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공공의대 설립과 의과대학 정원 증원 문제는 정부가 언론을 통해 퍼부었던 ‘의사단체는 이익단체’라는 맹비난에도 불구하고 모든 직종의 의사 회원과 전국 40개 의과대학 학생들의 단체행동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전공의 단체의 거센 반발과 예상치 못했던 의과대학생들까지 패기 넘치는 행보로 의료계 투쟁 대열에 합류하여 4대 악 정부 정책에 대한 의-정 간의 합의안을 도출케 하는 귀중한 마중물이 되었다.

전공의와 학생은 기존의 기성세대 의사들과는 크게 다른 생활환경과 의학교육체계에서 현재도 배움의 성장과정에 있는 의사이며 예비의사 집단이다.

이들이 바라보는 의료정책과 의료 환경에 대한 시각은 가난하고 힘들었던 과거의 독재와 반독재 투쟁의 시대에 만들어진 ‘억압적인 의료제도’에 대하여 기성세대를 훨씬 뛰어넘는 민감하고 냉철한 판단을 통하여 강한 분노를 응집시켜 분출하고 있다.

국가의 미래 의료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 청년세대로서 비합리적이고 일방통행 식 억압적이고 비민주적 절차에 대하여 운명적이거나 수동적인 입장에서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젊은 세대답게 자신들의 의지와 의견을 중요시하는 매우 능동적이며 거침없는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에서 큰 변화를 보여준다.

▽의대생 전공의 청년층, 정부정책 결정 절차상 하자에 강한 분노 투쟁의지 확산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되었던 의과대학 정원 증가와 공공의대 신설은 주제 자체가 문제이기 보다는 우선 중대한 국가 정책 결정에 대한 ‘민주 정권’의 비민주적인 절차상의 하자가 가장 큰 문제로 드러나 보인다.

응답하라 1987 이후 이제 1990년에서 2000년 뉴밀레니엄 출생자들까지 청년세력의 주축이 된 학생들과 전공의는 기성세대들 보다 의료정책의 ‘절차적 정당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정부가 꾸준히 논의하였다는 공공의대신설이나 의대 정원증가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들은 정부가 한낱 속칭 갈라치기 형태의 편 가르기 정책과 의료의 이데올로기화를 덧씌우는 궤변적 관변학자와의 주장을 선택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뚜렷이 인지하고 있다. 정부의 궁색한 변명이 더 이상 통하기 어려운 세대와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정부의 비민주적 절차에 대한 분노는 정부가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한 의사강제징용 방식의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전임의와 학생들까지 분노의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악수를 두었다.

이번에 정부가 보여준 행정명령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이후에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의사 규제법안 중 의사의 단체적 행동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악법 중 하나에서 비롯됐다. 2000년 당시 의사의 단체적 행동을 처음 경험한 정부로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일종의 국민(의사) 기본권을 틀어막은 것인데, 당시 주축을 이루었던 사람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 투사라는 사실에 더욱 혐오스럽다.

그 당시 의사의 기본권 제한에 앞장서 법안을 통과시켰던 면면들을 살펴보면 지금도 거대 여권 내에서 막강한 권한으로 지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을 가만히 거울 속에 비춰본다면 악법반독재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 민주화가 아닌 다른 형태의 독재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나라에서 다시 증명하고 있는 셈이고,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실감케 해주고 있다.

▽의사강제징용 행정명령 의약분업 투쟁 이후 나온 악법 산물 민주정권의 반민주적 행태
의사들을 분노케 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정부와 정책의 갈등 구조에서 의사 집단을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비도적적 집단으로 매도하는 프레임 씌우기에 있다.

여기에 맞물려 정부의 무능함을 의사집단의 탓으로 돌리는 정부의 언론 플레이 행태에 선량한 많은 의사들을 대정부 투쟁의 험지로 몰아세우고 있다.

과거 군사 독재시절에 만들어진 현재의 강제 계약방식의 건강보험제도의 유지를 위한 정부의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정책의 계승을 위한 민주주의 집단이 보여주는 반민주적인 행태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의사의 집단행동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국가권력이 일종의 ‘불공정거래법’을 이용해서 의사단체에 대하여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의사회 임원을 형사 처벌하는 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후진 독재주의 국가나 전체주의 국가라면 찾아볼 수 있겠다. 의사집단의 단체적 행동이나 파업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를 보면 그 나라의 민주화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사가 환자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행위를 한낱 정치적 목적으로 국가 권력에 의해 ‘형사범죄화’하는 나라는 더더욱 드물다.

