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전이 무슨 콜라도 아니고..” 만성질환자가 처방전을 재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이른바 ‘처방전리필제’를 들은 한 의사의 반응이다. 지난해에는 약사회가 줄곧 주장해온 처방전리필제를 보건복지위 소속도 아닌 국회의원들이 두차례나 철회와 반복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약사회 측과 법안을 발의한 의원은 환자의 편의성을 내세웠지만, 만성질환자라고 무조건 처방전을 재사용할 수 있다는 발상은 위험천만한 것이라며 의료계는 공분했다. 틈만 나면 처방전리필제 입법을 시도하는 약사회와 국회의원들에 대항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처방전리필제 발의와 철회과정, 문제점 등에 대해 살펴봤다.


(상)조문 검토 않고 너도나도 공동발의
(하)처방전리필제, 만성질환자도 위험

▽입법시도 불발…발의-철회 반복 
지난해 7월 국회 보건복지위 이낙연 의원(민주통합당)이 처방전리필제 입법화를 추진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지자 이 의원의 트위터에 의사들이 질문을 남겼고, 이 의원은 “비판은 자유지만 사실은 확인해 주길 바란다. 그런 계획 없다.”고 불쾌해 했다.

하지만 잠시 후 이 의원은 “비서관에게 민원이 들어와 유관 단체들의 의견을 물었다고 조금 전에 처음으로 보고 받았다.”고 다시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해프닝에 그치긴 했지만 의사들은 처방전리필제 입법화가 여전히 물밑에서 추진중이라는 사실을 알게돼 찜찜함을 남겨야 했다.

결국 지난해 8월 2일 교육과학기술위 김영진 의원(민주통합당)이 고혈압, 당뇨환자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범위를 한정하는 만성질환자를 진료하는 의사가 장기복용을 요하는 처방전을 발행하는 경우 재사용이 가능한 의약품을 대상으로 처방전의 재사용 여부 및 재사용 횟수 등을 정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영진 의원은 “만성질환자가 급증하면서 환자의 의료기관 방문 횟수가 증가하고 매번 같은 약을 처방받기 위해 의료기관을 방문함으로써 불편함과 의료비, 건강보험재정 누수가 증가하고 있다.”며, “만성질환자는 동일한 의약품을 장기간 반복적으로 복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로 노인 또는 거동불편자이기 때문에 동일한 의약품을 매번 의료기관에서 처방받고 약국에서 구입하는 등의 이용에 따른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방전을 일정기간 동안 재사용할 경우 만성질환 등 통상적 장기투여 환자의 불필요한 진료비 절감 및 편의성 증대, 의료기관의 과잉이용을 줄임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고 의료소비자들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해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계의 항의가 빗발치자 김 의원은 하루 만에 “단순히 환자편의만을 고려했는데, 그 이전에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부분이 있어 신중히 해야 한다는 판단하에 회의를 거쳤다.”며, 하루만에 철회를 결정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7일에는 외교통상위 윤상현 의원(한나라당)이 만성질환 환자가 공휴일에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못할 경우 1회에 한해 처방전을 재사용할 수 있는 약사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만성질환 환자가 처방전을 재사용할 경우 처방전에 따른 복약이 끝나는 날부터 4일 이내에 1회에 한해 처방전을 재사용해 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윤상현 의원은 “처방 연장이 필요한 날이 공휴일인 경우 단순 처방연장임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의료비가 비싼 응급실을 이용해야 하는 등 비용부담이 컸으며, 만성질환자는 동일한 의약품을 처방받기 위해 의료기관을 자주 방문해야 하므로 의료비 지출이 더 크다.”면서, 선진국처럼 처방전리필제를 도입해 불필요한 의료비를 절감하고 편의성을 증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역 개원의들의 항의를 중심으로 역시 의료계의 지적이 빗발치자 공동 발의자들이 잇따라 발의 철회를 선언했고, 결국 윤 의원도 3일 만에 철회의사를 밝혔다.

▽복지위도 아니면서 왜?
처음에 입법검토를 했던 이낙연 의원은 보건복지위지만, 정작 법안을 발의한 김영진 의원과 윤상현 의원은 각각 교과위와 외통위 소속 국회의원들이다. 특히 윤상현 의원 법안발의시 13인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는데, 이 중 보건복지위원은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건보재정 절감과 환자의 편의성을 발의배경으로 밝혔지만, 이는 약사회의 논리와 그대로 맞아 떨어져 처방전리필제를 발의한 속내를 의심하게 했다.

공동 발의자로 참여한 의원들의 문제도 철회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들은 대부분 내용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법안발의자 명단에 이름만 올렸다가 의료계의 항의가 이어지자 부랴부랴 철회하는 꼴 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공동 발의자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대표발의를 한 의원실에서는 좋은점만 설명하기 때문에 그냥 서명할 수 밖에 없다.”며, “제안 이유만 보고 법조문은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고 인정했다.

윤상현 의원 대표발의시 공동발의에 참여했던 김학용 의원실 관계자도 철회하는 과정에서 “법안에 대해 신중히 접근할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내부회의를 거친 결과 첨예한 문제라는 판단 아래 철회하기로 했고, 의원님도 그렇게 주문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법안) 제안 이유만 확인하고 법 조문 전체를 확인을 못했던 부분이 있다.”며, 법안에 대해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음을 내비쳤다.

이철우 의원실 관계자 역시 “처음에 대표 발의자인 윤상현 의원실의 설명을 들을때는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주말에 병원이 문을 안 열때 약 받으려면 불편하니까 1회에 한해 재사용할 수 있게 하는 취지라고 해 좋은 뜻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사람들이 꼭 필요할 때 약을 못먹으면 어떻게 하나하고 (처방전리필제를) 좋은 쪽으로만 생각했는데, 의사들과 통화 해보니 타당한 지적도 있고 해서 인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처럼 같은 법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하는 촌극이 아직 끝이 아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으며, 실제로 처방전리필제 법안은 언제든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남아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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