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해 병원에서 일정 기간 임상 수련을 하고 있는 의사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말한다. 그들이 주 당 100시간의 살인적 근무환경 속에서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 전공의들이 변화하고 있다. 전공의를 위협하는 PA를 고용한 병원장을 전공의협의회장이 고발하고, 응급실당직법 논란으로 파업이라는 배수진을 치며 수련환경 개선에 총력을 다했다. 이어 전공의 노조 설립 6년 만에 노조 활성화 기치를 내건 새로운 회장을 선출했고, 의료계 대정부 투쟁에서 전공의 역할이 확대되는 등 수련병원에서 의료계로 시선을 돌렸다. 전공의협의회의 주요 활동을 돌아보고, 향후 과제에 대해 알아봤다.

▽과거 대전협은...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ㆍ회장 경문배)는 전공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전공의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로 1998년 창립했다.

대전협은 전공의 문제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계 전반적인 문제에도 목소리를 냈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 대전협도 총파업에 동참하는 한편, 올바른 약사법 개정과 국민건강 수호를 위한 전공의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하며, 전공의 전국집회를 벌였고, 2001년에는 실패한 의약분업 규탄대회에 전공의 3,000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전공의 노조를 설립했으며, 2005년에는 약대 6년제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를 벌였다.

이후 대전협은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전공의 수련환경에 관한 자료집을 제작하는 등 자료 취합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피교육자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근로자 신분에 더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어느 직업군보다 열악한 근로환경에 처해 있어 외부로 목소리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병원장을 고발한 대전협 회장
병원장과 전공의는 같은 의료인이면서도 의료계 선후배 사이다. 또한, 고용주와 고용인,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다.

이러한 관계인 대전협 회장이 대학 병원장을 고발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김일호 대전협 15기 회장이 지난해 2월 상계백병원 김홍주 병원장을 비롯한 PA 등을 의료법 위반(무면허의료행위),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위반(부정의료업자),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대전협이 나서서 PA 문제를 공론화한 것이다.

대전협은 상계백병원이 웹사이트(메디게이트)에 올린 구인광고에서 PA가 비뇨기과 당직을 서고 있다는 사실과 PA가 응급실과 입원환자 업무를 하면서 의사의 감독 없이 독자적으로 오더와 처치를 맡고 있는 것이 확인돼 비뇨기과 PA를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상계백병원 김홍주 병원장과 PA는 무혐의 처분을 받고 사건이 종결됐다.

상계백병원의 사례가 무혐의 처분을 받고 사건이 종결되자, 대전협은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김일호 전 회장이 환자로 가장하고 직접 제주 H병원에 잠입해 PA가 불법의료행위를 하는 장면을 직접 포착하고 고발을 단행했다.

김일호 전 회장은 지난해 4월 H병원 병원장 외 진료보조인력 3인(응급실ㆍ일반외과ㆍ정형외과)을 의료법위반 보건 범죄단속에 관한 특별 조치법 위반, 사기 등의 혐의로 제주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또한, 같은 사안에 대한 진정민원을 복지부와 관할 도청 보건 위생과에 접수시켰다.

김일호 전 회장은 직접 H병원을 방문해 창상치료를 받았는데 김 전 회장과 동행한 대전협 직원이 착용한 카메라가 내장된 안경으로 찍은 영상에는 창상 치료를 해준 사람은 의사가 아닌 PA로서 환자를 직접 진료하고, 상처를 봉합해주며, 항생제 처방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 결과, 지난 9월 제주지방검찰청은 H병원 PA를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H병원장은 PA에게 의료행위를 하도록 지시한 사실에 대해 관련자가 모두 부인하는 등 인정할 증거가 없어 무협의 처분을 받았다.

▽파업 배수진으로 치고 응급실당직법 대응
지난해 5월 고년차 전공의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응급의료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이하
응당법)에서 응급의료기관 당직에 진료 과목별 전문의 또는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로 갈음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전협은 응당법에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로 갈음한다는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며, 성명서를 발표하고, 보건복지부에 대전협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복지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대전협은 파업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응당법에 대응했다.

