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사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의사들이 한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여전히 법사위에 계류돼 있어 의사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료법 개정안이 조만간 재논의되고, ‘금고 이상의 형’이라는 의사면허 취소 조건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소장 안덕선)는 ‘의료행위의 형벌화와 행정처분의 제문제’를 주제로 4일 의협 용산임시회관 7층 대회의실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면허 취소 및 재교부를 금지한 의료법 개정안을 살펴보고, 객관적 지표와 법제도를 비교 분석함으로써 올바른 입법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김상겸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주제 발표와 패널 토론으로 순으로 진행됐다.

패널 토론에 나선 한성훈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객원 교수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이다.”라며, “여당은 3월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여당의 태도나 주위 의견을 들어보면 어떤 식으로 개정되더라도 금고 이상의 형에 대한 규정이 빠질 것 같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일각에서 의료법 개정안이 과도한 면허제한을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여당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과 같은 결격사유를 제외했고, 특수성도 함께 고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느 쪽으로 진행될지 더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의료법 개정안이 문제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의료인의 결격사유 취소 요건을 광범위하고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의료인이라는 특수한 직업군이 내제하고 있는 본질적인 부분을 간편한 입법으로 해결하려는 입법편의주의적 요소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오랜시간 동안 무감각하던 직업적인 성역을, 법률적인 제재를 통해 해결하고자하는데 대한 반작용으로 진단할 수도 있다.”라고 견해도 밝혔다.

이어, 한 교수는 “의료법 개정안은 우리 사회의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어떠한 방향으로든 법문제에 대한 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 찬반에 대한 균형적인 접근을 통해 법률적이고 사회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일이 문제의 해결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라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형사법 연구자로서 형사법 관련 내용만 말씀드린다. 제8조 의료인 결격사유를 보면, 형식적으로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한 것도, 이중처벌도 아니다. 그러나 제도의 구조상 이중처벌에 가까운 형태로 보여진다는 점에서 불합리하다. 변호사나 회계사와 다르게 신체적인 접촉이 수반되는 특성을 고려하면 적어도 개인적 법익 침해는 불가피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모든 범죄라는 조건 설정에 상당한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의료인이 개인에 대한 형법적 판단에서 개인의 생명과, 신체, 자유에 대한 범죄성립이 이뤄졌다는 점도 고민해야 한다. 행위자인 의료인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 결여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라며, “결론적으로 개인의 생명과, 신체자유, 형법적 판단이 면허취소와 같은 행정적인 제재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감을 가질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문제는 금고이상의 형을 받은 자에 대해 구체적인 사유를 따지지 않고 일괄적으로 면허를 처분하거나, 취소 후 재교부 절차를 두는 것이다. 신체접촉이 수반되는 의료의 특성상, 의료업무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부적절한지를 개별 사안마다 판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인 사유를 따지지 않고 법률 효과만 갖고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떤 식으로 개정될 지 모르지만 금고이상의 형에 대한 규정이 빠질 것 같지 않으므로 거기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라며, “개개의 사안마다 인간의 생명과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의료인이 행한 행위의 불법을 다시 판단해서 의료업무를 수행하기에 부족한지 파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의사협회가 자율징계시스템을 어떻게 구현하고 이뤄내는지도 중요하다. 자구적인 노력이 의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주제발표에서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우리나라보다 의사수가 두 배 많은 영국의 경우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중과실에 의한 유죄판결이 4건뿐이었고, 독일의 경우 2010년~2019년까지 의사면허 관련 검사 형사소추 건수가 6건에 불과했다. 이중 5건은 벌금형이고, 1건이 집행유예였다.”라고 소개했다.

안 소장은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의료의 형사처벌이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제로 의료형사처벌 사례를 찾기 힘들다. 온타리오주는 108년간 1건뿐이었다.”라며, “외국은 배상과 자율로 해결하고, 마녀사냥보다는 의료 질 향상과 예방중심으로 해결한다. 특히 형사처벌에 의한 면허취소는 면허기구에서 심사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업무개시 행정명령, 공정거래법 적용은 의사단체 통제장치로 악용될수 있으므로 지양하고, 면허관리 전문기구를 통해 건별 심사해야 한다. 의료와 관련성 판단이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두번째 주제발표자인 이얼 의료정책연구소 의사면허제도연구팀장은 영국의 징계지침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도 의료인 행정처분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얼 탐장에 따르면, 영국 보건부는 의료현장에서의 중과실치사 혐의로 인한 경찰의 수사나 검찰의 기소 과정은 의료인에게 큰 고통을 야기하므로, 개인의 행위가 예외적으로 나쁘기 때문에 반드시 형사제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또, 영국 검찰의 의료영역에서 중과실치사죄의 지침에 따르면, 실수, 심각한 실수, 판단 오류, 심각한 판단오류만으로는 살인죄만큼 중죄가 될 수 없으며, 주의의무 위반 행위는 행위자와 유사한 위치에 있는 유능하고 신중한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수 있는 기준에 훨씬 미치지 못한 것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얼 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행정처분 절차가 없고, 행정처분에 대한 불복 절차도 없으며, 환자 및 의사지원 절차도 없다.”라며, “의료인 행정처분시 전문성ㆍ공정성ㆍ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세번째 주제발표자인 김형선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의료법이 입법통제의 수단 또는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훼손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라며, “윤리적 기준을 법제도로 규제하기 위해선 헌법상 직업의 자유제한 원칙 준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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