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강하게 반대하는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도입에 대해 약계도 공식적인 반대입장을 천명했다. 시민단체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등,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김대업 대한약사회장
김대업 대한약사회장

대한약사회(회장 김대업)는 지난 26일 입장문을 통해 “코로나 19로 인한 국가재난 상황을 활용해 국가 기본 의료시스템 붕괴시키는 원격의료는 불가하다.”라고 밝혔다.

지난 2015년 메르스 감염대응을 위해 삼성서울병원, 건국대학병원 등 일부 병원에 제한된 범위 내의 전화 진료가 시행됐고, 이번 코로나 19 사태로 의료기관 방문을 꺼리는 환자의 건강을 위해 전화를 통한 환자 상담 및 처방이 허용된 것을 빌미로 정부 일각에서 ‘비대면 진료’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시민단체와 보건의료인 모두가 반대해 왔던 원격의료제도 도입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약사회는 “이를 신종 ‘한국형뉴딜’ 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추진하고자 하고 있다. 국가재난을 볼모로 하는 자본의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우려된다.”라며, “비대면은 대면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 당연한데, 비대면이라는 이름으로 보건의료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원격진료를 주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는 재난을 핑계로 자본의 논리가 하고 싶은 일을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하겠다는 근시안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으며,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서비스산업선진화법’과 다를바 없는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약사회는 이어 “코로나 19로 인해 허용된 전화처방의 경우 대부분 의사의 판단하에 안전성이 확보되는 경우로 이미 오랫동안 추적 관찰 중인 고령 또는 만성질환자의 재진 약물 처방 등이었다.”면서, “감염증으로 인해 의료기관 방문을 꺼려하는 환자에게 처방전 리필의 개념이 강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전화처방이 곧 원격의료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졸속 행정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비대면이 무조건 절대 선이라는 생각에서 무모하게 원격의료를 도입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적 논리를 앞세워 환자의 건강권에 대한 심각한 훼손을 가져올 것이다.”라며, “환자의 의료기관 방문을 일방적으로 줄이고 의료를 산업으로 몰고 가는 시도는 국민건강을 위해 용납될 수 없다. 비대면을 강조함으로써 붕괴될 의료제도 시스템은 결국 더 큰 화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약사회는 “원격의료 도입을 국민이 원하고 있다는 주장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을 강조하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불과하다.”라며, “단순히 편하다는 것으로만 국가정책을 결정할 수 없다. 국민건강을 중심에 두고 판단할 때 일정한 규제를 통해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원격의료라는 논쟁으로 국론을 분열하고 감염증 예방을 위한 제도정비에 필요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우선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 정비에 더 매진해 나가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모바일을 활용한 전자보험증의 도입을 통한 감염예방 물품의 적정한 보급과 개인별 관리, 건강 관련 다양한 정보를 전자보험증을 플랫폼으로 하는 환자 중심의 보관 및 활용이 가능한 시스템 완비 등으로 국민건강관리의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작업부터 완성한 이후에 비대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순서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감염증 예방 물품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실시 등이 감염증 예방에 있어 더욱 시급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약사회는 정부를 향해 “코로나 사태로 인한 비대면에 대한 관심을 원격의료 도입이라는 꼼수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감염병 예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감염증 예방 관리 기반을 구축하는데 우선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라고 촉구했다.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장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장

반면, 의료계와 약계, 시민단체가 반대하는 원격의료 도입에 대해 한의계 수장은 찬성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최혁용 대한한의사협회장은 지난 15일 조선일보 인터뷰를 통해 원격의료와 관련 “정부의 원격의료 허용 방침에 찬성한다.”라고 말했다.

한의협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2010년, 2014년, 2016년 세 차례에 걸쳐 추진한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법 개정에는 의사협회와 마찬가지로 반대 입장에 섰지만, 이번에는 180도 달라진 것이다.

