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사 노조 사례를 살펴보고 의사 노조의 필요성과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의사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의사노조를 조직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노조 구성은 개별 병원들의 단체보다는 봉직의, 개원의, 의대교수, 전공의 노조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전국 단위 의사노조를 조직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다만, 구성원의 조직화 정도가 다르므로 이를 고려해 노조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소장 안덕선)는 지난 8일 의협임시회관 7층 대회의실에서 ‘의사 노조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의료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의사노조 태동 사례를 통해 당위성과 발전방향 살펴보고, 의사협회 거버넌스의 바람직한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주제발표에 나선 주인숙 중앙보훈병원의사협의회 노동조합 위원장은 보훈병원 독립노조 운영사례를 소개하며 의사노조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보훈처 산하 보훈의료공단이 있고, 공단 산하 6개 병원에 전문의 약 600명이 근무중이다. 초기에는 서울보훈병원장을 청와대에서 임명했는데, 공단 이사장이 임명하게 되면서 병원의 행정직 출신 관료들이 병원 경영에 관여했다. 2016년 부임한 병원장이 전문의 임금이나 제규정을 마음대로 바꿔 논란이 됐다.”라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성과급 지표나 정규직ㆍ비정규직 전환 문제, 근무과 전문의를 병원장이 마음대로 선발했다. 병원장이 본인의 연임을 위해 비정상적으로 실적을 요구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의사회의 반발에도 공단이사장은 방임했다.”라고 지적했다.

주 위원장은 “2018년 1월 의사회가 병원장 불신임 투표를 실시해 82% 찬성으로 불신임안이 통과됐다. 의사들이 청와대에 청원하거나 언론에도 사실을 알렸다.”라고 진행경과를 설명했다.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해 대응하려 했으나 가입을 거부당해 노조를 결성했다고 전했다.

주 위원장은 “보건의료노조에 가입의사를 전달했으나 거부당했다. 사용자라는 이유에서였다.”라며, “결국 의사회를 해체하고 2018년 8월 의사노조를 결성했다.”라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노조가 결성되자 공단은 보건의료노조를 대표교섭단체로 지목하고 단체교섭권을 없애려고 했다. 노동청에 고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 2019년 3월 단체협상이 시작됐으나 아직까지 타결이 되지 않고 있다.”라고 경과를 설명했다.

주 위원장은 독립노조는 한계가 있다며 전국적인 의사노조를 결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주 위원장은 “독립노조는 전임자가 없어 시간적 제약이 있고, 협상기술과 힘도 취약하다. 대부분 의사가 노조 자체에 거부감을 느껴 어려움이 있고, 조직력이 약해 장기적으로 생존이 불투명하다.”라면서, “전국적 의사노조라면 충분히 노조의 기능이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의협이 의사노조로 전환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권성택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장은 의대교수 노조 설립에 대해 소개했다.

권 회장은 “헌법재판소가 고등교육법에서 규율하는 대학 교원들의 단결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2018년 8월 30일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가칭)전국의과대학교수노조연합 설립총회를 오는 11월 21일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수노조가 설립되면 의협보다 더 강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협상권이 있어야 한다.”라며, “교수노조가 합헌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준비중이다. 협상대상자 지위를 확보한뒤 의료정책과 교육정책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세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현미 전 재영한인의사회장은 2016년 영국 전공의들의 파업 사례를 소개했다.

박 전 회장은 “2016년 영국 수상이 공공의료를 주 5일에서 주 7일로 바꾸면서 전공의의 급여를 변경하자 전공의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전공의들이 4회 파업을 진행하는 동안 병원은 응급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외래환자 진료를 대폭 축소했다. 결국 영국 정부는 전공의 교육비 지출액을 늘리고, 주말ㆍ야간근무비 지급 확대 등의 조건을 제시했다.”라고 설명했다.

박 전 회장은 “전공의 82%가 정부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영국의사회와 정부의 4년 간 협상과정을 통해 협력적인 관계가 형성됐다.”라며 말했다.

