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센터 인요한 소장을 보면 두번 놀란다. 이름과는 다소 매치가 안 되는 190cm의 육중한 몸에 파란 눈을 한 ‘외국인’이란 사실에 한번, 입을 열면 흘러나오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또 한번. 1991년부터 외국인진료센터를 지켜온 인요한 소장의 한국과의 인연은 10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5년 진외증조부(친할머니의 아버지)인 유진 벨 목사가 한국에 선교활동을 하러 오며 인 소장까지 한국사랑을 하게된 것. 얼마전 한국 국적 취득신청까지 마친 인 소장을 연대의대 80학번 동문인 전국의사총연합 노환규 대표가 만나 대화를 나눴다.

노환규 대표: 안녕하세요. 공식적인 자리니까 존댓말로 진행하도록 할게요. 개인적인 질문부터 먼저 하자면, 언제 철이 들었나요?

인요한 소장
인요한 소장
인요한 소장: 한국말을 잘한다고들 하지만 연대의대를 다닐때 항상 2% 부족하고, 조금 못 알아들어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한국의 의대생들이 매우 우수해서 따라가느라 힘들어 ‘아래 하’급에 머물렀었죠. 그런데 미국에 가서 수련의 평가시험을 봤는데 1등을 했습니다.

노환규 대표: 아 대단하시네요.

인요한 소장: 한국에서 꼴등하다시피 한 사람이 미국가서 1등을 하니까 감격스러워 화장실에 가서 울었어요. 그리고 다소 수직적 교육에 위축도 됐었지만, 이론을 잘 가르쳐 준 한국과 세브란스에 참 고마웠습니다. 미국 졸업생들에게 차별을 많이 당했었는데 그 순간부터 자신감이 생기고 철이 들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또, 교만할 필요도 없지만 지나친 겸손을 떨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노환규 대표: 4대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 자녀들에게도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그 역할을 물려줄 생각이세요?

인요한 소장: 저희 조상들은 1800년도 말 주로 호남지역에서 선교사로 일하며 학교, 병원, 교회에 많이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저는 조금 달라요. 내가 한국 민족에게 도움을 준 것보다 내 자신이 도움을 더 많이 받았어요. 특혜를 받아 1980년도 연대의대에 정원외 입학을 했고, 당시 미국에서 수련 마치고 제일 젊은 부서장으로 왔기 때문에 조금 시각이 달라요. 준 것보다 받은것이 많기 때문에 갚아야 겠다는 생각에 앰뷸런스 디자인을 개발했고, 전국에 5,000대 가까이 보급됐죠. 97년도부터 북한에서 하는 결핵퇴치사업도 그 일환이구요.

노환규 대표: 자녀 분들은 한국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나요?

인요한 소장: 한국에서 태어난 저희 할머니와 아버지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고, 전라도 순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닌 저 역시 한국에 애착이 강하죠. 제 와이프는 한국인이고, 자녀가 2녀 1남 있는데 처음에는 딸들이 상처받을까봐 한국학교에 안 보냈어요. 그런데 두 딸은 미국에서 수련받을때 뉴욕에서 태어났고, 막둥이 아들은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사실 큰 딸은 꼭 한국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요. 선대의 애틋한 한국사랑이 전달이 잘 안되는 것 같아 나도 고민중이에요.

노환규 대표
노환규 대표
노환규 대표: 인 소장님은 언론에 기고도 많이 하시고, 인터뷰에도 많이 나오는데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의사 수가 적은데, 인 소장님이 가진 그런 영향력을 좀 더 확대하기 위해서나 지금 추구하는 바의 변화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현실정치에 참여한다던지 하는 계획은 없습니까?

인요한 소장: 지금 신분이 교수이기 때문에 현재 어디서 와달라,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아도 우선은 좀 떨어져 있는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전라도 순천이 고향이지만 그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좀 당선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구요. 그런 식으로 획기적인 패러다임이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메디컬 투어리즘때도 대통령에게 “한국 의료보험제도의 성공 이유는 절대적으로 의사들의 희생에 의한 것이지, 제도가 좋은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과감하게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국 의사들은 일하는데 있어서 슈퍼맨인데, 이런 부분은 개선돼야 합니다. 의사도 사람입니다.

노환규 대표: 그동안 영리법인에 대해 찬성 의견을 내 온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죠.