왕조시대에 임금님이 돌아가시면 임금의 건강을 보살피는 어의는 무조건 “죽여 달라”고 간청해야 했던 무지막지한 구시대 한복판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이없는 현실과도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의사들조차도 치료과정에서 장애가 생기거나 사망을 초래한 의료결과를 놓고 형사처벌이 가해지는 것에 대해 별다른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중등, 고등교육을 통하여 남다른 경쟁과 학구적 우수성을 인정받아야 의사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나쁜 의료결과에 대한 감당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책임 의식이 의료의 형사범죄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성찰하여 경계하여야 한다.

신이 아닌 이상 의사도 실수할 수 있고, 의료가 지니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한 판단 착오가 언제든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의의 고유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모두가 범죄가 될 수 있는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진지하게 되묻고 싶다.

▽선의 목적 의료행위 불가항력적 상황 고려없이 법정 구속 선진국 유례없는 사법적 폭거
기본적인 법 지식이 있든 없든 간에 형사처벌은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예측 가능하고 의도적인 행동이 전제됐을 때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치료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의사에게 죄를 물어 법정 구속 등 형사처벌하는 사법부의 행태는 자유민주주의의 법정신에서 크게 어긋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불가항력적 의료 현실 속에서 툭하면 의사를 구속시키는 사례가 반복되는 마당에 어느 의사가 두려워서 소신진료를 펴겠는가?

점점 의사의 방어적인 진료가 고착화되면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오래 전에 민주화된 국가에서 이렇게 될 줄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대한민국 의료계의 현실에서 우리는 과연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끔찍하기만 하다.

샅샅이 뒤져봐도 선진국에서는 고유 목적의 의료행위에 대해 형사적 범죄 대상으로 삼아 의사를 법적으로 제재하는 사례는 없다.

다만, 성추행이나 사기, 배임 등 일반적인 형사처벌의 대상에 의사들도 예외 없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의료 영역을 형법으로 다루기보다는 전문가집단에 자율권을 부여하여 의사면허기구를 통해 올바른 의료문화와 질서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 선진국의 의료 환경인 것이다.

자율기구를 통한 자치권 부여는 이미 오래전에 정착된 선진화된 의료의 본모습이 되었다. 

의사에 대한 형사처벌을 다른 표현으로 의료의 형사 범죄화를 하지 말아달라는 주장에 “의사는 신이 내린 살인 면허소지자”라는 빈정대는 투의 시민단체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의사가 신이었으면 의료의 결과가 부정적일 수 있겠는가 거꾸로 반문하고 싶다.

의사는 신이 아닌 인간이며, 인간은 타고난 속성상 실수를 할 수 있고, 간혹 적절한 판단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특히 현대의학이 갖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한 해결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불가능한 영역인 것이다.

▽정부의 기획된 의료 형사범죄화 젊은 층 식지 않은 투쟁열기에 새로운 도화선 될 것
우리나라의 젊은 의사와 장차 의료계를 이끌어 갈 미래 의사들을 위해 마땅히 사라져야 할 독재적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의료의 형사범죄화, 의사 강제징용의 행정명령, 구조적 틀에 갇힌 비민주적 정책결정(건정심), 그리고 불공정한 공정거래법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후진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의료 악적 요소들로써 선진의료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종식되어야 할 진정한 투쟁의 ‘상시과제’ 혹은 ‘기본과제’인 것이다.

의사의 기본권을 말살하려는 이 같은 4대 악은 정상적인 대화로 절대 해결될 수 없는 사안으로 보인다.

사회의 문화적 배경이 국민이나 정치권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면 다른 방식의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사안에 따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도 중요하나, 사안에 따라 국민의 눈높이나 시각의 변화를 유도하는 우회로 개척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은 절대 녹록치 않을 것이나 국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지성인이자 의사라는 전문직 단체의 역할과 책무임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다. 과거 의사들이 사회적 변혁에 나섰던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

프랑스 혁명을 비롯하여 체게바라, 손문 등 사회 부조리와 병폐를 개선하기 위해 목숨 걸로 싸웠기에 가능하였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근현대사에서 의사의 사회변화에 대한 역할과 희생도 역사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의사단체는 자신들과 국민의 마무리되지 못한 근대화와 탈 근대화,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우리나라에 맞지 않는 반근대화와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까지 적용하고 수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교육적 자산이 가장 풍부한 집단으로서 자칭 민주화 사회라는 국가에서 한번 과감하게 도전해볼 만한 시대적 사명이자 과제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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