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를 뜨겁게 달군 ‘일반약 슈퍼판매’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해묵은 논란거리였던 슈퍼판매 문제가 2010년부터 다시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급물살을 타며 지난해를 뜨겁게 달궜다. 약사회는 심야응급약국을 운영하며 슈퍼판매 논의를 막아보려 애썼지만 별 성과 없이 끝난 운영으로 효과를 보지 못했고, 직역 이기주의라는 비판만 따갑게 받아야 했다.

슈퍼판매 논란은 이를 찬성하는 의료계와 시민단체, 언론계, 국민여론에 약사회만 반대하는 대결구도로 진행되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지난달 약사회와 복지부가 24시간 운영가능 한정장소 가정상비약 판매에 합의함으로써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약사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국회의 약사법 개정도 아직 남아있어 향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상)여론vs약사, 슈퍼판매 끝없는 대립
(하)하반기 시행?…약사회 내홍 심화

▽대통령 말 한마디로 시작, 약사회에 등 돌린 복지부
일반약 슈퍼판매는 안전성이 입증된 해열제, 진통제 등 가정상비약 수준의 일반약을 국민들이 심야시간이나 공휴일에도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슈퍼나 편의점에서 팔도록 하자는 것인데, 약사회는 안전성을 이유로 들며 강하게 반대해 왔다.

복지부 역시 약사회와 마찬가지로 슈퍼판매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는데, 지난 2010년 12월 보건복지부의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진수희 당시 복지부 장관에게 건넨 말이 단초가 돼 ‘일반약 슈퍼판매’는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당시 이 대통령은 진 장관에게 “미국 같은 데 나가보면 슈퍼마켓에서 약을 사 먹는데 한국은 어떻게 하냐. 미국은 슈퍼에서 파는 걸로 아는데 유럽은 어떠냐.”고 물었고, 이후 복지부는 계속 반대 입장을 고수하다가 “장관이 사무관처럼 일한다.”는 대통령의 호통까지 받아야 했다.

결국 지난해 6월 박카스 등 드링크류와 일부 액상소화제, 외용 연고 등 총 44개 일반약이 의약외품으로 전환돼 슈퍼판매가 가능해 졌으며, 감기약과 해열제 등을 슈퍼에서 팔 수 있도록 의약품을 재분류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9월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됐다.

이 과정에서 모 방송사가 약사회 내부 문건을 입수, “약사회 바람막이를 하던 복지부가 등을 돌렸다.”는 내용이 폭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심야응급약국으로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건만..
약사회는 국민불편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지난 2010년 7월부터 51곳의 심야응급약국 시범사업을 운영했지만 현저히 낮은 참여율과 경제성, 불법 임의조제 가능성, 명칭에 대한 문제들만 드러낸 채 용두사미 꼴로 마무리됐다.

슈퍼판매를 막기 위해 애를 썼지만 별 효과도 보지 못하고, 내부적으로도 원망의 목소리만 들은 채 끝나야 했던 것. 심야응급약국 시범사업 당시 자발적으로 신청한 약국이 절반도 되지 않자, 나머지는 마지못해 시군구약사회 차원에서 약사회와 관공서 등에 의약품 취급소를 운영하게 됐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것과 불법 임의조제 가능성, 명칭에 대한 문제도 거듭 제기됐다. 당시 전국의사총연합은 성명을 통해 “심야응급약국은 일반약 슈퍼판매 허용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미봉하려는 술책에 불과하다.”면서, “국민의 편의성과 약제비 감소를 위해 일반약 슈퍼판매를 허용하라.”고 주장했다.

대한약사회는 6개월간 시행한 심야응급약국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회를 열고 “이용 국민들이 매우 만족했으며 그 필요성이 확인됨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이는 ‘공치사’에 불과하며 좀 더 정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2010년 12월 열린 ‘심야응급약국ㆍ연중무휴약국 시범사업 평가회’에서 경실련 정승준 보건의료정책위원(한양의대 교수)은 “시범사업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사업 주관사인 약사회가 할 것이 아니라 관련부처를 중심으로 다양한 단체가 참여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체 개업약국의 0.3%만이 참여하고 약사회 임의로 지역적 안배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심야약국을 운영한 상황에서 약사회가 내놓은 자료를 통해 운영실태나 실효성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지적했다.

다른 토론자 역시 심야응급약국에서 판매량이 높은 감기약이나 숙취해소제, 진통제 등은 의약품 분류를 새로이 해 슈퍼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심야응급약국의 문제점도 해결하고 국민들의 의약품 접근성도 높일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나 홀로’ 약사회
일반약 슈퍼판매의 대립 양상은 찬성 쪽에 언론과 의료계, 시민단체, 국민 여론이 위치했고, 대한약사회만 강하게 반대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물론 법안 통과를 손에 쥐고 있는 보건복지위원들 역시 약사법 개정안 처리를 미뤄 비판을 받아야 했지만, 이는 약사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찬성 쪽에서는 특히 경실련과 의료계의 활약이 돋보였다. 경실련은 전국 심야응급약국의 참여율을 조사해 시범사업의 허구성을 낱낱이 공개하고, 약사회 논리의 허점을 지적하며 일반약 슈퍼판매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전국의사총연합도 수차례 성명서를 통해 전문가적 입장을 견지하며 일반약 슈퍼판매의 당위성을 주장해 의료계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반해 약사회는 안전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단 하나의 약도 약국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이미 선진국에서 일반약 슈퍼판매가 대다수 이뤄지고 있고, 복약지도 미비와 무자격자 판매 등의 자충수로 입지가 더욱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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