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77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의사인력의 수급 문제를 국가의 중요한 정책과제로 다루게 되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은 물론, 피로 얼룩진 민주화과정을 거쳐 탄생한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 당국의 의대생 증원 문제와 의과대학 신설 정책은 어두운 정치적 시대상의 전형적인 단면들이 반영되었다.

특히, 악성 비자금 조성 목적이 의대 신증설 정책에 보이지 않는 괴물처럼 숨어들어 활기를 띠면서 해방 당시 전국 의과대학의 수가 6개에 불과하던 것이 1999년에 이르러서는 무려 7배 가까이 증가한 41개교에, 의대 정원은 3,253명으로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지난 2001년에 정부가 발간한 보건복지백서에 의하면, “매년 3,000명 이상의 의사가 배출되어 2010년부터 선진국 수준에 접근하고, 이후 의사인력의 과잉배출이 우려되고 있다.”고 적시하였다.

이와 함께 “의사인력의 양성에 있어서 양적인 확대 보다는 질적인 향상에 중점을 두어야한다”며 의사양성에 대한 문제점을 제대로, 소신껏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미 2000년 말경에 우리나라 전문의 비율은 전체 의사의 66%에 이르고 있어 의료자원의 낭비와 의료비 상승에 대한 심각한 우려도 덧붙여진 상태였다.

▽의사인력 급증, 보건복지백서 보사연 연구에 “의사인력 공급 과잉 우려” 공통 지적
2006년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의 입학정원 규모의 추세대로라면 2020년경에는 의사인력의 공급과잉이 예상된다며 이를 추계하여 분석한 자료를 수록하였다.

이런 사실에 근거하여 모 복지부 관료는 2002년 대한의사협회가 발행하는 학술지인 ‘대한의사협회지’에 의대 정원 감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특집 기고문을 게재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결국 3,253명을 유지해 온 의과대학의 정원은 3,050명으로 줄게 되었고, 이후 2018년에는 의과대학 인정평가 등 외부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진단하고 평가하여 문제가 된 1곳의 의과대학을 폐교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의학계와 정부, 그리고 정치권 간에 10년이 넘는 힘들고 지루한 줄다리기 싸움 끝에 ‘폐교’라는 전무후무한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초유의 사태인 의과대학의 폐교 조치 사태를 계기로 돌아보면서 의과대학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우리사회의 부실 설계와 부정의 농축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알게 해준 사례였다.

의사인력에 관한 사안은 전 세계 최대 공통 관심사이며 중대 현안이기도 하다. 현재도 세계보건기구(WHO)는 홈페이지에 ‘공시자료(WHO Bulletin)’를 통해 의사수급에 관한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WHO가 지난 2008년에 수행한 연구는 의료 인력에 대한 국제적 수준의 내로라하는 명망 높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완성하였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국제적으로 일부 지역의 국가는 심각한 의사부족 현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상당수 국가는 2015년 이후의 의사인력 과잉공급을 예측하고 있다.

▽국제 공인 자료 “한국 의사 수 절대 부족하지 않아” WHO, 2015년경 이미 과잉 염려
WHO가 제시한 ‘2015년 과잉 공급’ 전망과, 우리나라 국책 연구기관에 의한 ‘2020년 의사인력’의 공급 과잉 예측이 명백하게 제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 우리나라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의료기관의 경영자 단체가 한목소리로 우리나라를 의사 부족국가로 탈바꿈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는 현재 어떠한 국제적인 자료에도 ‘의사부족 국가’로 인용되거나 예측된 자료가 단 한 곳도 없다.

총선 이후 정치판 단골메뉴인 의사인력 증원이나 의대 신설에 대한 요구가 의료의 공공성 강화라는 명제와 함께 거센 물결을 형성하고 있다.

의료가 공공재라는 주장에도 의사양성 과정에 투입되는 모든 비용과 노력은 오롯이 개인과 사적 영역에 의존케 하고, 그 책임을 물리고 있다.

혹여 의사 수가 남으면 의사 인건비 하락과 공공기관이나 취약지 의사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공공재와는 맞지 않는 이율배반적 모순된 시장경제 논리를 대입하고 있다.

의료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그 내막은 시장경제의 논리를 도입하고 있는 이중적이며 매우 모순된 현상이다. 아마도 강남 좌파나 무늬만 사회주의자 혹은 탁상공론 사회주의자(armchair socialist)의 설익은 주장처럼 들린다.

진정한 공공재의 개념은 대부분의 OECD 국가와 같이 공적 자금으로 의사양성을 하고 이후에도 의사인력관리와 운용을 맡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의사양성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은 아예 못들은 척, 모르는 척 귀를 꽁꽁 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모 유명 대학병원의 부실 인턴 수련에 대한 책임을 인턴에게 뒤집어씌우는 기막힌 일이 자행되고 있다.

