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은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상당수 의사는 진료실에 들어서면 덜컥 겁부터 난다. 이유는 환자나 환자 보호자로부터의 폭행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기 때문이다. 멱살과 욕설은 그나마 양호한 축에 속한다. 심지어 일부 의사들은 둔기에 맞고, 흉기에 찔려 생명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이르기도 한다. 실제 몇몇 의사는 환자의 흉기에 생명을 잃기도 했다. 이처럼 의료인에 대한 폭행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 제도나 장치 마련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본지는 환자나 환자 보호자로부터 직접 폭행을 당한 실제 사례를 돌아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봤다.

 
 
언론 보도를 보자면 환자가 의료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의료인이 환자를 폭행하는 사건에 비해 의료인이 폭행을 당한 사건이 적기 때문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의료인이 당한 폭행 사례를 보면 흉기에 찔려 사망하거나, 중상에 이른 경우가 많았다.

지난 2008년 6월에는 지방의 대학병원 교수가 치료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에게 피살됐는가 하면, 같은해 11월에는 부산 모 병원 신장내과 의사가 치료과정에 불만에 품은 환자에게 흉기로 6차례나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2009년에는 경기도의 한 비뇨기과의원 원장이 치료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의 칼에 옆구리를 2차례 찔려 사망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에는 경남의 정신병원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환자를 상담하던 여의사가 환자로부터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정신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상담 도중 의사로부터 입원을 권유받자 미리 준비해온 과도로 의사의 등을 세 차례 찔러 중상을 입혔다.

▽끊이지 않는 의료인 폭행 사고…사망사건도 부지기수
이와 유사한 사건은 올해 초에도 발생했다.

▲지난 2월 환자로부터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은 대구 A 정신과의원 원장 김모 씨
▲지난 2월 환자로부터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은 대구 A 정신과의원 원장 김모 씨
지난 2월 7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수성동에 위치한 A 정신과의원 원장 김모 씨는 정신질환으로 의원을 찾은 환자 박모 씨로부터 복부를 흉기에 찔려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기도 했다. 찌른 이유는 원장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의료인에 대한 폭행은 생명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상의 사건들은 주로 치료과정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실제로 의료인에 대한 폭행을 살펴보면 폭행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들이 상당수다.

본지는 몇몇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경험담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일부 사례들을 제보자의 동의를 얻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례1. 치과 의뢰서 발급 거절하자 멱살 잡힌 채 끌려 다녀
지난 5월 7일, 의료급여 1종 민원인이 치과 공보의가 출장 중이자 의과에 진료를 접수한 후, “치과에 가야하니 의료급여의뢰서를 떼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저는 “치과 진료 관련은 내가 알 수 없으므로 치과의사에게 의뢰해야 한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이 민원인은 저에게 폭언과 함께 진료대기실 등에서 멱살을 잡고 끌고다니는 등의 폭력을 행사했고, 저는 병원 진단서 및 상해진단서상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보건소장의 태도입니다.

사건 당일 제게 폭행을 가했던 민원인은 보건소장에게 찾아가 “왜 의뢰서를 안떼주느냐. 불친절하다.”고 항의했고, 이에 보건소장은 출장 중이던 치과공보의를 보건소로 소환해 기타 치의학적 판단 과정은 생략한 채 급여의뢰서를 떼주게 했습니다.

이어 보건소장은 민원인에게 “공보의에 대해서는 시청 감사실에 민원을 제기하면 된다.”고 까지 친절히 안내했습니다.

이후 시청 감사과 및 인사과에서는 이러한 ‘불친절 민원 제기’를 바탕으로, 차량으로 10분 거리의 보건소까지 와서, 의과 공보의의 정시출근 및 정시퇴근 등을 감시 중입니다.

▲모 의료원 응급실 공보의 L씨가 본지에 제보한 영상 중 캡쳐 화면. 의사에게 폭행을 가한 만취 남성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제재를 당하고 있는 모습
▲모 의료원 응급실 공보의 L씨가 본지에 제보한 영상 중 캡쳐 화면. 의사에게 폭행을 가한 만취 남성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제재를 당하고 있는 모습
∇#사례2. 약 투여했는데도 안 맞았다고 우기며 의사에게 따귀
지난해 8월이었습니다. 휴일이라 밀려드는 환자를 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119를 타고 와서 자기는 공황장애가 있다고 디아제팜을 달라더군요.

이전 차트를 보니 세번째 방문이었는데, 앞의 두번은 그날 당직선생님들이 귀찮았던지 디아제팜을 투척했더군요.

그런데 술냄새도 심하게 나고, 딱 봐도 악성 민원인인지라, 반앰플만 투척후 N/S 500cc IV order후 다른 환자를 보고 있는데, 이 민원인이 자기는 디아제팜을 안 맞았으니 약을 달라고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보다못한 간호사들이 분명 약이 들어갔다고 앰플을 보여줬는데도 불구하고 난동은 이어졌습니다.

112에 신고하고 경찰 인계 후, 다른 환자를 보고 있었습니다.

1시간쯤 지났을까, 이 민원인이 갑자기 들어와서 뒷목을 잡아채더니 제 뺨을 때리더군요.

놀란 병원 직원이 그를 제지하고, 경찰을 다시 불렀습니다. 경찰이 와서 그에게 출소한지 얼마 안 돼서 구속된다고 하니, 자기에게 노모와 초등학교 2학년 딸이 있으니 한 번만 봐달라고 빌더군요.

나중에 CCTV를 보니 그 난동 이후 1시간을 더 ER침대에 누워 있더군요.

∇#사례3. 원하는 감기약 안 줬다고 교도소 재소자에게 폭행당해
저는 2010년 4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교도소에서 공보의로 재직했습니다.

2012년 5월경 재소자를 진료하려는데 이 재소자가 의자에 앉자마자 제 왼쪽뺨을 손으로 때렸습니다.

갑자기 날아든 손에 영문도 모른 채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린 이유를 들어보니 전에 처방했던 감기약에 불만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이 재소자는 저를 폭행한 후 “내가 달라는 약을 왜 안주고 다른 약을 주느냐. 당신이 의사가 맞기는 하느냐.”며 폭언까지 퍼부었습니다.

주위에서 말려서 말려서 사건이 일단락되기는 했습니다.

재소자의 경우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어 감정조절이 안 되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교도소 안에는 공보의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를 보면 겁부터 납니다”
이처럼 의료인들이 환자로부터 당하는 폭행을 살펴보면 전혀 폭행을 당할 이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당한 사례가 상당수다.

환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제보한 모 의사는 “진료실에서 폭행과 폭언을 경험한 뒤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를 보면 덜컥 겁부터 날 때가 많다.”며, “의사가 진료실과 환자를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을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이 의사는 “진료실 내에 CCTV 설치도 불법이라고 하고, 그렇다고 환자가 때린다고 같이 주먹을 휘두룰 수도 없는 상황이다.”며, “언제까지 이런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진료를 해야할 지 자신이 없어진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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