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말한 특단의 조치는 의ㆍ정협의 거부였다. 일각에서 의ㆍ정협의 거부를 선언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의ㆍ정협의를 위한 협의체 구성 거부를 선언했으니 협의 거부와 다를 바 없다.

최대집 회장이 무리수를 둔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가 어찌됐든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는 자충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최 회장은 지난달 25일 의협 정기총회에서 인사말 도중 “오는 28일까지 의대생 의사국가시험 응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특단의 조치에 나서겠다.”라고 정부를 향해 폭탄 발언을 했다.

현장 곳곳에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오히려 ‘대정부 투쟁에 다시 나설 수 있다’ 정도의 표현이라면 무심하게 넘겼을 지 모른다. 하지만 ‘특단의 조치’라는 표현이 단번에 이목을 끌었다. 배포한 회장 인사말 자료에는 없던 표현이다. 

나흘 간 특단의 조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해주는 의협 인사는 없었다. 발언 수위를 보면 아마도 파업투쟁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파업투쟁을 재개하면 동력은 있는지에 대한 물음표가 따라 붙었다.

의협은 정기총회 하루 뒤인 26일 오전 보건복지부가 의정협상단 구성을 위한 실무협의를 갖자고 제안해 왔고, 이날 의대생 국시 문제도 논의할 예정이라며 여론전을 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의ㆍ정협의체 구성 및 운영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라며 의대생 국시는 논의 안건이 아니라며 부인했다.

특히, 참석하는 실무자들이 국시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며 선을 그었다.

보건복지부 손영래 대변인은 최대집 회장이 특단의 조치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은 기한인 28일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의사 국시에 대해서는 종전 입장과 변함이 없다. 의정협의체 구성 전제조건으로 국시문제 해결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강도태 차관은 29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의ㆍ정협의에서 논의할 내용은 이미 합의했고, 의사국시 문제는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못박았다.

그는 “의대생들의 국시 미응시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국민 피해 최소화 방안을 위한 이야기는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손영래 대변인은 4일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의사 국시와 관련해 정부 입장은 종전과 동일하다. 의협과 의사 국시 추가 기회와 관련해 실무적으로 논의를 진행한 바 없다.”라며 불가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는 최대집 회장이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본과 4학년 학생들의 의사국시 문제는 금주 중 해결의 수순으로 진입했다. 실기 시험 진행을 위한 실무적 프로세스가 진행중이고, 당ㆍ정ㆍ청의 입장을 확인했다.”라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의협은 지난 30일 의협회관서 의협 상임이사회와 시도의사회 및 범의료계투쟁위원회 비상연석회의를 열고 의대생 국시 문제를 논의했다. 그 결과, 곧 열리는 범투위 1차 회의에서 공식 안건으로 다루기로 했다.

하지만 비상연석회의에 참석한 한재민 전공의협의회장은 국시 문제 해결을 위해 강경한 입장을 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당사자인 이지훈 의대협 국시응시자대표는 국시가 의ㆍ정협상에서 협상 카드로 이용돼선 안 된다고 발언해 범투위가 강경한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범투위가 의ㆍ정 대화에 나서기로 결정하면 최 회장이 내건 ‘국시 문제 미해결시 의ㆍ정협의 거부’라는 특단의 조치는 휴지조각이 된다,

9.4 의정합의 후 최대집 회장이 9월 9일 전공의와 의대생을 포함한 전체회원을 대상으로 발표한 서신을 보자.

서신에서 최 회장은 “이번 합의에 대해 시민단체와 여당의 지지세력을 중심으로 ‘의협에 무릎 꿇은 공공의료’, ‘여당의 백기투항’,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만큼 이번 협상은 전례가 없는 우리의 성과다. 다소 아쉬움이 남더라도 거듭되는 패배 끝에 얻은 소중한 경험이며 기회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그는 “합의문의 내용이 모호하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말씀드린다. 어떤 합의문도 해석의 여지가 없게 작성되기는 어렵다.”라며, “곧 마련될 공식적인 경기장에서 치열한 논리와 치밀한 준비를 통해 우리가 꿈꿔온 ‘대한민국 의료의 정상화’를 이뤄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즉, 경기장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그가 스스로 경기장 입장을 거부한 꼴이다. 회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 회장의 임기는 약 6개월이 남았다. 하지만 차기 의협회장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후보등록일은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곧 선거전이 본격화될 것이다. 최 회장에게 자충수를 만회할 기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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