주제 발표 후 지정토론자들도 의사노조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김재현 전국의사노조협의회 준비위원장은 “현재 의사노조 단체는 의사노조와 일부 대학병원 교수노조, 전공의 노조가 있지만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모두 있는 것은 아니며, 더욱이 가입회원이 소수로 전체 의사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전체 의사의 권익보호와 대정부 교섭투쟁을 위해선 개별 병원들의 의사노조 단체가 아니라, 봉직의, 개원의, 의대교수, 전공의 노조를 담을 수 있는 전국의사노조협의회를 구성해 각 단체 의사노조가 모여 하나의 전국 단위 의사노조를 조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협은 비대위를 구성해 기존의 3개 병원 의사노조와 전공의노조, 교수노조와 병의협 및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와 연대해 전국의사노조협의회를 조직하기 시작하면서 전국의 병원별 의사조직들과 개원의협의회까지 합류시키면 공히 전국 단위 의사노조가 형성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법적인 투쟁과 협상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은용 대구시의사회 의무이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의사의 발언권과 위상이 조금 높아지지 않았을까 잠시 착각했다. 끝나고 나니 정전때 급히 가져다쓰는 초나 건전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라고 운을 뗐다.

김 이사는 “의사노조가 설립되면 병협과 의사간 대립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병협과 노조가 대립하면 병원 입장에서는 보건의료노조도 벅찬데 의사노조가 생기면 병원경영에 불리해진다. 결국 수가문제로 귀결된다.”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병협은 정부에 수가문제 개선을 요구하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건전한 흐름이 형성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특히 김 이사는 개원의 들의 노동자라는 인식 전환을 주문했다.

김 이사는 “개원의들이 사용자, 사업자라는 주체적인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조직에 속해있는 노동자로 속해있다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개원의는 관리의료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인식을 전환하고 노조의 한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가 결성되면 노조도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 의료적 이슈,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가급적 많은 목소리를 낼수 있도록 하는게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김대중 아주의대 교수는 아주대 교수노조 활동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교수는 “아주대는 교수회 활동을 하면서 의사노조도 조직해서 활동하고 있다. 교수회가 의료원 주요사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정책에 대해 보직자들에게 협의를 요청해도 보직자들이 응하지 않아 노조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교수는 연차보상비를 받을 수 없게 법률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진료교수는 교원이 아니므로 연차보상비를 줘야 한다고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하고 근로감독을 신청했다. 결국 진료교수의 연차보상비를 관철시켰다.”라며 노조활동의 성과를 소개했다.

김 교수는 전국 규모 의사노조 구성에 앞서 조직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각 대학병원의 경우, 교수들의 준비된 정도가 다양하다. 교수회 활동을 해본 적이 없고, 친목모임도 해본 적이 없는 조직에서 노조를 만들 수는 없다.”라면서, “조직에 맞는 조직화 작업이 필요하다. 조직화가 어느정도 이뤄지면 노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중엽 대한전공의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전공의 노조의 현실적인 문제를 토로했다.

김 부위원장은 “노조위원장의 임기가 1년이어서 장기적 리더십 부재문제가 있다. 전임 직원이 없는 상황에서 위원장이 계속 바뀌면 지속성 문제가 발생한다. 또, 전공의 노조와, 모든 전공의가 참여하고 있는 전공의협의회와의 관계도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별 지부를 구축해야 한다. 전공의 노조가 병원별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해나가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정원 노무사는 “합법적으로 단체행동권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이 노동조합이다. 의사들이 노조를 만들려면 전국 규모의 업종별 단일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 노무사는 “교수도 의사라면 참여해야 하고, 전공의를 포함해서 모든 의사가 참여해야 한다. 파업도 합법적으로 할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조는 헌법에 보장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다. 최근 의대 신설 등 의료정책과 관련해서 의사들이 원하는 것이 대정부 교섭권이다. 결론적으로 전국 규모별 업종별 단위노동조합을 만들면 교섭권을 확보할 수 있다.”라고 거듭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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