨: 그 당시 저를 폭행했던 보호자의 친동생이 입원해 있다가 끝내 사망했어요. 그러자 교수님들은 환자가 돌아가셨는데, 고소하면 보호자가 힘들어할 것 같다며 제게 합의를 하라고 종용했었어요. 병원 이미지 때문에 그런 일로 사건이 커지고 병원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겠죠.

손의식 기자: 선생님 외에 주변 지인 중에 폭행을 경험한 의사가 또 있으신가요?

윤기성 씨: 제 친구 중에 정신과 전공의가 있는데 지난해 환자로부터 폭행을 심하게 당한 적이 있어요. 폭행한 환자는 20대 청년이었는데, 정신질환으로 군면제를 받기 위해 한 달 간 입원해 치료관찰 과정에 있었죠. 그 전공의에 따르면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달려들어 쉴 새없이 구타했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머리를 많이 다쳤었어요. 입원까지 할 정도였죠.

손의식 기자: 혹시 그 환자가 정신과 전공의를 폭행한 이유에 대해 알고 있으신가요?

윤기성 씨: 간단해요. 전공의가 자기 말을 안 들어준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평소에 앙심을 품고 있다가 작심하고 폭행을 가한 것이죠.

손의식 기자: 폭행 외에 폭언도 많이 경험하시나요?

윤기성 씨: 폭언은 자주 경험해요. 환자가 직접적으로 의사에게 폭언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대부분 환자 보호자들이 주로 하죠.

손의식 기자: 무슨 이유로 폭언하던가요?

윤기성 씨: 서비스의 질적인 문제로 폭언하는 경우가 많아요. 가장 많이 들었던 이유가 삼성이나 아산 등 다른 병원은 안 그러는데 왜 여기는 서비스가 이 정도냐 같은 것들이죠.

손의식 기자: 의사에게 폭언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나요?

윤기성 씨: 환자나 보호자의 지위가 높거나 재력가인 경우 다른 환자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죠. 특히, 오랜만에 온 보호자가 주를 이루죠. 간병하면서 환자 옆에 있던 보호자들은 그런 경우가 적은데, 오랜만에 환자를 찾은 보호자들은 환자에게 신경 쓰는 척 하면서 의료진에게 폭언하면서 마찰을 빚곤 합니다.

손의식 기자: 의료인에게 대한 폭행은 환자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지 않나요?

윤기성 씨: 맞습니다. 일단은 의료인은 폭행을 당한 시간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아요. 제 경우도 바로 수술을 끝내고 나온 상태라 수술한 환자를 케어해야 했던 상황에서 폭행이 벌어졌죠. 당시 시간이 자정 무렵이었는데, 폭행으로 인해 제가 진료를 못하게 될 경우 당장 대체할 인력도 없었어요. 다른 환자들에게는 위험한 상황이었죠.

손의식 기자: 의료인력이 부족한 지역일수록 그런 위험도 크겠네요.

윤기성 씨: 의료인에 대한 폭행은 주로 응급실에서 많이 발생해요. 그런데 가뜩이나 의료인이 부족한 지방이나 소도시의 응급실은 의료인이 폭행을 당해 의료공백이 생기면 커버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하죠. 이처럼 의료인에 대한 폭행은 의료인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에게도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손의식 기자: 의료인에 대한 폭행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윤기성 씨: 환자나 보호자들은 병원에 올 때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많아요. 때문에 감정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폭력이 쉽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죠. 중요한 것은 의료인에게 폭행을 가해도 처벌을 제대로 안 받는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관련된 처벌이나 제재가 제대로 안되다보니 이런 일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거에요. 제 경우에도 그랬고, 앞서 말씀드린 정신과 전공의 역시 입원치료까지 했는데도 특별한 처벌없이 넘어갔어요.

손의식 기자: 그런 부분에 대한 불만이 크시겠어요.

윤기성 씨: 폭행 당하면 왜 이런 일 발생했는지 조사하고 자료도 수집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아예 관심도 없어 보여요. 간호사나 일반 직원에게 폭행이 이뤄질 경우 노조 차원이나 원내 간호사협의회가 작동해 문제 제기 및 이의 제기를 하는데, 유독 의사만 보호장치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많이 부족해요. 결국, 같은 일이 재발할 수밖에 없죠.

손의식 기자: 지난해 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의료인 폭행방지법을 발의했습니다. 법이 시행되면 의료인에 대한 폭행이 줄어들까요?

윤기성 씨: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제가 근무하는 시설에도 응급실에 젊은 경찰이 배치됐어요. 예전에는 아파트 경비처럼 나이 드신 분이 근무했는데, 젊은 분으로 바뀌다 보니 주취자 등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되기는 해요. 하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한 요소는 남아 있어요. 강제한 법적 강제력이 있어야 폭행을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의료인 폭행 방지법이 시행돼 처벌조항 등을 진료실이나 응급실에 경고문처럼 게시하면 폭행을 예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손의식 기자: 바쁘신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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