인요한 소장: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나는 영리법인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사업을 하면 잘 하는 부분도 있지만, 소외된 계층 위주로 의료보험은 가고 서비스를 더 제공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영리법인을) 도입해야 합니다. 영리법인들이 투자를 하면 소외된 계층이 더 소외를 받는게 절대 아닙니다. 밥상에서 먹을것도 더 떨어지고, 병원이 발전하면 더 봉사도 할 수 있습니다.

노환규 대표: 그렇죠.

인요한 소장; 내가 만들어낸 말인데, 의사의 기본 개념은 ‘로빈후드 정신’입니다. 부자들에게 건물 좀 세워달라, 기부 좀 해달라고 하지만 그걸로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습니까. 모든 의사의 마음에는 봉사가 기본으로 들어있는데, 의사가 영리병원을 한다고 하니 유교철학적으로 ‘아픈 사람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것은 나쁘다’고 매도합니다. 한국은 외국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기술 축적이 돼 있는만큼 반드시 기업화를 하고, 봉사는 봉사대로 하면 됩니다. 이걸 구별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리법인 반대하는 사람과 만나서 토론이라도 해보고 싶어요.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노환규 대표: 이런 논란은 아마도 의료를 산업으로 볼 것이냐, 복지로 볼 것이냐, 두 가지의 측면이 다 있는 부분인데 어느 한쪽만 집중해 편중되게 조명하다 보니 여러 부작용이 생기는것 같습니다.

인요한 소장: 괜히 외국을 두려워하는데, 한류를 봐요. 처음에 일본문화 개방할때 성문화가 무분별하게 들어올까봐 그렇게 고민했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터키 여행 중 슈퍼에 가서 콜라를 샀는데 아주머니가 한국 사극 보느라 안나옵디다. 이란, 남미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봅니다. 쓸데없는 두려움과 위축된 모습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크게 보면 교육과 의료는 개방이 더 필요해요. 개방을 하면 더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난 자신합니다. 겁쟁이처럼 피할 필요가 없어요.

노환규 대표: 자, 그럼 화제를 전환해서 생긴것도 다르고, 특별한 대우를 받아 좋은 점도 있겠지만 많이 알려진 사람으로써 불편한 점도 많을텐데, 한국에서 인요한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인요한 소장: 언론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프라이버시 문제는 손해를 본 게 사실이죠.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해봤구요. 하지만 좋은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관공서에서 빨리 협조를 안해주는 경우 알아보는 사람도 있으면 일 처리가 빨라지기도 하거든요. 그런점은 좋긴 하지만 중독처럼 내가 굉장하구나 하는 착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좀 위험합니다. 외국인으로서 안 좋은 점들은 많이 없어졌지만 가끔 밤 늦은 시각 취객들이 심한 욕을 하거나, 미국은 왜 그 모양이냐고 무작정 욕할 때 “우리 집안은 4대 전에 여기 왔고.. 블라블라” 어떻게 다 설명하겠습니까. 한국인들이 좀 버려야 할 나쁜 점은 타협과 단합을 잘 못하는 배타적인 모습인 것 같습니다.

노환규 대표: 이제 나이가 50대 초반인데,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으로 계속 나름대로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 헌신할 생각이신가요?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계획인가요.

인요한 소장: 의료보험 제도가 의사가 진정한 의학을 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의사가 변형된 의학인 피부관리나 비만관리를 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면서도 먹고살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좀 만나고…

노환규 대표: 맞습니다.

인요한 소장: 이건 경솔한 말이 될 수도 있지만, 한국인 의사가 말하면 잘 안 듣는데, 제가 말하면 분명히 더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우스갯소리로 그랬습니다. “껍데기가 이렇게 생겼으니, 메디컬 투어리즘에 있어서는 한국 의학이 좋다고 하는 얘기를 한국인 100명이 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게 낫다.”고요.

노환규: 분명히 그런 부분이 있죠.

인요한 소장: 한국 내에서도 개혁, 개선이 필요할 때 내가 불합리하다고 하면 더 먹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을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어디까지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환자 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에 의사라는 직업을 놓고 싶지는 않구요, 될 수 있으면 의사라는 본분을 지키면서 다양한 사회의 리더층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모순되고 잘못됐을 때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비판만 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닌, 한국을 사랑하고 아끼며 고마워하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노환규 대표: 이번에 한국 국적을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인요한 소장: 사실은 1980년 의예과에 입학할 때 귀찮은 문제도 많고 해서 귀화를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진주만 폭격도 맞고, 애국심이 불타는 1세대입니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만 되면 성조기 올리고 난리구요, 부시도 매우 좋아하는 정통 보수파입니다. 내가 귀화하면 어머니가 섭섭해하실 것 같아 차마 못했어요. 돌이켜보면 대북활동을 하는데 있어서도 귀화를 하지 않았던 것이 잘한 일 같아요.

