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을 단행했고 이후 외래환자는 병원 내에서 약을 지을 수 없게 됐다. 의약분업 후 1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의약분업을 둘러싼 갈등과 논란은 여전하다. 약국 행위료의 증가로 건강보험재정의 악화를 초래하고, 환자의 조제 선택권을 제한했다는 의료계의 주장에 약계는 의약분업은 의ㆍ약사 직능 간의 전문성을 인정해 의료기관과 약국이 독립적인 입장에서 상호협력과 견제를 통해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보건의료서비스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그렇다면 약을 짓는 환자들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22일 서울대병원과 연세 세브란스병원, 인근 약국을 방문해 환자들로부터 의약분업에 대한 생각을 직접 들어봤다.(본인의 요청에 따라 익명 및 모자이크 처리함)


22일 오전 서울대병원.
한동안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수많은 사람이 병원을 오가고 있었다.

그중에는 약을 짓기 위해 처방전을 들고 병원 밖으로 나서는 사람도 있었고, 약을 지은 후 약봉투를 들고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왜 약을 짓고 다시 힘들게 병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일까. 이런저런 궁금함에 병원 안으로 들어가 환자들에게 직접 말을 걸어봤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사람은 어린이병원에서 어린 딸과 함께 대기실에 앉아 있던 김승호 씨(41. 남. 가명).


김씨는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뒤, 10여분을 병원 밖으로 걸어 내려와 약을 짓고 다시 병원으로 올라오는 일을 5년째 반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차를 가지고 서울대병원을 오는데 주차를 해놓고 진료를 받은 뒤 약을 짓기 위해 병원 밖으로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해요.”라며, “약을 지은 후 다시 차를 가지러 한참을 걸어 올라와야 하죠. 아이를 병원에 혼자 내버려둘 수도 없어서 약국까지 아이를 데리고 왔다갔다하는데, 추운 날이나 눈ㆍ비라도 오는 날은 아이가 많이 힘들어해요. 몸도 성치 않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예전 생각도 나곤 해요.”라고 털어놨다.

그는 “약국이 편한 사람은 약국에서 짓고, 병원이 편한 사람은 병원에서 지으면 되죠. 환자가 자기가 편한 데서 약을 지을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어린이병원에서 만난 또 다른 보호자 한혜민 씨(34. 여. 가명). 한씨는 대기실에서 혼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한씨는 “남편과 아이는 약을 지으러 병원 밖 약국에 갔어요. 병원 셔틀버스를 타려면 다시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저는 여기 앉아서 기다리는 중이에요.”라며, “진료와 조제를 따로 하다 보니 시간도 더 들고, 고생도 더 하는 것 같아요.”라고 토로했다.

나이가 많은 환자일수록 의약분업의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또 다른 환자 정해순 씨(76. 여. 가명).

며느리와 함께 병원을 찾은 정씨는 “지난해 무릎이 안 좋아 수술을 받았는데, 서울대병원은 언덕에 있어서 올라오기 힘이 들어요.”라며, “병원에서 진료도 받고 약도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을 나와 인근 약국에서 약을 짓고 나오는 한 환자를 만났다.

눈에 안대를 하고 있던 그는 “최근에 눈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한쪽 눈으로만 보고 다니려니 많이 힘드네요.”라며, “무슨 이유로 병원에서 약을 짓지 못하게 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처럼 나이 들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불만이 많다.”고 설명했다.

다른 병원의 환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연세 세브란스병원을 가기 위해 전철에 올랐다. 전철 안에서 약봉투를 들고 있는 최봉식 씨(59. 남. 가명)를 만났다.


최씨는 “몇 년째 서울대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한 번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 집 근처 약국을 갔더니 약이 없어서 다시 병원 근처 약국에서 약을 지어간 적이 있어요.”라며, “만일 병원에서 약을 짓고 나왔다면 그런 불편이 없었겠지요.”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역시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병원을 찾고 있었다.


충북 제천에서 왔다는 한순이 씨(73. 여. 가명).

한씨는 “솔직히 세브란스병원에서 병원 밖 약국까지 노인네가 걷기는 쉽지 않아요. 나이 먹어봐요.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요.”라며, “약 짓고 아들 차를 타러 주차장으로 다시 올라와야 해요. 병원에서 원내순환버스를 운행하긴 하지만 정신이 없어서 잊고 못 탈 때도 많죠.”라고 말했다.

한씨는 “병원이 근처 사는 사람만 오는 곳도 아니고, 저처럼 지방에서도 올라오잖아요.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지리도 잘 모르고, 시간도 빠듯할 때가 많아요.”라며, “병원에서 진료받고 약도 받아가면 편할 것 같네요.”라고 덧붙였다.

다만, 한씨는 약국에서 약을 짓건 병원에서 약을 짓건 환자가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씨는 “제천에도 다니는 병원이 있는데, 거기서 진료를 받으면 그냥 집 근처 약국에서 지을 때도 잦아요. 동네 약국이 오래된 곳이라 약사 선생님과 친분도 있고요.”라며, “그런데 여기는 서울에 있는 큰 병원이다 보니, 처방전을 가지고 내려가 집 근처 약국에서 지으려면 약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어쩔 수 없이 이 근처에서 약을 짓고 내려가야 마음이 편해요. 대신 몸은 그만큼 힘들죠.”라고 털어놨다.

반면, 약국에서만 약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세브란스병원 대기실에서 만난 이미향 씨(62. 여. 가명)는 “대학병원에 오면 환자들이 워낙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해요. 거기다 약까지 짓게 한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릴 것 같아요.”라며, “하지만 처방전을 들고 병원 밖으로 나가 사람이 별로 없는 약국에서 약을 짓는다면 시간이 더 단축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이날 만난 환자 중 대부분은 현재 실시하고 있는 의약분업에 따른 불편함을 호소했다.

의약분업이 좋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지만, 상당수의 환자는 선택분업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생각은 어떨까?

복지부는 의약분업에 따른 환자불편은 인정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담당자 입장에서 볼 때, 의약분업을 진행하면서 일부 미진한 부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환자불편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의 불편과 관련된 부분은 의약분업 도입 당시에도 검토됐던 부분이다.”며, “의사의 처방을 받고 약사에게 조제를 받는 등 두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은 생길 수밖에 없는 불편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실시해 오던 의약분업의 모든 것을 파기하고 선택분업과 같이 의약분업 이전으로 가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 차원에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의약분업의 큰 틀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개선해 나가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헬스포커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