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방송에 출연하는 의사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의사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모습은 과거에도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게 없다. 하지만 최근 TV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과거와 다른 모습이어서 눈길을 끈다.

과거에는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아픈 사람이나 건강에 관심이 많은 시청자에게 정보를 주는 의료전문가 역할에 충실한 경우가 많았다.

방송사에서도 시청자에게 의학지식을 점잖게 전달하는 의사들을 선호했다. 그만큼 의사들의 역할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의료전문가 역할은 물론이거니와 한발 더 나아가 재치있는 입담을 곁들여 재미까지 선사하는 의사들이 등장하고 있다.

의사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은 발언을 하며 망가지는 경우도 종종 있으며, 아예 MC를 맡아 하나의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의사 방송인’도 등장했다.

최근 TV에서 활약하고 있는 의사들은 어떤 모습일까?

▽강남의사가 다 잘사는 건 아닙니다
과거 의사에게서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경제적 풍요로움이다. 강남에 살고, 고급 세단을 몰며, 고급 와인을 마시는 모습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이미지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TV에 출연한 한 강남의사가 일반인이라면 꿈에도 못 꿀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남재현 원장(내과 전문의ㆍ프렌닥터내과의원)은 지난 1월 3일 방송된 ‘SBS 자기야’에서 10억원 정도의 빚이 있다고 고백해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남 원장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하고, 군의관하고, 레지던트하고, 강사하고, 석사 3년, 박사 3년, 의료 경영학 MBA를 수료하고, 개인 병원을 개업 하려고 하니 내 나이가 40세였다.”며, “10년이 됐지만 10억원 정도의 빚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재건축중이던 집을 팔고 부모님 집에서 더부살이하면서 마련한 3억원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며, “신용대출로 3억원, 마이너스 통장 2억원, 정부 정책 지원금 5억원까지 받아 병원을 개업했다.”고 말했다.

MC 김용만이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개업하겠느냐.”고 묻자, 남 원장은 “절대 개업하지 않겠다.”고 답해 청중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남 원장의 입담이 통했는지 이날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전국 기준 8.9%(AGB닐슨)를 기록했다. 이는 전 주 방송보다 2.1%P 상승한 시청률이다.

▽다이어트 성공한 의사가 전하는 비만 탈출법
지난해 11월 23일 방송된 MBC ‘좋은 아침’에는 특이한 이력의 의사가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주제는 ‘다이어트 반복 실패 왜? 전무가 빅3의 만장일치 해법은?’이었고, 자신이 직접 다이어트에 성공한 의사가 출연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이금정 원장은 104kg의 중증고도비만환자였다가 다이어트를 시도해 변신에 성공했다. 그는 몸무게를 무려 25kg나 빼 79kg의 몸짱으로 변신했다.

이날 방송에서 이 원장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할 것’, ‘좋아하는 음식 중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을 것’, ‘운동을 꾸준히 하되 과하게 하지 않을 것’ 등을 다이어트 시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꼽았다.

그는 수술을 통한 지방 흡입은 내장 비만 제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충고하는 반면, 다이어트를 통한 지방 분해는 내장 지방이 먼저 줄어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비타민과 무기질 섭취없이 진행한 다이어트는 몸 속의 칼슘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므로, 다이어트를 시 칼슘을 보충하고 충분히 햇볕을 쬐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날 보조참가자들과 방청객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비만 탈출에 직접 성공한 의사가 비만 극복 방법을 설명하니 방청객이 고개를 끄덕이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난 이런 환자 때문에 괴로웠다
JTBC ‘닥터의 승부’는 지난 2011년 12월 16일 첫 방송을 시작해 최근 방송 1주년을 맞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각기 다른 16명의 전문의가 출연해 애매한 의학상식에 대해 각기 다른 접근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16명의 전문의에게 ‘친구에게 반신욕을 추천할 지 여부’를 묻자 이들 중 9명은 반신욕을 추천한다고 답한 반면, 7명은 추천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또, ‘탄산음료는 소화에 도움이 될까’에 대해서도 4명의 전문의는 도움이 된다고 답한 반면, 12명의 전문의는 도움 안된다에 손을 들었다.

닥터의 승부는 ‘닥터의 톡’이라는 의사들의 뒷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를 선보였다.

첫화에서는 “나는 ( ? ) 하는 환자 때문에 괴롭다.”는 내용으로 전문의들의 고충을 들어 봤다.

피부과 전문의는 “취조하듯 따져 묻는 환자 때문에 괴롭다.”고 했고, 응급의학과 여전문의는 “여자는 의사로 생각하지 않는 환자 때문에 괴롭다.”고 말했다.

또, 비뇨기과 전문의는 “솔직하지 못한 환자 때문에 괴롭다.”고 답해 웃음을 줬다.

이 외에도, 16인의 전문의가 각 과의 관점에서 미남ㆍ미녀를 뽑는 ‘닥터의 선택’ 코너도 선보였다.

첫회에서는 최고 인기를 구가중인 걸그룹 소녀시대가 대상이었다. 전문의들은 멤버 중 각 과의 기준에 따라 미인을 선택했고, 그 결과 결승에서 윤아를 따돌린 유리가 전문의가 선택한 미녀로 낙점됐다.

▽명품 복근 만들려면 등 운동하라고?
케이블방송 TV조선은 지난해 10월 23일부터 홍혜걸의 ‘닥터콘서트’를 방영중이다.