의사 양성의 질적인 향상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과 정책은 아예 찾아보기 힘들고, 이제는 기대하기도 지친다. 의사양성에서 ‘질’은 양적인 숫자와는 달리 공공재가 아닌 모양이다.

▽취약지 의료지원 이유 과다 배출 의사인력 결국 도시로 역류 의료 질 하락 심각 상태
세계보건기구나 국제적인 보건기구의 보고서에 의하면, 과잉 배출된 의사는 다시 도시로 유입되어 의료의 질적 하락과 의사 분포의 편중을 가속시키고, 강제로 취약지에 배치되었던 의사들까지도 모두 도시로 회귀하거나 역류하여 취약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더욱 꼬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힐난한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다시 엉터리 같은 맞춤형 관변 연구기관의 공신력 결여된 결과만을 의도적으로 인용하고 각색하여 우리나라는 향후 수천 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의대 신규 설립과 정원증가를 획책하고 있다.

진정한 수요 보다는 지역구 숙원사업의 정치적 해결이 우선하여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의사인력 추계에 대한 간헐적인 연구 자료를 보면, 과연 연구결과의 타당도와 신뢰도 측면에서 수용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특히, 미국이 사용하는 수학적 모델을 근거로 이를 더 간편화 한 형태의 연구방식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정권의 눈치를 보고, 정부 산하의 연구기관은 그 촉을 더욱 예리하게 살펴 속칭 OEM 방식의 ‘결과 주문에 의한 맞춤형 조달 형 연구’를 짜 맞춰 진행하는 식이다.

적절한 방법을 동원하여 그럴싸한 과학적 연구결과로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정상적인 논리와 이론이 될 수 없고 한낱 안쓰러운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연구를 할 수 밖에 없는 힘없는 연구원이나 정부 재원에 의존하고 기댈 수밖에 없는 연구독립성이 결여된 국책 연구기관을 비난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 문화나 민주주의 발달 정도를 감안하면, 이런 현상도 우리나라 문화의 일부로 보아야 하는 것이 허탈한 현실이고 사실이기 때문이다.

▽OECD 평균치 근거 정부 논리 ‘도깨비 방망이’ 아냐 현실적 객관적 분석이 우선돼야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실제 필요한 수의 의사를 보다 정확히 추계한다는 것은 거의 가설에 가깝거나 허구일 가능성이 오히려 더 커 보인다.

이런 이유로 하여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도 그 책임은 결코 무겁지 않아 보이고, 책임의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의료(medical practice)’라는 개념과 정의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화적 현상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의료문화는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등 다양한 결정요인에 의하여 형성된다.

정부가 제시하는 OECD 의사 평균치와 우리나라의 비교는 단순하면서 쉽고 편해 보인다.

그러나 평균치 이하라고 해서 당장 의사가 부족하다는 주장과 논리로 대입되어 성립된다는 것은 심각한 논리적 오류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우리나라 평균과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의 경우 초진 대기 기간이 2~4주인 반면에, 우리나라는 초진부터 대기 기간 없이 얼마든지 전문의 진료가 가능하고, 환자나 보호자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 3곳 이상의 서로 다른 의료기관을 찾아 ‘의료쇼핑’과도 같은 전문의 진료마저 가능한 시스템이다.

의료접근성이 이미 세계 제1위라고 자랑하는 정부가 이제 중소도시 전체에 대학병원을 설립하는 것이 숙원사업인지 궁금하다.

정부기관이 표기하는 상급종합병원의 권역별 분류기준에서도 제주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묶어 놓았다.

그 이유는 환자나 보호자가 비행기로 신속하게 원하는 의료기관의 접근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환자 1인당 수진횟수 세계 1위, 주요 선진국 의사 보다 업무량 30% 이상 과중
우리나라는 환자 1인당 수진 횟수나 병상이용일이 세계 1위이다. 수진 횟수는 정부가 즐겨 찾고 인용하는 ‘OECD 평균’의 2.6배에 이른다.

역으로 계산하면, 우리나라 의료 이용률을 정부가 시금석처럼 여기는 표준치인 OECD에 맞추면 현재도 우리나라의 의사는 충분히 남아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의 근무환경은 일반 근로자와 같이 주 45시간 정도를 기준으로 한다.

대부분 휴가도 4~5주이고, 이외에 개개인의 다양한 사정들을 반영하여 추가적인 휴무를 인정하고 부여한다.