노환규 대표: 아, 원래 귀화를 하려고 하셨군요.

인요한 소장: 그런데 지난해 1월 1일부로 좋은 법이 통과됐죠. 외국에 있는 한국인들이 국가에 와서 기여하고 싶은데 좀 편하게 해주자는 의미에서 몇가지 조건이 되면 이중국적을 허용해주는 법인데요. 저도 1년을 기다리다가 12월 말에 준비 다 해서 이번달 초에 신청했습니다.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렙니다. 어머니 연세가 87세이신데, 저보다 오래살 수도 있습니다.(웃음) 어머니 살아계신 동안에 속상하게도 안하고 내가 원하는 국적을 드디어 취득할 수 있게 된 부분을 참 뿌듯하게 생각해요.

노환규 대표: 당연히 국가가 해줘야 할 일이고, 우리나라에 더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요한 소장: 감사합니다.

노환규 대표: 예전에는 의사들이 의료제도에 별 관심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 없었지만, 지금은 제도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의사들이 많이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그것을 자꾸 깨우치는 역할을 전의총이라는 단체가 하고 있고요. 저도 이 일을 하면서 그동안 외면했던 정치라는게 정말 중요하구나, 우리가 관심이 없는 동안 우리를 완전히 컨트롤하는 제도들이 정치인에 의해 생기니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인요한 소장: 미국의 의료협회에서는 워싱턴에 가 있는 로비스트가 1,000단위가 넘었다고 합니다. 한국 의사들은 사실 그동안 너무 점잖았죠. 한국이라는 곳이 우는 아기 과자 하나 더 주는 분위기가 있는데, 2000년도 의료파업 할 때도 마지못해 파업했습니다. 우리 의사들 왜 이렇게 바보같나요. 적극적으로 제도에 대해 소리를 내야 합니다.

노환규 대표: 맞습니다.

인요한 소장: 영어로도 ‘삐걱거리는 바퀴에 기름칠하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사들이 소리를 안 내니까 이 지경이 된 거에요. 소리의 방법은 과격한 것보다는 조직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의사단체 활동도 회비도 열심히 내야 하고, 나가서 뛰는 사람도 희생적이구나, 우리를 위한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도 앞으로 참여할 거에요.

노환규 대표: 환영합니다. 더욱 열심히 참여해주세요.

인요한 소장: 이제는 생존 문제입니다. 의사가 1년에 4,000명 이상 쏟아져 나오는데, 환자를 조금 더 적게 보고 질적으로 볼 때가 됐죠. 이건 국민들도 원하는 부분입니다. 오전에만 외래 100명씩 보는것은 누구도 원치 않아요. 한국 의사가 미국 의사의 5~10배 정도 환자를 보고 있죠. 그렇게 안 보려면 돌아오는 비용을 현실화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 의료보험제도의 성공은 대한민국 의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확실한 진실입니다.

노환규 대표: 사실 희생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여야지 강요받아서는 안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더 이상 의사들이 희생을 강요받지 않도록 앞으로 애 많이 써주세요. 마지막으로 후배 의사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인요한 소장: 의사는 사회가 우리에게 내려준 특권입니다. 환자는 약자이지요. 우리는 강한 사람에게는 강해도 괜찮지만 약한 사람에게는 좀 부드럽고 약하게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배 의사들에게 세가지 철학을 남기고 싶습니다. 첫째는 올바른 태도입니다. 두번째는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죠.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줘야 합니다. 저도 넥타이가 싫지만 사람의 인상도 중요하기 때문에 꼭 매고 나옵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사실 제일 안 중요하지만 꼭 있어야 하는 ‘지식’입니다. 공부 안하는 의사는 절대 생존할 수 없습니다. 좋은 태도를 갖고 기술적으로 환자에게 잘 하고, 바탕에 지식이 있는 그 세가지만 있으면 아마 성공적인 의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노환규 대표: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말씀과 활동 많이 부탁드립니다.

인요한 소장: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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