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

현 사태의 본질은 2,000명 증원이 아니라 정부의 환자-의사 갈라치기이다.

많은 국민이 왜 의사들이 의대정원 증원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사직하는 것일까 의문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국민이 정확한 이유를 잘 알지 못하고, 그저 언론보도를 통해 증원에 반대해 수익을 보존하려는 기득권 집단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의료에는 3개의 큰 축인 환자와 의사, 그리고 정부가 있다. 이 중에서 환자와 의사는 치료를 주고받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동일한 기본적으로 한편이다. 환자와 정부, 또는 의사와 정부가 한 편이 되기는 본질적으로 쉽지 않다.

환자와 의사가 바라는 것은 당연히 양질의 의료인데, 문제는 거기에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정부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전국민의료보험인 나라에서 보험회사 역할의 정부는 환자와 의사의 질 좋은 의료에 대한 요구에 비용을 제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의료보험이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이러니하게도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주요한 분야들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응급의학과 등이 어려우니 시급하게 개선하자는 환자, 의사, 정부 모두의 주장에서 출발한다.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다른 여러 문제들도 많겠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응급실 뺑뺑이’와 ‘소아과오픈런’을 보며 불안하니 뭔가는 문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의사단체는 이러한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구조적 문제이며 필수의료지원과 법적 안정성 확보를 통해 인력이 유출되는 문제해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논의의 와중에 정부가 갑자기 유일한 해결책은 의대증원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매우 급하다며 전격적으로 2,000명이라는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숫자를 제시한 것이다.

당연히 정부와 논의중에 있던 의료계는 뒤통수를 맞은 것이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문제점에 대해 지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의료계와 협의할 일이 아니라며 반대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했고, 이에 반발하는 의사집단을 밥그릇 싸움과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하며 강경하게 진압하겠다고 했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 전체 의사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됐고 오히려 유도했을 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왜 정부는 전국민의 안전에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파국을 이렇게 강경하게 추진하고 있는가이다.

필수의료를 살리는 길은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필수의료에 투자를 확대하고 법적으로 보호해 많은 전문의가 필수의료 현장에서 일하게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직관적이고 단순하며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단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든다.

정부는 의대정원을 확대해서 많은 의사들을 양산하면 의사들의 수입도 줄어들고 어쩔 수 없이 수익이 높은 비필수 분야를 포기하고 필수의료 분야로 가는 의사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이른바 낙수효과라고 한다.

누가 보더라도 전자의 대책이 합리적이고 직관적이며 시행 즉시 효과가 나는 일임에도 정부는 후자의 정책을 택한 것이다.

의사집단에 대한 장기간의 집요한 흑색선전을 통해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하고 강력한 반대와 강경한 행동을 유발시켜 그것을 타파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환자와 의사가 한 편을 먹고 양질의 의료를 요구하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고갈을 앞둔 의료보험 재정으로 두 집단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 방법은 지금까지 정부의 위기상황에서 언제나 효과적이었던 의사집단 매도라는 방법이다.

의사와 환자들의 신뢰관계를 파괴하고 의사집단을 나쁜 집단으로 매도하면 국민들은 정부와 한 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00명 증원이라는 이슈가 잘못된 필수의료 패키지를 포함한 다른 모든 보건의료 이슈를 덮어버렸다. 당연히 정부가 바란 것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준비없이 추진하는 2,000명 증원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고, 만약 대통령의 말대로 강력하게 추진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문제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0년 후 1만명의 일반의나 피부미용의사가 아니라 당장 환자를 살려낼 필수분야의 전문의이다. 하지만 이런 정당한 문제제기도 기득권을 지키려는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해 버렸다.

만약 이것이 진정 밥그릇싸움이라면 밥그릇이 큰 고소득 의사들부터 반대했을 터인데 현실은 밥그릇이 작거나 아예 없는 전공의와 의대생들, 필수의료 의사들부터 반대하고 있다.

단지 눈앞의 총선의 이득 때문에 향후 수십년을 이어질 의료를 망친 것이라면 그 담당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은 역사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의사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지금껏 더 쉽고 빠른 효과적 필수의료 해결책이 있음에도 그 모든 제안과 조언을 무시하고 어렵고 힘들고 효과가 없을 정책을 막무가내로 추진하며, 그 반발을 줄이기 위해 의사집단을 매도하고 의사의 모든 것인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악의적으로 갈라치기 하고 있는 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지금 현재 의사들이 분노하는 기본적인 이유이며, 회복되지 않을 경우 더이상 의사로서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실망과 좌절 때문에 사직을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재 정부와 의사는 서로 신뢰관계를 완전히 상실한 채 강경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망친 것은 정부지만 결국 이 일의 수습과 대책마련은 의료계의 몫일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의사와 환자를 갈라치기 하려 하지 말고 양질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협조해야 한다.

솥은 세발이 있어야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다. 의사라는 한 축이 무너지면 정부와 국민들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립 와중에 조만간 환자들의 심각한 피해도 발생할 것이다.

필수의료 개선이라는 동일한 문제에 대한 다른 대책을 내놨다고 싸울 일이 아니라 서로 견줘 논의하고 더 좋은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신뢰의 관계이며, 이것을 망가뜨리면 의료계는 파멸한다.

정부는 환자와 의사들의 공통된 요구사항인 양질의 의료를 건전한 재정을 확보해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며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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