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의사대표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향후 대정부 투쟁 로드맵을 확정하려던 계획이 일단 유보됐다. 지난 7일 개최한 전국의사대표자 연석회의에서 대표자 다수가 대정부 투쟁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대표자들은 명분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환규 회장은 공식 투쟁선포 연기를 선언하고 회원들의 자발적인 투쟁을 요청했다.

▽대정부투쟁 설문 결과 공개된 대표자회의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는 지난 7일 의협회관에서 전국의사대표자 연석회의를 개최하고 향후 투쟁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는 노환규 회장의 개회인사와 윤창겸 총무이사(상근부회장 대우)의 의료계 현황보고, 대회원 설문조사 결과발표, 향후 투쟁방향 및 실천방향 논의, 향후 대정부 투쟁 로드맵 결정 순으로 진행됐다.

노환규 회장은 인사말에서 “모종의 결론을 내려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지도자분들이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윤창겸 총무이사는 의료계 현황설명에서 “의약분업 실시 당시 초동 대응 실패로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났다.”고 지적해, 노 회장이 언급한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부분에 힘을 실었다.

윤 총무이사는 “만성질환관리제 시행거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도 개선 요구, 의료분쟁조정 등에 관한 법률 시행 거부, 포괄수가제 강제시행 반대 등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에 맞서왔지만 복지부는 보복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의료현실을 설명했다.

그는 복지부의 보복 정책으로 의대정원 확대 추진, 전문의 자격시험 주체 변경 추진, 응당법 개선 TF 의사협회 배제 등을 예로 들며, “복지부가 의사협회 고립정책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송형곤 공보이사 겸 대변인은 대회원 설문조사 결과설명에서 “짧은 기간에 실시한 긴급설문이었지만 8,079명의 회원이 참여했다.”고 언급하고, “회원 대다수가 정부의 의료정책이 환자치료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관치의료제도라고 생각하며,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이 부당한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5,142명이 ‘매우 그렇다’, 2,437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전체 응답자(8,079명) 열명 중 아홉 명 이상(7,579명/93.81%)이 건보공단이 부당한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고 답한 것이다.

또, ‘정부의 정책이 일방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도 매우 그렇다(6,146명)와 그렇다(1,724명)라고 응답한 회원이 7,870명(97.41%)에 이르렀다.

노환규 회장은 “일반회원 대다수가 정부 정책에 매우 불만이라고 답했지만, 환자 진료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도가니법의 경우 다섯명 중에 한명 꼴로 모르고 있었고, 2013년도 수가계약 시 약사회의 부대조건인 저가약 대체조제도 회원의 절반 가량이 모르고 있었다.”고 설문결과를 부연 설명했다.

이어진 향후 투쟁방향 논의부터는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의사협회는 8일 오전 11시 대정부 투쟁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노환규 회장 “투쟁 선포 연기, 자발적 참여 당부”
노환규 회장은 8일 오전 의사커뮤니티와 SNS 등에 연석회의 결과를 설명했다.

노환규 회장은 “긴급 설문에서 8,000명이 넘는 회원분들이 협회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답했지만 의료계 대표자분들의 의견은 달랐다.”고 운을 뗐다.

노 회장은 “어제 의료계 대표자 연석회의에 16개 시도회장님 및 주요 임원, 시도의장님, 감사님, 각과개원의사회장님 등 전국에서 많은 대표자분들이 참석했는데, 참석자 중 다수가 회원들이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대정부투쟁을 반대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또, “서울시 부회장님은 ‘25개 서울시 구의사회를 대표하는 구회장님 25명 중 22명이 대정부투쟁을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며, ‘반드시 의협회장을 설득해 (대정부 투쟁을) 포기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말씀도 했다.”고 언급했다.