TV조선은 이 프로에 대해 더 이상 수동적인 환자가 아닌, 똑똑한 의료 소비자가 되는 방법을 의사들이 제시해주는 파격적인 메디컬 토크쇼라고 소개한다. 진행은 국내 1호 의학전문기자 홍혜걸 씨가 맡았다.

첫 회 주제는 다이어트였다. 스타들의 명품 복근을 보고 자극받아 따라하는 복근 운동. 무턱대고 가장 많이 선택하는 복근 운동은 윗몸일으키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윗몸일으키기는 명품 복근을 만드는 지름길일까?

닥터콘서트는 아니라고 말한다. 윗몸일으키기는 허리 디스크 유발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위험부담이 큰데다 복근은 대표적인 작은 근육 부위이기 때문에 큰 근육 부위인 허벅지, 가슴, 등 운동을 해야 뱃살을 빼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살 빼는데 집중하다 보면 다이어트 과정이 스트레스가 되는데, 스트레스 호르몬은 내장지방을 빼는데 큰 장애가 되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다이어트를 하는 순간 가장 큰 스트레스 유발요인인 음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배고픈 순간을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조금씩 나눠서 먹으라고 조언했다.

닥터콘서트는 2화 탈모 3화 피부, 4화 디스크, 5화 갱년기 증후군, 6화 남성 갱년기 등 지난 8일까지 12화를 방송했다.

시청자들은 의학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닥터콘서트에 신선하면서도 실생활에 도움이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의사들은 TV 속 동료의사 어떻게 볼까
의사들의 TV 속 모습에 대해 동료의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의사들은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지만 확실한 건 진료 경험이 적은 의사가 방송에 자주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한 개원의는 “A 씨는 가끔 실정 모르는 소리를 많이 하는데, 의료 현장에 들어와 본적이 없으니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A 씨는 의사면허는 있지만 환자진료 경험이 거의 없어서 의사라기보다 방송인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린다.”고 꼬집었다.

다른 개원의도 “일선 진료현장 경험이 없는 분들이 섣불리 말하면 현장에 있는 의사들이 곤란해 진다.”고 말했다.

이는 진료 경험이 적은 의사가 단지 방송에 자주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대표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모습이 불쾌해서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를 의사로 믿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의사의 전문가로서의 지위가 하락할 거라는 의견도 있다.

한 개원의는 “요즘 의사들이 나오는 방송을 보면 ‘의사가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며, “전문 의학지식을 이야기하지 않을 거면 왜 가운을 걸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는 환자를 치료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TV에서 가볍게 비쳐지는 의사의 모습을 환자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걱정이 앞선다는 것이다.

또, 진료 경험이 많더라도 말주변이 없거나 소신없는 의사의 방송 출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방송출연이야말로 의사들이 처해 있는 의료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가정의학과 전문의 여에스더 씨는 지난해 11월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에 출연해 의사생활 10년 만에 병원을 접은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병원을 접은 이유에 대해 “병원운영이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고 털어놨다.

특히 “하루 종일 환자를 보는 것보다 강연과 ‘자기야’ 방송 출연 수입이 더 많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당시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개원의들은 “동료의식이 느껴진다.”, “저수가 때문이라고 발언해 줬으면 좋겠다.”, “의사들이 처한 처지를 자꾸 노출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젠 당당한 주연…상업성은 주의해야
과거 TV 속 의사들이 시청자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전문가, 즉 시청자와는 다른 존재였다면, 요즘에는 시청자들이 동질감을 느낄 만큼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한 의사는 중등도비만이었다가 다이어트를 감행해 25kg을 줄이는데 성공한 후,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일반인에게 다이어트를 권하고, 다른 의사는 자신이 진 빚이 10억원이라며 의사는 부자일 것이라는 환상을 깨라고 말한다.

또, 닥터의 승부와 닥터콘서트에서의 의사들은 각각 자기 분야의 전문 지식을 뽐내면서도 때론 다른 전문의들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또, MC들의 익살맞은 멘트를 곧잘 맞받아치기도 한다.

패널로 나온 의사들이 적당히 망가질 줄 아는 점도 하나의 흐름이다.

닥터의 승부에 출연한 한 비뇨기과 전문의는 개그맨 패널을 향해 “아마도 비뇨기과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없는 이유는 제목을 짓기가 어려워서 인 것 같다.”고 말을 먼저 건넸다.

그러자 그 말을 받은 개그맨 패널은 “고래의 꿈이 적당할 듯 하다.”고 답해 청중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이런 모습들이 반복적으로 비쳐지면서 더 이상 의사들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이 상업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지난해 아침방송에 출연한 모 원장이 운영하는 병원 블로그를 확인해 보니 그의 방송 출연 이력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실제로 닥터콘서트를 진행하는 홍혜걸 기자는 프로그램 시작 부분에서 “닥터콘서트는 최고의 의사를 초대합니다. 상업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정직한 지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TV에 출연하는 의사는 시청자에게 개인이 아니라 의사 전체의 이미지를 심어준다. 상업성이야말로 의사와 환자의 신뢰 관계에 나쁜 영향을 끼치므로 주의해야 한다.

의사들이 강조하듯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뢰 관계가 형성돼야 환자는 의사를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길 수 있고, 의사는 자신을 믿어주는 환자를 위해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의사들의 다양한 방송 출연과 더 업그레이드된 과감한 입담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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