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약 급여화는 의사가 원료를 사서 이 것 저 것 섞고 중탕해 용액으로 만든 뒤 파우치에 담아 환자에게 처방해도 급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임상약리학교실 이형기 교수는 8일 광화문 소재 버텍스코리아 중회의장에서 진행된 ‘첩약 금여화 선결과제 긴급간담회’에서 한방 첩약 급여화 문제를 조목조목 짚으며 첩약이 급여화될 경우 파장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형기 교수는 “약제비 급여는 그 어렵다는 논문 출간보다 더 어렵다. 식약처가 실시하는 안전성, 유효성 심사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임상적으로 유용한지, 비용효과적인지, 급여가 적정한지 모든 과정을 거쳐야 하나의 약이 건강보험 등재목록에 올라가고 급여가 이뤄진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갑자기 첩약 급여화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소위를 통과해서 많은 사람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첩’은 약포지(첩지)로 싼 1회 탕제 분량을 단위로 쓴 것이고, 첩약은 한의사가 여러 개의 한약을 치료용으로 조제한 것이다. 첩약은 종류에 따라서 탕약(액상), 알약(환약), 가루약(산제), 고약으로 분류된다.”라며, “결국 첩약은 성분 자체가 복합제인 한약 여러 개를 섞어서 만든 멀티 복합제이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첩약의료에 변증과 방제라는 복잡한 용어가 나오는데, 변증은 현대의학으로는 감별진단에 해당하고, 방제는 환자에 맞춰서 치료 전략을 짜는 것을 말한다.”라며, “첩약 급여는 단순히 약을 급여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변증과 방제라는 신의료기술까지 모두 급여를 인정하는 정책이다.”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한약은 금수저인가’라면서 심평원 심사에서 면제를 받는 문제도 꼬집었다.

이 교수는 “국내에서 제약회사가 한약이나 생약제제로 허가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안전성, 유효성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과거부터 내려오는 동의보감, 방약합편, 향약집성방 등 한약서에 실린 처방의 경우 심사에서 면제된다.”라면서 “오랜 기간 써 온 한약은 안전하고 효과가 입증됐다는 논리 때문인데, 한약 사용과 연관된 대부분의 문제는 규제기관의 느슨하고 비과학적인 제도 탓이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 교수는 첩약이 한약보다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첩약 급여화가 건정심 소위 통과 당시, 공통되고 일관된 규격을 통해서 제조한 ‘약제’를 보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재료를 뜻하는 ‘약재’라는 용어를 썼다. 제약기업에서 생약제제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허가받은 생산자나 수입자가 규격을 갖춘 원료를 제조업소로 공급하면, GMP 시설을 갖춘 제조업소에서 규격화함으로써 제제로 만드는데 첩약은 유통과정이 분명하지 않다.”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동의보감이 기술한 약 달이는 법을 보면, ‘물량은 짐작하여 넣고, 약한 불에 일정한 양이 되게 달여서 비단천으로 걸러 찌꺼기를 버리고 맑은 물만 먹으면 효과가 나지 않는 일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라며, 뜻이 불분명한 단어가 다수 포함된 사실을 꼬집었다.

그는 “의약품을 대상으로 규격을 설정할 때는 항상 원료의 양이 일정하도록 생산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이것이 의약품 품질 또는 규격이라고 하는 개념인데 첩약은 이런 개념이 없다.”라며, “이미 표준탕제법과 전통적인 한의서 제법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05년 식약처 보고서에 따르면, 소청룡탕과 반하사심탕을 한의서 제법과 식약처 표준탕제법으로 달인 후 고압 액체크로마토그래피(HPLC; high pressure liquid chromatography) 추출 패턴을 분석한 결과 시간 당 최고점이 달랐다.

이 교수는 “첩약의 안전성과 유효성 심사가 가능하려면 모든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기 위한 대전제인 제품의 품질 즉, 규격이 확립돼야 한다.”라며, “첩약은 원료의약품인 한약재를 임의 조제한 복합제이므로 품질과 규격을 성립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더군다나 한의사에 따라 첩약 비방도 달라서 첩약 자체도 표준화가 안된 상태여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이로 인해 설령 효과가 없거나 안전하지 않더라도 첩약은 특수성을 앞세우면 항상 빠져나갈 구멍이 존재하는 쉬운 장사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첩약 급여화를 하게 되면 과학적인 근거를 마련할 기회조차 잃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 교수는 “첩약 급여화는 한의학을 경전 해석학, 더 나아가 신학의 영역 즉, 일화적 서사에 불과한 약효 경험을 일반화된 믿음의 영역으로 내모는 반과학적 정책이다.”라며, “안전성,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첩약에 급여하면 과학으로 발전하고 거듭날수 있는 한의학이 영원히 유사과학에 고착돼 더 이상 근거를 보완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또, “첩약은 안전성과 유효성 외에도 용량과 반응관계, 약물 또는 음식과 상호작용, 병용 요법, 표준요법과의 비교, 이상반응, 특수 집단에 주는 영향 등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첩약의 경우 없어도 너무 없다.”라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합성의약품, 바이오의약품, 한약, 첩약의 임상시험 승인 현황을 보면, 합성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은 각각 1,224건과 616건인데 반해, 한약은 69건, 첩약은 0건이다.