복지국가 의사의 업무량을 Full Time Equivalant(FTE) 개념으로 보았을 때, 우리나라 의사 한 사람의 직무양은 이들 보다 최소한 25~30%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달리 표현하면, OECD국가 평균 의사업무는 우리나라 의사업무량의 70% 정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추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제한된 비교 분석의 한계에 봉착한 현실임을 말하고 싶다.

OECD 회원국 평균 의사수를 이상적인 기본 비교 치로 제시하듯이 OECD의 평균 수진 횟수를 우리나라 수진횟수의 목표치로 조정하여 대입하여 추산하면, 우리나라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지금의 평균치 2.3을 훨씬 추월한다.

국회의 입법조사처가 2020년에 발간한 우리나라 국민의 의료서비스 이용 현황과 시사점에는 우리나라의 적은 수의 의사가 많은 수의 외래환자를 진료한다는 것이 진찰시간 최소화를 의미하고 이에 따른 의료의 부실, 불충분한 문진에 따른 의료과실의 증가, 항생제 등 의약품 사용과다를 들고 있어 공급자에 대한 문제점으로 분석하여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선진국들과 우리나라 의사수의 비교표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월등히 높은 진찰료나 의료 수가, GDP 대비 총 의료비 지출, 의료비 국고 지원율에 대한 비교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의료이용자의 문화적 특성도 전혀 언급이 없다. 대표적인 사전 결과주문 형 정치적 조사 자료로 ‘객관성 결여, 투명성 제로’에 불과해 보인다.

▽정부 의사인력 증원 논리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일관성 결여된 정치 문화적 궤변
정치권이 의사인력의 목표수준을 OECD 평균치에 맞추는 것도 우리나라의 고유한 의료수요에 의한 추계보다는 OECD 회원국 자료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의료목표를 설정하는 것으로 진정한 우리나라의 보건의료계획이 설립되어 있는지도 궁금하다.

과연 어떤 나라가 의사배출을 위한 목표치를 OECD 평균에 맞추는지,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인지 명확한 설명조차 없다.

OECD가 벤치마킹을 할 만한 표준이라면 이런 나라들의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나 의료비에 대한 국고지원율의 평균치에 대한 고려는 왜 생략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진정한 의사 수는 찾아내기 힘든 매우 어려운 과제인데, 이것의 실체파악을 위한 노력의 한 가지 지표인 OECD평균이라는 것은 선진국을 향해 나아가는 국가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솔직히 빈약한 국가적 의료정책 설립 역량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필요한 의사수의 실체파악을 위해서는 다양한 양적 질적 연구를 병행하여야 한다.

가장 큰 상위개념인 우리나라 의료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설정하고 경제성장률, GDP, 인구증가율, 의사증가율, 그리고 항상 정부가 주장하는 의료전달체계 확립 등의 조화된 정책적 고려와 판단 속에 그나마 실체에 근접하는 추계를 하여야 하는데 1차원적 단순 사고가 의사추계를 지배하여 일방적으로 끌고 가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최우선적 수요는 정치적인 목적인 셈이다.

적절한 진찰시간의 의료문화를 만들려면 현재의 초진료로는 생존 불가능한 실정에 있음에도 애써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 20명의 환자를 보았다고 충분히 일을 많이했다고 생각하는 선진국 의사는 적은 외래환자로 어떻게 생계유지를 하는지 정부는 그 내막을 심도 있게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의사를 보유한 구 소련권 나라들의 병원은 왜 그리 조용한지도 정부 차원의 질적 연구를 권장하고 싶다.

일반의에서 전문의로 의료전달체계가 잘 정착된 선진국의 의사추계 수학적 모델이 매우 다른 형태의 우리나라 의료에 적용되고 있어 추계방법론의 타당성 문제도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의사인력 부족 논리 앞세워 원격의료 등 의료사회주의 향한 관제 의료 4중주 시작
현재의 시민단체나 병원협회가 주장하는 500명 또는 1,000명의 의대정원 혹은 의대신설에 대하여 비난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근거가 우리나라 의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 단위의 종합적인 계획에 맞추어진 것이 아닌 병원의 싼 인력부족이나 OECD라는 기구의 평균을 시금석으로 맞추어 나왔다는 사실이 매우 실망스럽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의사인력의 현황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갖고 있어야 할 면허기구가 없어 의사인력에 대한 정확한 현황파악도 제대로 될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며 의사추계에 대한 국가적 역량의 부족을 실감케 한다.

복지부나 공단은 의료비 증가 억제가 목표인데 반하여 다시 의료비 지출을 상승시킬 의사인력의 대폭 증가를 같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의료정책의 지향점이 노동 착취의 구조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은 매우 쉽게 도출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급변하는 세계경제 질서와 국고가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비상경제시국에 과연 엄청난 의사인력의 증원이 진정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에 중요하고 적절한 것인지 정치권에게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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