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을 조장했다는 혐의로 고발된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9일 마포구 소재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에 출석했다.

경찰조사를 받기 전 카메라 앞에 선 노환규 전 회장은 “10년 전 의협회장에서 물러났지만 현재 대한민국 의료현장에 발생하고 있는 혼란스런 상황에 대해서 의료계 종사자 중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심경을 느낀다. 현재 사태로 인해 불편과 피해를 겪고 있는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라고 운을 뗐다.

노 전 회장은 “대한민국 의료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들을 가장 손쉽고 빠르게 만날 수 있는 나라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진료받을 수 있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적으로는 기형적인 구조를 안고 있다. 이를 조금 더 일찍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후배 의사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거 같아 선배 의사로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노 전 회장은 “현재 많은 국민이 진료현장을 떠난 의사들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있다.”라며, “소수 의사가 나쁜 마음을 먹을 순 있어도 대다수 의사가 나쁜 마음을 먹기는 어렵다.”라고 단언했다.

노 전 회장은 “의사들이 정부의 대규모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이 정책이 대한민국 의료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라면서, “의사들이 느끼는 절박함이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국민이 현 사태를 밥그릇 지키기로 오해하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노 전 회장은 의대정원 증원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노 전 회장은 “대한민국의 의사 수는 36개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OECD 평균 증가 수치의 2배가 넘고, 의료접근성도 세계 1위이고, 의사 밀도도 세번째로 높다.”라며, “정부는 이런 정보는 국민에게 전달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 전 회장은 “정부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 의대 정원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필수의료에 종사했던 많은 의사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현장을 떠나고 있다.”라며,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정부 정책이 필수의료 멸절을 초래했다. 결국 정부 정책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국민이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노 전 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선배 의사로서 전공의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SNS에 표현한 것 외에 전공의 단체나 개인, 의협과 접촉한 사실이 없고 소통한 사실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노 전 회장은 “지난 2020년에도 활발히 글을 올렸다. 오늘처럼 경찰에 고발되고, 면허취소 협박을 받은 적이 없다.”라며, “개인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처하게 됐지만 이번 의료 대란 사태로 인해서 전국에 얼마나 많은 환자와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나. 10만명이 넘는 현직 의사가 극심한 상실감, 자괴감, 허탈감에 빠져 있다. 그 크기에 비하면 나 하나가 겪는 일은 가벼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노 전 회장은 “보건복지부가 단순한 의사표명을 범죄로 간주해서 고발했고, 출장 후 돌아온 공항에서 압수수색을 당했다. 의사 면허 취소에 대한 협박을 받았다. 힘없는 일개 시민인 내가 국가 권력에 저항할 힘이 없다. 경찰 조사에서 내 입장을 성실히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SNS에 개인 사견을 올린 것이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며, “독재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의협 전ᆞ현직 집행부에 대한 조사는 이번이 두번째다.

경찰은 지난 6일 주수호 의협 비대위 홍보위원장을 불러 10시간 가량 조사했다.

김택우 비대위원장과 박명하 조직위원장은 오는 12일 경찰 조사가 예정돼 있다.

의협 인사 경찰 소환조사에 대해 의료계는 윤석열 정부가 총선용 카드로 의대정원 증원을 활용하면서 일어난 의료대란을 의사들에게 뒤집어 씌우고 있다며 공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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