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가 지난 18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을 의결했다.

의사협회 집행부를 비롯해 다수 단체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운영해 왔지만, 의협 대의원회가 비대위 구성을 결정한 것은 2017년 이후 6년 만이다.

그동안 의협 대의원회가 비대위 구성 안건을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의원회는 지난 2018년 10월 임시총회를 열고, ‘문재인케어 저지와 건강보험 수가 인상을 위한 대책 추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을 상정했으나 투표자 178명 중 49명만 찬성해 부결됐다.

2019년 12월 임시총회에서는 ‘의협 정책 방향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을 상정했으나 투표자 202명 중 62명만 찬성해 부결됐다.

2020년 9월 임시총회에서도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및 운영규정의 건’을 상정했으나 이 역시 투표자 174명 중 87명이 찬성해 부결됐다.

비대위 구성이 연거푸 부결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비대위와 집행부의 역할이 중복되기 때문이다.

비대위는 대의원회 운영규정 제26조에서 ‘의사들의 권익에 심대한 위해가 우려될 경우 또는 심대한 침해가 발생했을 경우에 의사들의 권익보호와 증진 및 권익회복을 위해 총회는 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의결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의협 정관 제14조는 회장이 협회를 대표하고 회무를 통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관은 단체의 조직과 활동과 관련해 규정한 근본 규칙으로, 규정과 규칙에 우선한다.

비대위에 투쟁과 협상의 전권을 준다고 해도 의협 집행부를 대신할 수는 없다. 정관상 의협의 대표는 의협 회장이며 모든 회무를 총괄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비대위 조직이 비효율적이어서다.

비대위가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 방식, 활동기간, 재원 마련을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데 상당 시일이 소요된다.

비대위 구성원이 의협 산하 단체에서 추천을 받아 합류하는 형태를 띄다 보니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의사결정도 느리다.

실제로 2014년 노환규 집행부에서 꾸려진 비대위는 발대식이 한차례 연기된 끝에 대의원총회에서 비대위 구성이 의결된 지 20일 만에 첫 회의를 열었다.

2016년 추무진 집행부에서 꾸려진 비대위는 더 오랜 시일이 걸렸다. 대의원총회에서 비대위 구성을 위임한 뒤 무려 52일 만에 비대위가 꾸려졌다.

또 하나, 대의원들이 비대위 구성을 꺼린 이유는 의사협회가 내부 혼란에 빠질 우려 때문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의협회장과 비대위원장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면서 갈등을 겪었다.

집행부는 예산 승인을 늦춰 비대위의 힘을 빼고, 비대위는 투쟁은커녕 대국민 홍보용 자료 준비에 몰두해 홍보위라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비대위원장들이 차기 의협회장 선거를 겨낭해 자기 정치를 한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2014년 이후 구성된 비대위에서 단독위원장을 맡은 인사 5인 중 조인성(2014년), 추무진(2016년), 이필수(2017년) 등 3인이 의협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2017년 비대위에서 투쟁위원장으로 활동한 최대집 전 의협회장까지 포함하면 비대위 활동이 전국적인 인지도를 끌어올려 협회장 선거에 도움이 됐다.

이번 임총에서 비대위원장 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힌 3인 중 임현택 후보와 박명하 후보는 차기 의협회장 도전이 유력하다.

따라서, 비대위원장이 차기회장선거를 염두에 둔 활동을 하게 되면 비대위와 집행부의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 비대위원장을 맡으면 차기 의협회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임시총회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대응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의결했던 대의원회는 ‘비대위원장은 협회장 불출마를 선언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되면서 비대위가 급하게 구성됐다.

‘또 비대위?’라는 물음표로 출발한 비대위가 과거와 다르게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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