레지던트 3년차 근무 강제 조항을 삭제하거나,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단체행동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한 것이다.

이와 함께, 김일호 전 회장을 비롯한 50여명의 전공의들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관련 공청회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응급실 강제 당직은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증가시키고, 의료사고 위험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하는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전공의들과 병원계의 반발에 복지부는 결국 한 발 물러섰다. 복지부가 3년 차 이상 전공의 응급실 당직근무 방침을 철회한 것이다.

▽다시 내 건 노조활성화
응당법 논란에서 촉발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창립 6년 만에 전공의 노조가 부활했다.

지난해 6월 말, ‘전공의의 미래를 위한 전국 전공의 결의대회’에서 노환규 의사협회장이 전공의 노조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대전협은 전공의 노조 활성화를 다시 내걸었다.

이를 위해 임시 대의원 총회를 통해 전공의 노조 TFT를 꾸리고, 당시 경문배 정책이사를 전공의 노조 TFT 위원장으로 내세웠다.

이후 경문배 정책이사가 전공의 노조 활성화를 기치로 내걸고, 대전협 회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전공의 노조 활성화를 위한 발걸음도 빨라졌다.

경 회장은 전공의 노조 포럼을 열고, 전공의 노조 알리기에 주력했으며, 전공의 노조 홍보물을 각 병원 의국에 배포하며 전공의 노조 가입을 독려했다.

전공의 노조를 통해 표준근로계약서 단체 계약을 추진중인 경문배 회장은 오는 26일 제1회 전공의 노조 총회를 열고, 전공의 노조의 공식적인 첫 발을 뗄 것이다.

▽대정부 투쟁에서의 역할 확대
대한의사협회가 수가결정구조 개선, 의정협의체 구성, 전공의 법적 근무시간 제도화, 병원신임평가 기관 신설(이관) 등을 복지부에 제시하며 대정부 투쟁을 벌이면서 전공의들의 역할도 확대됐다.

의사협회에서 복지부에 제시한 협상안 중 전공의 법적 근무시간 제도화, 병원신임평가기관 신설(이관) 등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문배 회장도 “전공의 수련과정, 수련환경 개선 등 대전협에서 추진하는 정책 방향과 의사협회의 투쟁 노선이 기본적으로 일치해 의사협회에서 말하는 대정부 투쟁의 당위성에 공감해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환규 회장의 단식 투쟁에 동참하는 의미로 대전협 집행부도 릴레이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전협은 대정부 투쟁 로드맵 중 주 40시간 근무는 병원과 교수들의 협조 하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일선 전공의들은 대정부 투쟁에 적극 찬성을 보내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부산시전공의협의회와 대구시전공의협의회는 대정부 투쟁을 독려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파업까지 동참할 뜻을 밝혔다.

일선 전공의들이 대정부 투쟁을 독려하고 나서자 대전협도 대정부 투쟁 지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며, 경문배 회장은 전공 노조 활성화와 대정부 투쟁을 독려하는 지역병원 순회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사협회와 복지부가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대정부 투쟁은 잠시 유보됐다. 이에 따라 전공의 역할 확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수련병원에서 의료계로 시선 돌리는 전공의
이처럼 전공의들이 ‘나’에서 ‘우리’로, 수련병원에서 의료계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기존에도 의료계 현안에 목소리를 냈던 전공의들은 성명서 발표에만 국한됐던 행동에서 벗어나 직접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응당법에 대응하기 위해 50여명의 전공의들이 모여 침묵시위를 하는가 하면, 응당법 결의대회에 350여명의 전공의들이 참석해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대정부 투쟁에서는 민초 전공의들이 나서 투쟁 참여 독려를 벌이는 등 수련환경 개선 등에 목소리를 내며 행동을 보였던 기존의 전공의들과 달리 의료 현안에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스마트폰 발달로 SNS가 활성화되면서 의료 현안에 관심을 가지는 전공의들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포괄수가제, 의료분쟁조정법 등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이 의료계를 옭죄고 있어 개원가의 입지가 점점 좁아져 예비 개원의들의 불안감이 가중되면서 전공의들의 수련환경 개선에서 의료 현안으로 시선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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