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의대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첩약급여화 시범사업, 비대면진료 육성정책을 ‘4대악 의료정책’이라고 규정하고 집단행동에 나섰던 의료계가 당ㆍ정과 협약을 맺고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정책협약 합의로 정부는 공공의료 확충 정책을 중단하고, 의사협회도 집단행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양측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화되면 협의체를 구성해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했고, 여당은 협의체 논의중에는 입법 추진을 강행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4대악 의료정책과 관련된 법안은 꾸준히 발의되고 있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앞둔 시점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사협회는 법안이 발의될 때마다 국회와 보건복지부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최근 발의된 법안에 어떤 의견을 제시했을까.

▽공공의대 설립 법안…공급 과잉 초래로 국민 부담 가중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지난 6월 19일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부장관의 인가를 받아 공공보건의료 분야에 종사할 의료인을 양성할 수 있는 의과대학 설립을 할 수 있도록 근거를 규정하고 있다.

의사협회는 무분별한 의과대학 설립은 국가 차원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의사인력 수급 정책의 수립을 어렵게 하고, 의사 인력의 공급 과잉을 초래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킨다며 반대했다.

정치적ㆍ경제적 목적으로 의과대학 설립을 주장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의사 인력 수급의 주무장관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니라 교육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공공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의과대학 설립 권한을 갖는 것은 부실 의과대학 난립을 야기해 의사 인력 수급 정책의 총체적 부실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 의사협회의 지적이다.

의사협회는 지역 공공보건의료 인력 부족은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의사 인력 수급 정책과 지역의 열악한 진료환경 등에 따른 인력의 분포와 배치의 문제에 기인한다고 짚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의 의과대학 신설을 통한 의사 인력 증원이라는 양적 접근이 아니라,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인적ㆍ물적 인프라 지원과 지역 가산제 및 진료권 설정 등을 통한 의료 환경과 지역 사회의 문화와 교육 환경 개선 등을 통해 제대로 된 진료 및 생활환경 구축이라는 질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또, 현재의 의사인력 및 의사 교육시스템의 범주 내에서 필수 전문과목 인력 또는 감염병 대응 공공보건의료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자가치료 가능하면 비대면 진료…접근성 무시, 동네의원 몰락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지난 7월 27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비대면진료의 법적 근거를 규정하고 있다.

입원치료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가 또는 시설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의 경우, 비대면진료 등을 활용해 자가 또는 시설에서 치료받도록 하고, 치료 중인 사람을 다른 의료기관, 시설, 자가로 전원할 수 있는 명령의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사협회는 검증되지 않은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경제 활성화 미명 아래 국가 보건의료체계를 뒤흔들고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위협하는 의료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비대면 진료는 지리적 접근성이 무시됨으로써 동네 일차의료기관 간 또는, 일차의료기관과 병원급 의료기관 간 무한경쟁을 야기해 일차의료기관의 몰락과 지방 중소병원의 폐업을 더 가속화하는 모순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의사협회의 설명이다.

특히, 높은 의사 밀도로 인한 우수한 의료접근성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가 아니라, 의료전달체계의 재정립 등 진료환경의 내실화를 통해 국민의 건강과 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대면 진료는 의료의 본질인 의학적 안전성 및 유효성을 담보하지 못해 국민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의료체계의 기본 인프라인 일차의료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어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추진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창원에 정원 최대 200명 의대 설치…실효성 낮고 근본적 문제 간과
국민의 힘 강기윤 의원은 8월 3일 국립창원대학교 의과대학 설치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립의과대학을 설치해 의사를 양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남 창원시에 국립의과대학을 설치하되, 입학원정은 100명 이상 200명 이하 범위에서 교육부장관과 보건복지부장관이 협의해서 정하도록 규정했다.

의대생에게는 의사 면허 취득 후 10년 동안 창원시 내 공공보건의료기관 또는 공공보건의료업무에 복무할 것을 조건으로 입학금과 수업료를 면제하고, 그 밖에 실습비ㆍ기숙사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용을 국고에서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는 기본 시설ㆍ설비 조성 등을 위해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도록 하고, 산업보건ㆍ첨단의료 분야의 연구과제 및 특화교육과정 수행ㆍ운영 등에 드는 경비를 보조하도록 규정했다.

의사협회는 지역 의사인력 수급 부족의 근본적 문제를 간과한데다, 장기 의무복무 강제는 위법성 및 위헌성 등을 법안이라며 반대했다.

현재의 의사인력 및 의사 교육시스템의 범주 내에서 의대의 교육과정에 공중보건 및 지역의료 등에 대한 교육 강화와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행정ㆍ재정적 지원과 함께 지역권 설정 등을 통한 지역의료의 기반을 확립해 지역에서 정주하며 안정적인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의협의 설명이다.

특히, 법률적 강제로 의무복무 기간 동안 활용하기 위한 인력양성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으며, 장기 의무복무 강제는 위법성 및 위헌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또, 창원지역에는 현재 2개의 대학병원이 운영되고 있고, 그 외 다수 종합병원, 개인의원이 소재하고 있어 의료인프라가 부족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의협은 대안으로 ▲지역 민간의료기관의 역할 확대를 위한 정책 지원 ▲양질의 지역 의료기관의 육성 및 확보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한 의과대학의 인력 양성에 대한 지원과 투자 등을 제시했다.

▽꾸준한 감시… 적극적인 의견 개진 중요
의사협회가 당ㆍ정과 공공의료 확충 정책을 코로나가 안정화될 때까지 중단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한숨돌리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 정책을 중단한다고 해도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계속 발의되고 예산추계가 검토된다면 실현 가능성은 높아진다.

현재 발의된 법안 뿐만 아니라 추가로 발의되는 유사법안도 꾸준히 감시하고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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