노 회장은 “투쟁을 반대하시는 분들 중에는 투쟁의 실패를 우려하여 반대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대표로서 투쟁을 이끌어가야 하는 자리가 부담스러웠던 이유로 반대하신 분들도 계셨다.”면서 “2000년 의권투쟁은 우리 의사들에게 소중한 경험적 자산으로 남겨진 부분도 있지만, 패배의식으로 남겨진 부분도 적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노 회장은 “협회의 공식 투쟁 선포는 연기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정부 투쟁 로드맵을 공개하며 “이제 회원들께서 자발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사협회, 대정부 투쟁 로드맵 내용은?
의사협회는 수가결정구조 개선과 포괄수가제도 개선, 성분명 처방과 총액계약제 포기 약속, 선진국형 진료제도 추진을 요구하고,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단계적으로 투쟁 수위를 높일 계획이다.

노 회장이 공개한 로드맵에 따르면 대정부 투쟁은 4단계로 기획됐다.

우선 1단계로 11월 12일부터 개원의 40시간 근무(9시~6시 근무, 토 휴무), 전공의 40시간 근무, 의협회장 단식(일주일 한정)이 진행된다.

11월 26일부터는 개원의 주중 1일 휴무, 전공의 40시간 근무 및 주중 1일 휴무, 포괄수가 해당 질환 비응급수술 연기가 추가된다.

12월 10일부터는 개원의 주중 휴무일을 하루 더 추가해 2일 휴무로 강도를 높인다.

대선 이틀 전인 12월 17일에는 마지막 단계로 개원의 전면 휴폐업에 들어가고, 전공의는 주중 2일 휴무를 실시한다. 이때부터 교수와 봉직의도 대정부 투쟁에 참여한다.

로드맵을 보면 개원의와 전공의의 주 40시간 근무로 투쟁이 시작되며, 투쟁 시작을 알리고, 회원들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노환규 회장이 일주일 간 단식에 들어간다.

교수와 봉직의의 참여는 개원의 전면 휴폐업이 시작되는 12월 17일로 기획됐다. 개원의가 앞장서고, 교수와 봉직의가 따라가는 모양새이다.

이는 의사협회가 개원의와 봉직의의 근무 형태와 조직의 특성을 배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투쟁이 로드맵에 따라 이뤄질 경우 교수와 봉직의가 이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정부 투쟁 실현 가능성 있나
당장 전국대표자 연석회의의 결과가 전해지자 의사 회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대회원 설문조사 결과, 대다수 회원이 투쟁에 나서겠다는 집행부의 결정을 믿고 따른다고 답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자들이 투쟁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시선은 지역 및 직역 대표자를 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역의사회와 직역의사회의 무용론도 제기하고 있다.

또, 대정부 투쟁을 결정하는 중요한 설문조사 였음에도 불구하고, 응답자가 기대에 못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문조사 참여도가 10%에도 못미치는 상황에서 투쟁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적인 분석도 있다. 이번 대표자회의 결과가 더 많은 회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집행부가 투쟁에 나서기 위해서는 더 많은 회원의 관심이 필요하다. 지역의사회와 직역의사회에서도 투쟁 열기가 확산돼야 한다.

노환규 회장이 서울시의사회 구의사회장단과 만남을 가진 것도, 전국대표자 회의를 개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환규 회장도 “지역의사회와 직역의사회의 대표분들이 대정부투쟁에 대해 회원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시다고 지역의사회와 직역의사회의 무용론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면서 “우리는 패배주의에 젖은 의식과 회원 위에 군림하려는 일부 소수의 대표자분들의 낡은 생각을 경계하되 의료계를 위해 애쓰시는 전체 대표자분들을 폄하하는 우를 저질러서는 절대 안된다.”고 요청했다.

노 회장은 “여러분이 할 일은 대정부투쟁을 반대한 대표자 분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대표자분 들에게 회원님들의 의지를 보여주고 설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다수 회원들은 대선 전에 어떻게든 대정부 투쟁이 시작돼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해 왔다. 노환규 회장이 로드맵을 공개하고 회원들의 참여를 호소한 이상 주사위는 던져졌다. 회원들이 대표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투쟁에 나설 지 의료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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