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실손보험청구 간소화를 이유로 발의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21대 국회가 문을 열기 무섭게 연달아 발의돼 의료계가 긴장하고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과 같은 당 전재수 의원은 20대 국회인 2018년 9월 21일과 2019년 1월 28일 각각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회기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가 문을 연뒤 15일 현재까지 발의된 실손보험청구 간소화와 관련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3건이다.

먼저,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이 7월 17일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 9월 21일 소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된 뒤 소위에 회부됐다.

전재수 의원안은 보험회사로 하여금 실손보험의 보험금 청구 전산시스템을 구축ㆍ운영하도록 하거나 이를 전문중계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보험회사ㆍ보험가입자 등이 요양기관에게 의료비 증명서류를 전자적 형태로 보험회사에 전송해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7월 31일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8월 3일 정무위원회에 회부됐다.

윤창현 의원안은 보험계약자, 피보험자 등이 요양기관에게 진료비 계산서 등의 보험금청구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요양기관이 따르도록 했다.

이와 관련한 전산체계 구축 및 운영과 관련한 사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10월 8일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10월 12일 소관위원회에 회부됐다.

고용진 의원안은 보험가입자와 보험회사가 의료기관에 진료비 계산서 등의 서류를 보험회사에 전자적 형태로 전송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고, 요양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실손 가입자의 요청에 따르도록 했다.

또, 해당 서류의 전송업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 3건의 발의자는 다르지만 내용은 매우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법안 발의 의원들은 실손의료보험이 보편화돼 보험금 청구가 빈번하지만 소비자가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선 병원ㆍ약국에서 서류로 증빙자료를 발급받아, 보험설계사 또는 팩스 등을 통해 제출하거나 보험회사를 직접 방문해 청구서와 함께 제출해야 하는 등 청구 절차가 불편해 소비자가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는 상황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한다.

또, 요양기관과 보험회사 입장에서도 서류를 기반으로 보험금 지급업무를 수행하므로 보험금 지급에 과다 비용이 발생하는 등 비효율적인 상황이라는 배경을 내세운다.

아울러,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는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제도 개선을 권고한 이후,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보험가입자의 편익이 증진될 뿐만 아니라, 병원은 진료비 영수증 등 불필요한 문서를 줄이고, 서류 발급에서 발생하는 자원낭비와 경제적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게 발의자들의 설명이다.

의료계는 해당 법안에 대해 실손보험사의 이익만을 위한 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병원협회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이 법률안으로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료비 심사에 개입해 삭감하거나 지급 거부로 이어질 경우 의료기관들은 보험사의 눈치를 보며 진료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어 의료가 보험사에 종속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병원협회는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사적 보험에 가입해 있으면서 최선의 진료가 아닌 최소의 진료를 받게 되고 건강보험의 보완재적 성격의 실손보험의 취지가 퇴색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병원협회는 “지난해 20대 국회에서 같은 법률안이 발의돼 유관단체는 물론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에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신중히 추진하라는 의견이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진전 없이 회기만료로 폐기된 법률안이 21대 국회에 그대로 다시 상정된 것 또한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꼬집었다.

의사협회는 보험업법 개정안을 ‘민간보험사 이익편법지원법안’이라고 규정하고, 보험사 이익만을 위한 목적으로 한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의사협회는 최근 성명에서, “표면적으로는 실손보험 가입자의 편익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상은 의료기관에 보험금 청구업무를 대행시킴으로써 민간보험회사의 환자정보 취득을 간소화해 향후 보험금 지급 최소화 및 가입거부를 통해 손해율을 줄이기 위한 목적일 뿐이며, 결국은 민간보험사 이익만을 위한 악법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20대 국회에서 같은 법안을 발의했던 고용진 의원은 의료계의 반발을 의식해 개정안에 심평원이 서류전송 업무 외에 다른 목적으로 정보를 사용 또는 보관할 수 없도록 하고, 위탁업무와 관련해 의료계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개정안에 추가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환자들의 진료정보를 수집해 실손보험 가입거부 차단 등 실손보험사의 손해율을 낮추려는 개악안임에는 변함이 없다.”라며 반대하고 있어 법안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이 법안들이 유사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공동 제안자는 제각각이다.

전재수 의원안 공동 제안자는 전재수ㆍ최인호ㆍ박재호ㆍ이병훈ㆍ허영ㆍ김정호ㆍ고영인ㆍ이장섭ㆍ김홍걸ㆍ김철민 등 10인이고, 윤창현 의원안 공동 제안자는 윤창현ㆍ김상훈ㆍ추경호ㆍ양금희ㆍ윤상현ㆍ강대식ㆍ김희국ㆍ윤한홍ㆍ최형두ㆍ조수진ㆍ김예지ㆍ지성호ㆍ이주환 등 13인이다.

고용진 의원안 공동 제안자는 고용진ㆍ이상직ㆍ박성준 김영배ㆍ박범계ㆍ고영인ㆍ문정복ㆍ맹성규ㆍ신동근ㆍ노웅래ㆍ김진애ㆍ변재일ㆍ남인순ㆍ이용우ㆍ이탄희 등 15명이다.

3개 법안 제안자중 중복자는 고영인 의원 한 명뿐이다. 37명의 의원이 보험업법 개정안에 찬성한 것이다.

이번 21대 국회에서 의료계가 각각의 법안의 심사진행단계를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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