아울러 이 교수는 경제성 평가 연구를 통한 근거 구축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지난 2018년 예방한의학회지에 발표된 ‘한의 외래에서 첩약을 포함한 비급여 조제 한약 이용결정요인 분석’에 따르면, 첩약 이용률이 높은 사람은 고소득층, 만성 호흡계통 질환자, 3개월 이상 의약품 복용자, 건강기능식품 구매 등이며, 반대로 첩약 이용률이 낮은 사람은 대학교 이상 고학력자였다.

이 교수는 “첩약을 급여하게 되면, 가격이 낮아져 쳡약 의존도와 사용량이 증가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정보를 얻기 어려운 저학력 가구나 저소득층의 사용량이 증가하고, 굳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사용하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급여화를 하지 않아도 사먹을 수 있는 고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가 저소득자를 역차별하는 효과도 발생하며, 결국 건강보험 재정의 불건전성이 증가하게 된다.”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특히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의료행태를 정부가 조장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라며 정부 정책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첩약 급여화는 의사가 원료를 사서 이 것 저 것 섞고 중탕해 용액으로 만든 뒤 파우치에담아 환자에게 처방해도 급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경우 급여하겠나?”라면서 첩약 급여화의 위험성을 거듭 지적했다.

토론자들도 첩약 급여화의 문제점을 앞다퉈 지적했다.

의료계 토론자는 정부가 정해진 원칙들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 김대하 홍보이사는 “최근 우리 사회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공정이다. 절차적인 공정함에 대한 요구가 많다. 한방치료에 대한 급여화는 일관된 프로세스를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한방에 특화되고 특수성을 인정해 주는 스캐너된 프로세스가 공정이슈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설령 첩약이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의학적 타당성, 의료적 중대성, 치료효과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와 사회적 편익을 고려해서 요양급여 대상 여부를 결정하라고 규정하고 있다.”라며,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약계 토론자는 정부의 첩약 급여화 추진 방식이 편향적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약사회 좌석훈 부회장은 “지난해 4월부터 첩약 급여화 협의체에 참여해 선결과제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하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의약품의 건강보험 적용 협의인만큼 의사협회의 참여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별도로 논의하겠다며 거부했다.”라고 주장했다.

좌 부회장은 “첩약 첩방을 한의협과 논의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조제와 탕약 사항은 약사회나 한약사회와 논의해야 하는데 단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의견을 제시하라는 요청도 없었다. 첩약 급여화 과정이 매우 편향적이었다.”라고 거듭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제출한 건강보험 첩약 급여 시범사업안을 보면 정부가 첩약 급여화를 추진하는 근거가 환자의 비용부담을 줄이는 것 한가지 뿐이다.”라며, “의약품의 등재를 위해선 안전성과 유효성이 반드시 입증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의학회 토론자는 과학적인 검증에 의한 표준화부터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학회 주명수 보험이사는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립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신의료기술 위원으로 참여해 보면,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는데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첩약을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지적했다.

주 이사는 “시판 후 임상연구에서 발견되지 않은 사항이 새로 발견되기도 하고 품목이 취소되기도 한다. 시판 후 부작용을 확인하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라며, “과학적인 검증에 의한 표준화가 먼저다.”라고 주문했다.

병원계 토론자도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요구했다. 또, 의료일원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대한병원협회 김종윤 기획정책본부장은 “첩약 시범사업은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특히, 해당 시범사업과 관련된 직접적인 이해단체들과 방향성에 대해 합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의과와 한의과 간 안전성 논란은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동일한 현상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현재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이해와 해석을 하기 위한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의료일원화를 언급했다.

그는 “의과와 한의과가 기본 교육과정부터 차이가 있는 현실에서 교육과정 일원화를 시작으로 한 의료일원화를 먼저 시행하고, 첩약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한 후에 시범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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