다만 최 회장은 “정식으로 이사회를 통과한 협회의 입장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최 회장은 해당 인터뷰에서 “국민의 70~80%가 만성병으로 죽기 때문에 집이나 직장에서도 손쉽게 의사에게 접근할 수 있는 보건의료 시스템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시스템으로 가는 데 원격의료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최 회장은 “미래 정책으로서 원격의료의 장단점은 실제 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의료계가 싫다면 한의계를 통해 시범적으로 해볼 것을 정부에 부탁한다.”라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의사협회가 원격의료 도입 반대 입장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사들이 독점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이 (원격의료) 기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의료계의 원격의료 반대를 19세기 초 산업화 시기 영국 노동자들이 실업과 생활고를 기계 탓으로 돌리며 기계 파괴에 나섰던 ‘러다이트 운동’에 비유하며, “새로운 기술에 대한 거부라는 측면에서 러다이트 운동과 비슷하다.”라고도 했다.

최 회장은 지난 18일 SBS CNBC ‘경제현장 오늘-집중진단’에서도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편, 원격의료 도입에 꾸준히 반대 목소리를 내온 시민단체는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오늘(27일) 오전 10시 30분 청와대 앞에서 ‘코로나19 이용한 원격의료 추진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무상의료본부는 “대표적 의료 민영화 정책인 원격의료 추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라며, “다음 달 초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비대면 산업 육성의 하나로 비대면 의료를 위한 인프라 구축 사업이 담길 것이라고 한다.”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정부는 코로나 19 사태와 감염 대응을 위해 비대면 의료서비스를 육성한다고 하지만, ‘범위 확대’, ‘새로운 부가서비스’, ‘비대면 의료 플랫폼 구축’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감염병 사태로 불가피하게 허용한 전화 상담ㆍ처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료 민영화의 대명사인 원격의료를 추진하려는 것이라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무상의료본부는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의료 민영화ㆍ영리화 정책을 밀어붙였다.”라며, “이 정책들은 이명박 정부가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해 만든 삼성의 미래전략보고서인 보건의료산업 선진화방안 이른바 ‘HT(Healthcare Technology) 보고서(2010년 8월)’의 내용들이 차근차근 진행돼 온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라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가 ‘원격의료 산업의 구성’에 포함한 ‘측정기기(혈당, 혈압, 체성분, 심박), 측정데이터 관리 및 전송 시스템, 의료정보DB, 상담ㆍ처방, 보험’, ‘개인화된 건강관리 서비스’와 관련된 규제 완화를 문재인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또, ‘혁신’의료기기 및 체외진단기기 규제 완화, 개인정보보호법 개악,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 제정 등이 그렇다고 꼬집었다.

무상의료본부는 “문재인 정부는 원격의료의 산업 육성적 측면, 즉 기업의 돈벌이 지원을 노골적으로 강조하기는 민망했는지 ‘감염병 대응’, ‘코로나 19 2차 유행 대비’ 같은 수식어를 갖다 붙이고 있지만, 원격의료가 감염병을 막거나 치료할 수는 없다.”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를 진단하고 치료한 것은 ‘비대면 진료’ 원격의료가 아니라, 헌신적 의료인들, 특히 공공병원 의료인들의 대면 진료와 간호였으며, 코로나 19 퇴치를 위해 필요했던 것은 원격의료 장비가 아니라 진단키트, 감염보호장비, 음압병상을 비롯한 공공병상, 중환자실이었다는 지적이다.

무상의료본부는 “감염 위험으로 병원 가기를 꺼리는 환자들에 대한 ‘비대면 진료’는 불가피한 보조수단이었을 뿐이다.”라며, “주객이 전도돼서는 안 된다.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미래 먹거리, 산업 육성 차원으로 자리매김하면 주객은 전도될 수 밖에 없고,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대규모의 투자가 불가피하고 투자는 이윤을 내야만 한다. 따라서 건강, 안전, 생명은 기업 이윤보다 순위가 밀릴 수 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원격의료 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된 의료기기, IT기업, 민간보험사들과 정부에게 코로나 19 감염병 사태는 원격의료 산업을 통해 민간보험사가 지배하는 미국식 의료체계로 나아갈 수 있는 둘도 없이 좋은 기회인 듯 하지만, 피해자는 국민과 환자가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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